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이라 집에서 쉬고 있던 필자에게 문자가 왔다. 상담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내용이었다. 상담료를 선입금하고 방문하라고 했더니 다음날 올라오겠다며 약속을 했다. 대구에서 사시는 분이었다. 상당수가 방문유료상담이라고 하면 ‘다시 연락하겠다’며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지만 이 분은 그렇지 않았다.
필자는 초면인 사람과는 전화나 메일로 상담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정확한 상담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지 않은가. 쪽지로도 문의가 많이 오지만 필자가 운영하는 카페의 ‘묻고 답하기’ 코너를 제외하면 무료상담은 일체 받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방문상담자가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시간과 돈을 써서 일부러 오시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필자를 신뢰하는 분들이라 상담하기는 편하다.
대구에서 청과상회를 한다는 부부는 당일 KTX를 타고 왔는데, 참외를 선물로 가지고 왔다. 소박하고 환한 미소를 띤 부부는 필자에게 상담 받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며 필자가 출간한 책 <돈 나오지 않는 부동산, 모두 버려라>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다.
가끔 상담하러 오는 분들 중에는 필자의 팬이 있어 필자를 당혹하게 한다. 이 부부는 일 년에 설과 추석 명절만 가게를 쉰다는데 필자를 만나기 위해 이날 가게 문을 닫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해 필자를 몸 둘 바를 모르게 했다.
“1억 5천만 원 정도의 여유 돈이 있어서 대구 경산에 소형아파트를 대출 끼고 세 채 구입해 월세를 놓으려고 하다가 소장님 책을 읽고 이게 아니다 싶어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투자를 하고 싶은데 전혀 모르니 소장님께서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마침 개포동에 믿을 만한 건축업자가 신축하는 투 룸 다세대가 있어 그것을 권했다. 월세 수입을 올릴 수 있는데다 앞으로 개포주공 단지가 재건축되면 이주수요로 인한 후광효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로 내려가기 전에 매물을 볼 수 있겠냐고 해서 부부를 모시고 개포동 현장으로 갔다. 구룡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개포시영 단지 옆에 자리 잡은 동네라 조용하고 깨끗해서 만족해하더니 계약하고 내려가겠다고 했다.
아주 가끔 물건을 보자마자 계약하겠다는 고객이 있다. 이럴 때는 오히려 필자가 당황스러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시라고 말한다.
“소장님께서 추천해주는 물건이니 믿을 만한데다 우리 같은 지방 사람이 서울에 집을 마련하는 것은 소장님 같은 분을 만났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그날 계약을 하고 부부는 아주 환한 얼굴로 대구로 내려갔다.
며칠 후 ‘과일상자 하나씩을 소장님과 건축주에게 보냈다’는 문자가 왔다. 배려심에 기분은 좋았지만 좀 죄송한 느낌이었다.
집사람이 과일박스를 열어보더니 감동을 했다. 사과며 참외, 한라봉, 귤, 낑깡 등이 바리바리 채워져 있었다. 입에 넣으면 향긋한 즙이 기분을 좋게 하는 사과처럼 필자는 정말 향기 나는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처음 만나는 분들의 부동산 재테크 상담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상담자의 성향과 배경, 직업, 가족관계, 재산현황 등을 다 파악해야 정확한 방향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되도록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상담자를 편하게 하면서 가이드를 제시하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상담자 중 상당수는 필자의 의견에 공감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해 필자를 흐뭇하게 한다. 하지만 필자의 의견에 공감은 하면서도 막상 실행을 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 아쉬울 때도 많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필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상담자도 있다. 상담하고 돌아간 뒤 전화로 상담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가급적 상담자의 마음을 헤아려 이해를 구하려 하지만 막무가내로 혼자 화를 내며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는 상담료를 돌려주지만 어떤 상담자는 정신적 배상을 하라며 상담료의 몇 배를 요구한 일도 있었다.
이럴 때는 상담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곤 하지만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이 더 많아 참곤 한다. 필자가 비록 부동산 일에 종사하지만 나름 자부심을 갖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강의와 상담, 출판을 통해 세상에 조금이라도 봉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모 의과대학 학장님이 내 강좌를 6주 간 들었다. EBS의 <갑상선 명의>에도 출연한 분이었다.
필자의 아내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는데 임파선으로 전이돼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해 집안이 우울했을 때였다. 학장님을 만난 건 아내의 병을 완치하라는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학장님의 도움으로 방사선치료를 잘 끝냈고 아내는 학장님 덕택에 병원에서 VVIP 대접을 받자 “처음으로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보잘 것 없는 처지이지만 강의와 상담을 통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는 것은 필자에게 주어진 행운인 듯싶다. 필자를 좋아하는 분들은 거의 다 필자의 책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데, 의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통역사, 은행원, 대기업 직장인, 공무원 등이 주로 필자를 찾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의 재산을 가이드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인문교양 서적을 열심히 읽고 부동산 칼럼을 정기적으로 쓰는 것은 바로 이런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좋은 분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즐거움을 위해서는 초심의 자세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필자의 조언 하나가 그 분의 재산 또는 인생에 전환점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고 보람이다. 그러니 부동산 일을 한다는 것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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