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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권처분 갈수록 어려워진다.

어느 동네에 착하기로 소문난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똘똘하고 예쁘기도 하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보물덩이가 들어왔다고 이웃들도 부러워했답니다. 며느리는 분가를 마다하고 10년째 70되신 시부모를 모시고 있습니다. 천성이 워낙 착해 그 가정은 웃음을 잃을 날이 없었다는군요.

그러던 2009년 봄날, 며느리의 집에 먼 친척뻘 되는 시누이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그 시누이는 “어느 곳 미분양 아파트를 계약하면 입주 때 가만히 있어도 3천만 원내지 5천만 원을 벌 수 있다. 내가 책임지겠으며, 계약금은 5%인 2천만 원이면 된다.”면서 분양받기를 적극 권유했습니다.

생전 아파트 견본주택에 가보지도 않았던 며느리는 집안 시누이가 설마 허튼 소리하겠느냐 싶어 결혼 때부터 모아온 1억 원 통장에서 2천만 원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시어머니 명의로 계약을 해 드렸습니다. 나중에 웃돈이 붙으면 시부모님 해외여행비로 쓸 계획이었습니다.

약 2개월 후 친척 시누이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지난 번 아파트는 지금 한창 값이 오르고 있다. 요즘 더 좋은 아파트가 분양 중인데 층 좋은 것 몇 개를 아껴놓고 있다. 기회는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이번에는 3천만 원이 있어야 한다. 빨리 가자”

며느리는 다시 통장에서 돈 3천만 원을 찾아 이번에는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친정아버지 명의로 계약을 해 드렸습니다. 이런 효녀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 후 며느리 귀에는 부동산시장이 이상하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도 어쩐지 찜찜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회사와 가정밖에 모르는 신랑도 천당을 찾다가 자칫 지옥에 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며느리도 좌불안석이었습니다. 그럴 즈음 평소 존경해왔고, 부동산 분야에 학식이 있는 은사 한 분이 안부 전화를 해 왔습니다. 며느리는 옳다, 됐다. 무릎을 치고 즉시 그 은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은사 왈~ 며느리가 분양받은 아파트 보다 더 좋은 아파트를 소개해 줄 테니 그 아파트를 분양받으라는 권유를 할 뿐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실수 한 게 아니구나, 일단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은사가 지적해준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에게는 갑자기 아파트 3채가 생기게 되었고, 통장에는 아직도 돈 2천만 원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아파트가 3채라~ 착하디착한 며느리는 평소 가난하게 살고 있는 손윗동서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는 동서를 불렀습니다. “나중에 웃돈은 동서 드리고 나는 본전만 찾아야지…”

이번에는 또 다른 아파트를 동서명의로 계약을 했습니다. 결국 통장에 돈은 다 떨어졌지만, 며느리 본인, 손윗동서, 시어머니, 친정아버지는 입주 무렵 프리미엄을 챙길 일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이 침체의 길을 걷게 되자, 며느리는 자신의 실수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본전이라도 건지고 팔려고 애를 써봤으나 허탕이었습니다. 웃돈을 얹어 줄 돈도 없었습니다. 입주가 다가오자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 어디에도 하소할 곳은 없었고, 자신은 영락없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양권 4개 중 입주할 형편은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는 물론, 손윗동서나 자신도 신용불량자가 되는 길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영특한 며느리일지라도 해결의 길을 찾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은행과 건설사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에게 협박 전화가 오고, 독촉장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며느리는 죽음의 길을 택하려고 모질게 마음도 먹어봤으나 어린 두 자식이 눈에 박혀 차마 그 짓만은 할 수 없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부러워했던 효녀는 간 곳이 없고, 사람들은 며느리를 볼 때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가을, 어느 날 젊은 여인이 필자를 찾아왔습니다. 초라하디 초라한 모습으로~ 바로 그 며느리였습니다.

며느리는 흐느끼며 모든 사정을 필자에게 털어놨습니다. 필자는 며느리를 학교에 입학을 시켜 버렸습니다. 분양권 4개를 해결하려면 오랜 기간 매주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2년 가까운 세월 동안 며느리는 분양권 4개를 다 해결 했습니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시험도 합격했습니다.

똑똑하고 착하디착한 그 며느리는 곧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자신은 거짓말하는 중개사가 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투자한 돈 1억 원은 한 푼도 건지지 못했지만 추가로 더 지불한 돈은 없었습니다. 며느리는 다시 효녀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집안에도 웃음꽃이 다시 피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며느리의 분양권 4개를 모두 대위변제로 처리했습니다. 며느리에게는 돈도 없었지만, 집단소송에 들어갈 만한 조건도 별로 없었습니다. 며느리는 인천에 삽니다. 수원까지 그 멀고 먼 길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 시간도 저 멀리서 뛰어오며 필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윤정웅 내 집 마련 아카데미(부동산카페)


수원대 사회교육원 교수(부동산. 법률)


법무법인 세인(세인종합법률사무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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