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정부가 원칙적으로 공공택지와 민간택지 아파트 구분 없이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안대로라면 민간 택지는 물론 공공 택지에서도 분양가 상한제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외 규정을 두어 필요한 지역에는 분양가 상한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오는 9월 정기국회를 통해 입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부동산업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상한제 폐지를 통해 꺼져가는 시장에 불을 다시 지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택시장을 시장자율에 맡긴다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파트 분양가는 기본적으로 투입되는 원가를 기초로 결정되지만, 통상 건설업계는 인근 지역의 주택가격과 그 지역에서 최근 공급된 아파트 분양가와 기존 아파트 청약경쟁률 등을 고려하여 책정한다. 과거 분양가와 기존 주변 주택가격을 비교해 보면, 일반적으로 신규 아파트 분양가 상승은 기존 주택가격까지 상승시켜 주택가격을 불안하게 했었다.
따라서 분양가상한제가 본격적으로 폐지되면 일부 호재가 있는 지방 도시와 수도권 일부지역의 분양가 상승의 빌미가 될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장 분위기로 볼 때 인근지역 매매가로 바로 전이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대신 서울지역에선 입지가 좋은 강북뉴타운을 비롯해 용산, 마포, 뚝섬 등에서 이번 분양가상한제 폐지로 핵심지역의 주택공급이 늘어나 도심권의 전세시장에도 일정부분 일조할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로 인한 공급 위축,품질 저하 초래
건설업계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신규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2008년 2360만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 지난 9월 말에는 이보다 33%(786만원) 낮은 1574만원을 나타냈다. 같은 기간 전국 신규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1106만원에서 875만원으로 20%(231만원) 이상 떨어졌다
분양가 상한제는 과거 시장과열기에 도입되었으나, 위와같이 신규분양가가 해마다 떨어지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유지할 필요가 없다.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주택품질 저하를 초래하고, 주거수요 변화에 부응한 다양한 주택 공급을 어렵게 하는 등 규제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분양가를 제한하면 주택 품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설계를 도입한다든지 더 좋은 자재를 쓰거나 입주자 편의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의 노력은 실행되기 어렵다. 또한 소득 향상, 주거형태 다양화 등에 따라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다양한 유형의 주택 공급이 사실상 어려워지고, 이는 다양한 수요를 창출하는 데도 제약요인으로 작용한다. 2000년대 분양가 규제 폐지 이후 건설된 아파트들은 이전보다 단지 및 평면 설계의 개선 등 급격한 질적 향상을 이뤘다.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단기적으로 주택공급 위축도 초래되었다. 실제 인허가 실적을 보면, 2007년 55만호에서 상한제가 시행된 뒤인 2008~2010년에는 37만~38만호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분양가 규제의 역사와 가격결정 과정
분양가 규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고정된 3.3㎡당 분양가를 유지하던 1980년대 말 전세가격과 주택가격 급등은 정권의 위협 요인으로 인식됐다. 노태우 정부는 ‘200만가구 주택건설’이라는 충격요법을 선택하고 민간 건설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완화된 형태의 분양가 규제인 ‘원가연동제’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주택이 계획 물량 이상으로 공급됨에 따라 1990년대 후반까지 주택시장이 안정세를 나타냈다. 다만 분양가 규제 영향으로 급격한 소득 증가에 부합하는 품질 좋은 주택 공급은 실현되지 못했다. 시장가치보다 낮은 수준에서 분양가를 규제하면 ‘로또’ 당첨 같은 우발이익을 낳는다. 1980~90년대 모델하우스 앞에서 밤샘 줄서기하던 투기적 행태를 조장했다. 더불어 ‘시세차익’을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복잡한 공급 관련 제도, 투기적 행태를 막기 위한 전매금지제도와 같은 추가적 규제 도입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주택 공급 부족에 따른 전세대란이 발생하자 김대중 정부는 분양가 규제 폐지 카드를 꺼냈다.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이 확대되면서 2002년을 기점으로 전세가격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다만 노무현 정부 시기 강력한 규제책들을 도입했음에도 아파트 가격은 지속적 상승세를 이어갔고, 2007년 민간택지까지 적용되는 등 3년간에 걸친 순차적 분양가상한제 도입이 일단락됐다.
분양가 상한제하에서의 가격 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건설사는 지자체 등 주관 관청에 분양할 공동주택 분양가 산출 내역서를 제출하게 된다. 해당 관청에서 임명한 건축사, 교수, 변호사, 감정평가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분양가심의위원회에서 분양가 내역을 평가하여 최고로 정할 수 있는 상한금액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면 대부분의 건설사는 상한금액보다 낮은 분양가를 결정해서 관계기관으로부터 분양승인을 받아 분양에 들어간다. 분양가 상한제는 전문가들의 심의를 통해 적정한 최고 분양 가격이 결정되어 분양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로 부동산 시장 가격 안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금에 시장상황에 비춰볼때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 시장전문가들의 견해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일반 분양 아파트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보다 더 싸게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도 분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주택시장 상황은 도입 당시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의 하향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고, 거래 부진, 신규분양 저조 등 전반적으로 시장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분양가폐지로 가격 뛸 가능성 거의 없어
분양가 상한제 폐지 반대론자들은 경기 상황이 좋아지면 토지가격과 주택가격을 다시 상승시킬 가능성 때문에 아직까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로 인해 개발호재가 있는 지방 대도시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지역 등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의 일부 상승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안대로 분양가 상한제 폐지로 인해 과거처럼 주택가격 상승이 전국적으로 번진다면 지역별 수급 상황이나 시장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언제든지 다시 분양가 상한제로 묶으면 된다. 전체적인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현재 침체돼 있기 때문에 건설사에서 일방적으로 분양가를 올릴 수 없고 주변 주택가격에도 영향을 줄 확률이 거의 없다. 지금과 같은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서는 분양가가 높으면 미분양이 나오므로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 통용되는 적절한 분양가를 책정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분양가 상한제 폐지는 주택시장의 메카니즘을 시장 자율에 맡기는데 더 의미가 있어 실보다 득이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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