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의 역사는 약 60년쯤 된다. 그동안 이 관습상의 제도는 무주택자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 왔기 때문에 서민과 전세는 깊은 인연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리라.
이 전세제도가 없었다면 아마 도시로 몰려든 서민들은 훨씬 줄었을 것이고 정부에서는 그들만을 위하는 별도의 주택정책을 실시했을 것이다.
근래 들어 전세금 상승으로 인해 전통적인 완전 전세는 퇴보하는 반면 전세금을 다 채우지 못한 금액에 대하여 이자배상의 성격을 갖는 반 전세가 유행하고 있다.
지역이나 임대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상당한 보증금을 걸고도 매월 월세를 지불한다는 건 임차인의 입장에서 볼 때 주거비가 너무 큰 비중을 갖는다고 볼 것이다.
보증금을 적게는 500만 원에서 많게는 3000만 원 정도 걸고 매월 100~300만 원씩을 지불하는 순수한 월세와 일정 보증금에서 매월 까나가는 사글세도 영세민들의 입장에서는 주거비가 전체 생활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집 없는 사람의 눈에는 판잣집이 궁궐로 보이고 다락방이 큰 안방으로 보이는 법이리라.
어찌 보면 임차인들은 임대인들의 예금통장을 채워주는 자동인출기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임대인들은 목돈을 들여 부동산을 샀고 18가지의 공과금이나 이자를 내가며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세금이나 월세가 비싸다고 볼 수는 없다.
또 보유에는 만만치 않은 유지비도 따른다. 과부 사정과 홀아비 사정에는 저마다 불평과 불만이 있듯이 임대인과 임차인도 그러할 것이다.
필자가 새삼스럽게 임대인의 입장과 임차인의 입장을 설시한 이유는 요즘 부동산 임대차로 인해 상반된 주장이 극과 극으로 치닫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양보해도 될 일을 사소한 이해타산에 얽혀 법정까지 오가는 일이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서로 상생하는 입장임을 이해하시라. 임차인 없는 임대인이 어디 있으며 임대인 없는 임차인이 어디 있으랴.
-임대인이 집을 팔고자 해도 임차인이 보여 주지 않는다-
주택 임차기간은 최하 2년이라는 법의 보장이 있다. 집이 팔려도 임차인은 2년을 거주하면 될 일이다. 임대인이 사정에 의해 집을 팔고자 해도 임차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그 집은 팔릴 수 없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시라. 거주기간이 법으로 보장돼있는데 왜 남의 집을 팔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단 말인가.
물론, 살고 있는 집에 외부 손님이 들어와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됨은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또 하자는 없느냐는 등 이것저것 묻게 되면 속이 뒤집힐 것이다.
그러나 그 집을 팔아야만 하는 임대인의 처지를 백번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도 언젠가는 임대인이 될 것이다.
-전세보증금 올려주지 않으려면 나가거라-
임대차보증금은 경제사정의 변동과 당사자의 요구에 의해 올리거나 내릴 수 있다. 이게 내릴 때는 있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오를 때는 감당하기 힘든다. 수
도권은 대개 1억~3억원 선이지만, 서울은 5억~6억원짜리가 태반이다. 경제사정이 변했다 하더라도 2년 지난 후 몇 천만원을 올려 달라거나 1억~2억원을 올려 달라고 하면 임차인이 그 돈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학군이나 직장 거리상 옮길 수는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매달 지불하기로 한 돈이 바로 반 전세가 되지 않았는가. 부동산시장 침체로 값이 내려 크게 손해를 보고 있음은 알고도 남는다.
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임차인들에게 과도한 인상은 요구하지 마시라. 역전세난이 일어나게 되면 복수를 당하게 된다.
-임차인이 집을 엉망으로 해놓고 나갔다-
임대인은 임차인이 사용ㆍ수익할 수 있도록 목적물을 넘겨줄 의무가 있고 임차인은 선의의 관리자로서 사용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임차인이 2년이나 4년을 살고 나갈 때 문짝이 떨어져 있거나 유리창이 깨져있거나 바닥이 긁혀 흉하게 변하는 등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채 파손을 하였다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 세를 들어 사는 집일수록 깨끗하게 사용한다는 마음을 갖자.
평소 사용에 따른 불편이나 사소한 파손은 임차인이 수리하는 게 원칙이다. 전구가 깨졌고, 문고리가 빠졌다고 임대인에게 연락해도 임대인은 그런 부분까지 손봐 줄 의무가 없다.
하지만 천정에서 물이 쏟아진다든지 욕심에서 물이 새어 집안으로 범람한다면 대수선에 해당되어 임대인이 수리해 줘야 하는 것이다.
허름한 집 세놓으면서 임차인에게 수리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받는 행위는 법률적으로 무효다.
-묵시적 갱신이다. 이사비용, 중개수수료 내라-
임대차계약을 종료하고자 할 때에는 임대인은 기간만료 3개월 전에 임차인은 1개월 전에 상대방에게 통보함이 원칙이다.
전화, 문자, 편지, 내용증명 아무렇게나 해도 효력은 마찬가지다. 나간다 했다 안 나간다 했다 하는 임차인도 있고, 그대로 살아라 했다가 다시 나가야 한다는 임대인이 있어 분쟁이 일어난다.
서로 임대차를 종료하기로 했는데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기간이 1개월을 넘겼다면 어찌해야 할까?
임차인은 일단 묵시적 갱신이 되었으므로 이사비용이나 중개수수료를 달라 할 것이고, 임대인은 일단 임대차를 종료하기로 약정했었는데 1개월 기간이 늦었다고 어찌 그게 묵시적 갱신이 될 수 있느냐고 할 것이다.
임대차 종료기간은 1~2개월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간을 다 채우지 않았으니 그에 따른 비용을 내라거나 기간이 늦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하라는 주장은 자기 억지라고 볼 것이다.
전세가 나가지 않아 기존 세입자가 수개월을 더 살고 가는 일도 있다. 그럴 때에는 그에 따른 손해를 지급해야 한다.
앞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은 악어와 악어새의 입장임을 이해하시라.
다주택자는 전세나 월세입자를 위해 주택을 제공하고 임차인은 자기 집이 없어도 임대인의 덕분으로 가족과 함께 좋은 집에서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자.
그리고 헤어질 때에는 서로 손을 흔들어 주며 부디 잘 지내고 잘 가라는 인사를 하자.
윤정웅 내 집 마련 아카데미(부동산카페). http://cafe.daum.net/2624796
법무법인 세인(종합법률사무소) 사무국장. http://cafe.daum.net/lawsein
수원대 사회교육원 교수(부동산, 법률). 011-262-4796, 031-213-4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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