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년 전에는 악극단이란 게 있었습니다. 지방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했었는데 면소재지나 군소재지에 악극단이 들어와 공연을 하게 되면 그 지방은 온통 잔치분위기였습니다. 아직도 생존해 계신 배우나 가수들로서는 송해. 구봉서. 안다성. 남백송. 박재홍씨 등 여러분이 계십니다.
악극단에서는 연극을 주로 공연했었고, 무대장치를 바꾸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코미디 배우나 가수들이 무대 밖으로 나와 연기와 노래를 했었는데 그게 본 무대보다 더 재미있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서영춘. 배삼룡. 남철. 남성남씨 등 많은 분들이 막간을 이용해 노래와 웃음을 선사하는 인기그룹이었습니다.
현재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다음 공연을 위해 무대장치를 바꾸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무대 밖에서는 단막극과 가수들의 노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잠을 자고 있어도, 전국적으로 보면 군데군데 그런대로 시장이 돌아가는 곳도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수도권 유주택자들은 과연 본 무대의 막이 오를 수 있을 것이냐? 아니면 막간을 이용해서 펼쳐지는 단막극만 보고 끝날 것이냐를 두고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글쎄요, 옛날 악극단에서 공연했던 “홍도야 울지 마라. 불효자는 웁니다. 검사와 여선생” 같은 명작들이 다시 막을 올릴 수 있을는지?
시골에 들어오는 악극단은 주로 시장터에다 가설무대를 지어놓고 공연을 했습니다. 가설무대는 아무리 잘 지어도 살짝 뚫고 들어갈 구멍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구멍을 잘 찾게 되면 돈 안들이고 구경 잘 하게 되는 행운을 만나게 되지만, 몽둥이를 든 경비에게 들키게 되면 엉덩이에 피가 터지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요즘 부동산시장도 개구멍을 뚫고 들어가서 공짜로 구경 잘하는 사람이 있고, 괜히 들어가지도 못한 채 엉덩이에 피가 터지는 수모를 당하고 계신 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더 이상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전자는 2008년 이전에 빠져 나온 사람들이고, 후자는 지금까지 분양권 가지고 애태우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지금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도 돈 적게 들이고 재미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노라면, 옛날 가설무대 개구멍으로 들어가 악극단을 공짜로 구경했던 필자의 어렸을 적 모습을 빙그레 웃음 지으며 떠올려 보곤 합니다. 공짜 구경은 왜 그렇게도 재미가 있었던지…?
개구멍이 없어 들어가지 못할 때에는 안에서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로 감을 잡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내 집 마련은 요즘이 딱~이다 하면서도 막상 돈이 없어 사지 못하는 처지와 뭐가 다르겠는지요. 연극도 노래도 그저 무대 밖에서 듣고 말았듯이 부동산 구입할 형편이 안 되시는 분들은 그저 부동산이 지천에 널렸다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악극단이 들어오면 대개 트럭에다 악사들을 싣고 시골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흥겹게 나팔을 불어 댑니다. 논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은 저절로 어깨춤이 나오게 되지요. 일 마치자마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악극단을 구경하기 위해 저녁도 거른 채 가설무대로 뛰어가신 경험도 있으실 겁니다. 요즘으로 따진다면 이분들이 바로 부동산 막차 타신 분들이십니다.
꼬깃꼬깃 숨겨놨던 돈으로 입장료 내고 무대 맨 앞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막이 오르기 전부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구경을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가설무대는 비 오는 날이 공치는 날입니다. 관람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비가 개이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결코 본전을 뽑아야 자리를 뜰 게 아니겠습니까? 유주택자들이나 분양권 가지고 계신 분들은 비 때문에 지금 악극단 구경을 못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죽어도 무대를 뜨지 않고, 비가 개이면 다시 공연이 이어질 것으로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날이 샐 때까지…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소 서로 눈길만 주고받았던 복돌이와 금순이는 공연이 중단된 채 새벽이 가까워 오고 있음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비를 덜 맞게 해 준다는 구실로 아주 한 몸이 돼버렸습니다. 두 청춘남여의 뜨거운 가슴에는 악극단이 문제가 아니라 홍두깨질이 이어지고, 눈에서는 서로 불꽃이 튀고 있습니다.
세상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한쪽이 울면 다른 한쪽은 웃게 된다는 것입니다. 빚 없는 유주택자와 전세로 안정을 찾은 분들은 요즘이 태평성대라고 합니다. 경제도 흐물흐물, 정치도 흐물흐물, 사회질서도 흐물흐물하기 때문에 간섭이 덜해 돈만 있으면 살기 좋다는 뜻입니다.
악극단 공연을 하지 못함은 주최 측의 잘못이 아닙니다. 구경꾼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늘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부동산도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부동산을 사두고 애를 타는 사람들도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경을 가지 않은 사람이나 부동산을 사지 않았던 사람들은 돈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비를 맞으며 밤샘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를 갖고 삽니다. 의외의 변수로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수가 있을 뿐이고, 지금 수도권의 부동산시장이 그러한 경우일 뿐입니다.
시골의 악극단은 떠나도 그 후에는 더 새로운 쇼~단이 들어오게 됩니다. 필자는 나이롱 신자입니다. 절에 가면 부처님을 부르고, 교회 가면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렇게 살아야 인생살이가 편합니다. 비가 와서 구경 못한 악극단 관람, 어쩌란 말입니까? 이미 내 손에 쥐어진 부동산을 어쩌란 말입니까? 버릴 것은 버리고 쥘 것은 꼭 쥐고 있을 수밖에요.
다시 날이 밝고, 달이 바뀌게 되면 찬란한 쇼~무대가 등장할 것이고, 그때는 나훈아. 남진. 이미자. 문주란 등이 출연할 것이며, 또 세월이 흐르게 되면 나는 가수다 2에 나오는 박상민. 이수영. 박미경. 국카스텐 등 새로운 가수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암, 그렇고말고요.
윤정웅 내 집 마련아카데미(부동산카페)
수원대 사회교육원 교수(부동산, 법률)
법무법인 세인(세인종합법률사무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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