부동산공인중개사 J씨는 한때 국내 토지시장을 주름잡던 최고수 땅 전문가다. 인터넷에서 2000∼2007년 치 신문를 검색해보면 지금도 그와 관련된 기사를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랬던 J사장이 지난 6월 형사 재판에서 2년 6개월 형을 판결받았다. 죄목은 사기다. 현재 그는 춘천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2014년 하반기 출소 예정이다. 그는 '출소 뒤에는 부동산업계를 떠날 수 밖에 없지 않겠냐'며 최근 그를 면회한 한 지인에게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놨다고 한다.
잘 나가던 토지 고수는 왜 갑자가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됐을까.
사연은 이렇다. 2004년 J사장은 경기도 용인 임야 6만㎡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쪼개 팔았다. 개별등기가 아닌 지분등기 방식이다.
그런데 J사장은 이때 땅을 쪼개 팔면서 투자자에게 계약 시점에서 2년이 지난 다음 200%의 수익률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투자를 하면 부동산 시행사 등에 땅을 되파는 방식(제3자 매각방식)으로 투자원금을 두 배로 불려주겠다는 조항을 투자자와의 계약서에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실물경기 침체와 정부 규제로 토지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J사장이 원하는 가격에 땅을 사겠다는 업체가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땅값도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다. 추가 투자자 모집도 난관에 부딪쳤다.
J사장은 결국 해당 토지를 담보로 은행권에서 대출받은 자금(중도금 일부와 잔금)을 기한 내 상환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은행은 당연히 J사장에게 빌려준 대출금 회수를 위해 법원에 땅에 대한 경매를 신청했다. 땅은 네 번의 유찰 끝에 낙찰됐다.
경락대금의 대부분은 선순위 권리자인 은행이 가져갔다. 이 때문에 후순위 권리자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투자 원금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투자자들이 J사장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토지 업계에선 J씨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대표적인 것이 ‘토지시장 패러다임 변화론’이다.
J사장은 국내 '시세차익'형 투자의 귀재로 꼽히는 인물이다. 실제로 J사장을 통해 알짜 땅을 싸게 잡은 뒤 비싸게 되팔아 큰돈을 번 사람이 그의 주변에 부지기수다. 그만큼 돈이 될 만한 땅을 골라내는 J사장의 안목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그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말이 나온다. 설사 감형을 받아 일찍 출소한다하더라도 재기불능에 빠질 것이란 얘기도 적지 않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 토지시장의 세대교체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교도소 행이 한 개인의 몰락이 아닌 한 시대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토지시장을 풍미하던 '묻어두기'식 시세차익형 투자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사실 토지시장에는 J사장과 비슷한 처지의 땅 전문가가 한둘이 아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흔히 국내 토지시장을 2005년 ‘8․31 부동산 종합 대책’ 전(前)과 후(後)로 나눈다. 이때를 전후로 토지시장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는 이유다.
8․31 대책은 겉으로는 종합 부동산대책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토지 시장을 정조준한 땅 종합 대책이라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8․31 대책을 분석해 보면 주택보다 토지를 겨냥한 대책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토지 거래 규제 관련 대책이 많다. 굵직한 것만 해도 토지거래허가 제도 강화, 부재지주 양도세 중과, 땅 실거래가 등기부등본 기재 제도를 꼽을 수 있다.
이들 규제는 토지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 왔다. 대표적인 변화로 이른바 ‘출입금지 장세’ 형성이 꼽힌다. 거미줄처럼 촘촘해진 규제의 그물로 인해 토지시장에 신규 투자자의 진입은 막히고, 기존 투자자의 퇴로는 차단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토지시장 침체를 불렀다.
사실 정부가 8․31 대책을 통해 토지시장에 던지려 했던 메시지는 간단하다. 실수요가 아니면 땅을 사지도 팔지도 말라는 거다. 땅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묻어두기'식 투기수요가 더 이상 토지시장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8․31 대책의 효과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즉시 나타났다. 땅 투자 메리트가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토지시장에 시세차익을 챙기려는 가수요가 급속히 빠져나갔다.
토지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이런 시장의 변화를 간파하지 못한 패착이 J사장의 발목을 붙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