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의 경륜과 정치의 격 ]]
빳빳한 종이를 나팔모양으로 말아 입에 대고 “나를 국회로 보내 주시오”외치면서 거리유세를 펼쳤던 시절이 있었고, 신문지에 기호와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선거벽보로 사용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후보자의 사무실에 가면 막걸리 인심이 좋아서 그랬는지 선거철이 되면 시골 양조장이 붐볐다는 기억이 납니다.
자유당 시절, 민주당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했을 때 자유당에서는 “갈아봤자 더 못 산다”고 했었지요. 1950~60년대에는 농촌인구가 더 많았었기에 군단위로 국회의원이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선거 유세 중 신익희 후보가 서가하자 “자유당에 꽃이 피고, 민주당에 눈이 오네.”라는 노래가 유행했었음을 나이 드신 분들께서는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선거는 정치를 꾸미는 장기판과 같은 것이어서 정치인이 되려면 선거를 치러야 하고 당선되는 게 목적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인물이라도 선거판에서 지게 되면 정치와는 인연을 접어야 하는데 한 번 낙선하면 집안이 거덜 나고, 두 번 낙선하면 패가망신하는 일이 늘 있었습니다.
정치는 생선과도 같아 늘 신선함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10년이나 20년 단위로 소용돌이가 일어납니다. 요즘도 그와 같은 시기가 아닐는지요? 그럴 때가 되면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마음부터 도배를 해보지만 이미 허물어져 있는 벽이라면 그 위에 도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총선이나 대선 때가 되면 꼭 헤쳐모이기를 거듭합니다. 그럴 때마다 새 옷을 갈아입고 여러 번 당선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행여 벼슬이 떨어질까 봐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보기에 안타깝다는 표현이 무리는 아닐 듯싶군요. 새로운 사람이 새롭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옛날 사람이 새롭게 다시 나타나는 게 우리나라 정치판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북한에는 29세 김정은이가 권력을 승계하였고, 우리나라의 어느 당 비대위에도 27세의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뉴욕타임스 블레어 기자도 27세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창업자 마크저커도 28세인 걸 보면 꼭 나이로 따질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정치 중심부에 27~29세의 청년으로 하여금 자리를 지키게 함은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럴까? 하는 우려가 앞서기도 하는데 필자만의 생각일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정치인에게는 경륜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 젊은 왕이나 장수 곁에는 책사가 있었습니다. 고려 왕건의 곁에는 최응, 후백제 견훤의 곁에는 최승우가 있듯이 말입니다. 정치에는 새로움도 있어야 하지만 경륜과 격(格)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 내놔도 반듯한 품격 말입니다.
차제에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국민을 사랑하며 잠시라도 국민 곁을 떠나지 않는 정치인이 되시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깨끗하고 격이 높은 정치가 있게 되면 국민들의 품격도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하실 분들, 이리저리 줄서지 마시고, 품격이 높은 정치인이 되십시오.
[[ 경제의 질과 경제성장의 격 ]]
우리나라는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조국근대화 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세계에 명함을 내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가난과 전쟁이 쓸고 간 폐허위에서 굶주림과 질병뿐인 나라였습니다. 부스럼이 덕지덕지 퍼져있는 어린아이 머리위에 파리 떼가 우글거리는 그런 상상을 해보시면 어느 정도일지 감이 잡히실 것입니다.
그때는 산아제한을 할 의술도 없었고, 피임기구도 없었기 때문에 생기면 생긴 대로 모조리 낳아 길러야 했습니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식구를 줄이기 위해 자녀가 일곱 살이 되면 식모로도 보냈고, 꼴머슴으로도 보냈으며 도시 공장으로도 보냈지만 불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 많이 낳는 부녀자는 집안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표현이 옳을 겁니다. “저 여자는 허구 한 날 애만 낳는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바람에 그렇습니다. 누가 낳고 싶어 낳겠습니까. 곁에 서방이 있기 때문에 낳게 된 것이지요. 공동묘지에서 재주를 넘으면 뱃속 아이가 떨어진다는 미신을 믿고, 잉태한 부녀자들이 달밤이면 공동묘지에서 가서 너나없이 대굴대굴 굴러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역사는 새 장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착공 무렵 예산낭비라고 반대했던 정치인들 많았습니다. 그 정치인들도 나중엔 그 도로 달리면서 기분 좋았을 겁니다. 그때부터 기업을 앞세워 수출 100억 불 시대를 열기 시작했고, 지금은 1조 시대를 이룬 것입니다.
