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매정보지를 보면 월세나 반전세가 아닌 전세보증금이 지역 평균 전세가에 비해 턱 없이 낮게 설정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보통 소유자겸 채무자가 소액보증금이라도 건지기 위해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과 짜고 허위 계약서를 작성한 후 방 1개나 일부를 점유하면서 실제 임차인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민형사상으로 책임을 질 수 있으며 법원 역시 최근 판례를 보면 허위 임차인을 약자라고 배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데 요즘 상황은 다르다. 주거 일부가 아닌 전부를 점유하면서 월세 보증금의 정도의 금액만 내고 전세로 사는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내막은 이렇다.
A씨는 최근 월세를 알아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세로 살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전세 값이 감당되지 않자 월세로 전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땅한 월세를 찾지 못한 A씨는 어느 날 공인중개사로부터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24평형 빌라를 전세 2300만원에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빌라에는 조그마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 대출을 많이 받아 조만간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경매가 시작되어 누군가가 낙찰 받아 이사 갈 때까지 1년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는데 2300만원에 1년 동안 산다면 임차인에게 이익이지 않겠냐고 설득한다.
A씨는 묻는다. 대출이 그렇게 많은데 전세계약을 한 후에 경매로 넘어가면 전세금을 지킬 수 있느냐고? 이 역시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소액임차인은 비록 선순위 대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보다 먼저 우선해서 배당을 받아 가는데 그 금액이 2200만원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배당을 통해 받지 못한 100만원은 경매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공과금 등을 내지 않으면 되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낙찰자에게 이사비로 요구하면 된다고 한다. 소유자는 전세를 놓아 보증금을 받아서 좋고, 임차인은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공인중개사는 중개수수료를 받아서 좋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냐고 역설한다. 한 푼이 아쉬운 A씨의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이익을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가 생긴다. 바로 소유자의 채권자들이다. 최근에 친분이 있는 부동산 전문 변호사와 식사를 했다. 배당이의의 소송에서 채권자인 은행의 변론을 맡은 그는 1심 판결에서 승소를 했다. 비정상적인 전세계약, 과도한 채무로 인해 경매가 진행될지 알고 들어온 임차인보다 선의의 피해자인 채권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자평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소송이 증가할 것이다. 소송이 시작되면 변호사를 전면에 내세운 은행을 상대로 임차인은 버거운 싸움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임차인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전세를 찾는다. 어떻게 보면 2200만원은 그들에게 재산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잃을 수도 있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들어갔던 비용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 겪게 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낼 수 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비정상적인 전세가격이 형성되어 있다면 그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겉으로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을 들어다 보면 이익만큼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엔 절대 공짜가 없다.
오은석, 북극성부동산재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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