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들이 죽을 지경이다. 책이 안 팔리기 때문이다. 골목서점들이야 다 없어져서 어쩌다 책 한 권을 사려해도 인터넷을 뒤져야 한다. 인터넷이라는 괴물이 만물상 역할을 하고 있으니 책장사의 팔자도 머지않아 오뉴월 난로장수 신세가 되지 않을는지?
젊은 세대와 어린 세대가 걱정된다. 길에서나 직장에서나 집에서도 인터넷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책속에 들어있는 지식은 언제 다 배우게 될까. 50세 이상 세대들은 책의 귀중함을 다 아실 것이다. 옛날에는 책이 귀해서 서로 돌려가며 공부를 했거든,
훔쳐보고 몰래봤던 소설책, 숨어보고 돌려봤던 만화책, 고맙게 보고 또 물려줬던 참고서, 밑줄 잘 처지고 빨간 색연필로 덧칠해진 수험서 등 손때 묻어 누리끼리해진 책들의 행방이 궁금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박사,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시는 분들은 이런 책들과 씨름하고 있으리라.
공부할 때 새 책이 좋을까? 헌 책이 좋을까? 빌려봤던 헌 책이 좋더라는 기억이 있다. 내가 돈이 없어 책을 사지 못하고 빌려 봤을 때 공부가 잘 되더라는 것이다. 어느 날까지 책을 돌려줘야 했을 것이므로 한쪽이라도 더 읽고, 외우려고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은 새 집이 좋을까? 헌 집이 좋을까? 기분은 새 집이 좋지만, 살기에는 헌 집이 좋더라. 헌 집이 있는 곳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교통이 좋다. 헌 책이나 헌 집이나 너무 낡아빠지면 공부도 안 되고 생활에도 불편함은 당연하다. 필자가 말하는 헌 집은 그냥 10-15년 정도 되는 주택을 말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필자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초등학교 6년 동안 책 2권을 사봤고, 중학교 때는 영어책 한 권만 사봤다. 그때는 책값이 유상이었기 때문에 책값을 내지 않으면 학교에서도 책을 주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옆 학생의 책을 같이 보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그래서 남의 책을 베끼는 게 일이었다. 몽당연필과 요즘 도배 초벌 할 때 사용하는 마분지 공책이 전부였다. 참고서는 시험 때 몇 문제 보여주는 조건으로 옆 학생으로부터 빌려봤다. 어느 때는 책을 빌려준 학생과 필자의 시험점수가 똑같아 들통이 난 일이 있다.
집은 어떤가? 새 집에서 살아보니 돈이 많이 들어가더라. 가구 준비에서부터 유지비, 세금, 관리비~ 그러나 헌 집은 도배하거나 인테리어로 끝난다. 자금준비에서부터 생활에 이르기까지 부담을 줄일 수 있음이 장점이다. 필자는 촌놈이라 그런지 헌 책이 좋고, 헌 집이 좋다고 생각한다.
제대 막 하고 나니 공무원 시험이 있었다. 그러나 시험과목이 변경되어 책을 사야했으나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묵은 책 꺼내놓고 뒤적거리고 있을 때 같은 동네에 사는 ‘남’이라는 처녀가 왔더라. 엄마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 왔다고 했었는데 평소 그 처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다 마주쳐도 못 본 척하고, 저쪽에서 모습만 봐도 가슴이 콩닥거리고, 어떤 때는 제까짓 것 하다가 다시 눈앞에서 아롱거리는 그런 처녀라는 표현이 옳을 것 같은데, 그 처녀의 마음은 전혀 모른다. 단, 수줍음을 잘 탄다는 것밖에,
그날따라 그 처녀는 필자의 책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아무 말 없이 쏜살같이 가버렸다. 평소 말을 주고받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필자는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2시간 후 그 처녀는 다시 나타났다. 신문지로 싼 책을 한권 내놓더라. 필자는 책을 보는 순간 눈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시험과목 10과목을 총 정리해놓은 책이었다. 두께가 7센치 정도 되는 두꺼운 ‘필승 요점정리 수험서’라는 책, “지금 삼촌이 이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작년에 봤던 책이랑께. 금년 신판을 또 샀기에 작년 판을 가져 왔구먼. 오빠! 이 책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하소. 시험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 책을 달달 외워가소. 잉~”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필자는 그 책을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외워 담았다. 전
국도청소재지에서만 볼 수 있는 시험이기에 필자는 광주까지 가야했다. 비포장도로 에서 광주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남’이라는 처녀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천 원 지폐 몇 장을 쥐어 주고, 도망쳐 가버리더라.
‘이게 사랑인 모양인데 그 인연이 끝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너희 집은 워낙 잘 사는 집안이고, 필자의 집은 쪽 째진 집안인데 혼사일이 어디 쉽게 되겠느냐?’
같이 근무하는 변호사 왈, 공부는 농땡이 치다가 아침 화장실에 가면서 휴지를 하기 위해 시험지를 가지고 들어갔다가 볼일 보면서 읽어 봤더니 그 문제가 그대로 나와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다.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고, 공직과 인연이 있는 분이다. 부장판사까지 지냈다.
필자도 시험문제를 받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이가 준 참고서에서 전반적인 문제가 출제 되었더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필자는 수석합격을 해서 공직에 나갈 수 있었고, 그 후 여러 번 시험을 합격하는 데 주춧돌이 될 수 있었다.
첫 월급타서 어머니 내복과 그 처녀 스타킹을 사준 기억이 나는데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더라. 스타킹 신고 도망을 가버렸는지, 그 후 지금까지 다시는 ‘남’이를 볼 수 없고, 꿈에서도 만난 적이 없다.
필자가 멍청한 놈이리라. 목도리를 사줬으면 딱 걸려 오도가도 못 했을 텐데, 스타킹을 사줬으니 오죽이나 잘 도망했겠는가. 부동산도 그럴 것이다, 요즘 맘에 드는 부동산도 놓치면 그만이다. 저것은 내 것이겠지.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다. 형편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마음에 드는 부동산이 있거든 점만 찍을 게 아니고 넘어뜨려라. 넘어뜨리지 못하면 임자는 하룻밤 사이에도 번지수가 다르게 변하더라. 사랑과 부동산에도 인연이 있을 것이고, 그 인연은 기회라는 배를 탔을 때 이루어지리라. 사람과 부동산 그리고 인연과 기회,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21세기 부동산힐링캠프(부동산카페)대표. http://cafe.daum.net/2624796
법무법인 세인(종합법률사무소)사무국장. http://cafe.daum.net/lawsein
수원대 사회교육원 교수(부동산. 법률). 010-5262-4796. 031-213-4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