반세기의 역사가 지나는 동안 이제는 사람이 없어 외국 근로자를 고용해야만 공장이 돌아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구가 부족해서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니 옛날 뱃속의 애기 지우려고 공동묘지에서 재주를 넘으셨던 할머니나 어머니가 이런 사실을 아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이것들아, 빨리빨리 결혼하고, 서방 각시 밤마다 함께 자거라”라고 꾸지람을 하시겠지요.
한국경제의 쌍두마차는 제조업과 건설업입니다.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대비 28%정도 되지만, 건설업은 아랫도리에 힘이 빠져 지팡이를 짚어야 할 지경입니다. 그 이유는 부동산 침체가 첫 번째요, 두 번째는 해외진출이 미미했다는 것입니다.
현재 IT와 자동차 수출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너무 단조롭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질 좋은 경제가 이루어지려면 수출종목이 다양해야 합니다. 앞으로 선박, 건설, 연예, 관광, 식품 등 많은 품목들이 다양하게 수출이 돼야 하고, 또한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출품목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격이 있어야 하겠지요.
[[ 부동산의 가치와 부동산시장의 격 ]]
외환위기 이후인 2001년부터 부동산시장이 바로 상승세를 탄 이유는 외환위기가 단타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적절한 부양책이 한몫 거들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008년 금융위기가 아물기도 전에 유럽재정위기가 터져 지팡이 짚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업고 가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부동산정책에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정치도 소용돌이치는 물길을 막기 어렵고, 경제도 흘러가는 추세를 거슬러 갈 수 없듯이 부동산도 시장기능을 무시하면 탈이 나게 됩니다. 숨을 쉬려할 때 목을 조여 버렸음이 사실이거든요. DTI제도나 분양가 상한제 같은 규제책을 남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체질 약한 사람에게 너무 과도한 약을 처방하게 되면 신체발육에 지장을 받게 되듯이 부동산시장에 너무 지나친 처방을 했기 때문에 지난 해 여섯 번의 부양책을 내놔도 그동안 골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진 병에 걸린 환자에게는 보약을 먹여도 약발이 받지 않듯이 말입니다.
지금 DTI제도나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한다 해도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합니다. 2010년과 2011년의 부동산시장을 보면 수도권은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 소형주택위주로 거래가 되었거나 다소 가격이 올랐고, 지방은 중소형 이하로 거래가 원활했으며 가격이 올랐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마디로 왜곡된 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치에 이르지 못한 시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동산시장은 지역에 편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과 수도권의 중대형이상 주택이 30%이상 값이 내렸다는 건 비정상적인 시장으로 해석해야 옳습니다. 부동산은 가치인데 지금까지의 거래나 상승은 가치라는 목적지까지 갈 수 없기 때문에 물량 부족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다함께 노력을 하자는 마당에 부동산 값이 오르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막힌 거래는 터줘야 합니다. 부동산은 가치인데 가치가 잠을 자게 되면 내수도 줄고, 소비도 줄게 되어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부동산은 그 나라 경제의 굴렁쇠라는 비유를 드리고 싶습니다. 굴렁쇠처럼 굴러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부동산이 잠을 자게 되는 일은 굴렁쇠가 서게 되어 쓰러지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부동산과 굴렁쇠는 굴러야 격이 있게 되고, 굴러야 가치가 있게 됩니다.
수원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부동산, 법률)
수원 세인종합법률사무소 국장
윤정웅 내 집 마련 아카데미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