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들 때는 전직 회사 동료들을 만나고 싶지 않더니 생활 여건이 나아진 요즘은 가능한 한 전직 회사 동료들의 경조사를 챙기려고 하고 있다. 나를 내친 회사지만 그래도 옛 동료들은 가족과 같은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선배 아들 결혼식에서 친한 선배를 퇴사하고 16년 만에 만났다. 좀 친했던 선배였는데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신기했다.
한 달 후 그 선배가 전화를 했다. 반가워서 식사나 하자고 했더니 며칠 후 사무실로 방문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 하는데, 지금 뭐하시냐고 물었더니 2년 전 정년퇴직하고 지금 보험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나는 좀 의아해서 말문이 순간 막혔다. 메이저 신문사에서 기자로 30년 정도 근무하고 정년을 했다면 돈도 좀 많이 모았을 테고 연금도 나와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을 터이었다. 그런데 보험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한다니 의외였던 것이다.
퇴직금은 몇 년 전 중간정산해서 자녀들 키우고 유학 보내는 데 다 썼고, 노후 대비는 국민연금 들은 게 고작이라 연금 최대치인 128만 원 받는 게 수입의 전부라고 했다. 처음 보험회사 일을 할 때는 평생 갑의 입장에서 생활하다 영업이란 걸 하니 매우 힘들었지만 지금은 수입 여부를 떠나 일 자체가 좋다고 했다.
은퇴 후 일이란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일이 없어지면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아서 금세 몸과 마음이 늙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모아 놓은 돈이 많지 않거나 연금이 적다면 은퇴 후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 생활비로 충당할 만큼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다행히 보험 일이라도 찾았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30년 직장을 다니면서 고생한 노후 치고는 매우 초라했다. 겨우 128만 원이 노후 대비의 전부가 되었다니 말이다. 128만 원은 국민연금 수령 최대치이지만 이는 노부부가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떤 대기업의 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시에서 60대 노인 부부가 넉넉히 생활하려면 최소한 월 300만 원은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해외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즐기려면 월 400만 원의 고정수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60대 노인들의 수입은 월 200만 원을 넘지 못한다. 100만 원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월 200만 원의 수입이 있으려면 국민연금을 최대치로 받더라도 월 62만 원 정도의 별도 수입이 있어야 한다.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우리 60대 노인들이 무식해서거나 게을러서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뼈 빠지게 일하고 아껴 썼어도 자녀들을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려면 노후 대비는 꿈도 꾸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과거에는 잘 자란 자녀들이 부모님을 봉양했지만 지금 세대는 본인들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이라 부모 봉양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녀를 키우느라 노후 대비를 하지 못했어도 자녀에게 손을 내밀게 되면 자녀는 물론 본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요즘은 자녀에게 손만 내밀지 않아도 훌륭한 부모가 된다.
그렇다고 은퇴 후 창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창업하면 80%가 망하고 직장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데 박봉에 그마저도 오래 다닐 수 없다.
인생은 60부터라 했고, 100세 시대라고 떠들고 있는 현실에서 노후를 가난하게 보낸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다.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해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시켰는데, 인생의 황혼을 맞이해서 그간 고생한 인생을 상쇄할 수 있게끔 멋진 노후를 맞이해야 죽어서도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지금부터 노후 대비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노후 재테크는 필수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이다. 노후에 넉넉한 생활비가 없다면 이는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아니다. 인생을 즐기기는커녕 그야말로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삶의 배신이자 굴욕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노후 재테크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끼고 돈을 모으는 것이 재테크라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돈을 아끼고 모아서는 넉넉한 여유자금을 만들 수 없다. 돈을 모으는 속도가 화폐가치가 추락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며, 돈을 조금 모아놓으면 또 써야 할 데가 왜 그리 많은지 목돈이 되지 않는다. 은퇴한 사람들 중에는 퇴직금을 포함 모아놓은 돈이 꽤 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자녀들의 결혼자금으로 상당 부분이 나가야 하고, 아무리 아껴 써도 계속 돈이 줄어들면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은퇴를 앞둔 분들의 상담이 많이 있지만 필자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재테크에 대한 자신만의 고정적인 생각을 바꾸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출을 받거나 변화를 시도하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여유 자금이 없다면 대출을 받아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텐데 ‘대출은 나쁜 것이다’란 생각 때문에 그 또한 쉽지가 않다. 여유자금이 있는 분들은 다가구나 다세대 주택 등을 구입해 월세를 받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이 또한 ‘아파트 신봉론’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도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는 쓸 만한 아파트를 찾아다니느라 골병만 들고 있다. 쓸데없이 거주비용만 많이 나가는 아파트를 팔거나 줄여서 여유 돈으로 월세 부동산을 구입하라고 권유해도 ‘지금 팔면 손해’라거나, ‘나중에 더 오르면 팔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도 많다.
아파트나 땅에 돈을 100억 묻어 놓으면 뭐하는가.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그보다는 매월 500만 원이든 1,000만 원이든 돈이 나오는 부동산이 최고인 것이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부동산을 깔고 앉아 있는가. 그보다는 매월 돈을 쓰며 인생을 즐기는 것이 그간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고 삶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정년이 아직 남아 있는 분들은 월세 부동산을 전세 끼고 서너 채 선점한 다음 정년 때까지 서서히 반전세, 월세로 돌리게 되면 은퇴 후 월 수백의 고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아직은 월세전환율이 낮아서 월세로 원 룸이나 투 룸을 구입하게 되면 대출을 많이 받고도 본인 돈이 6,000만 원 정도(강남의 경우)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전세를 끼고 구입하면 한 채 당 2,000만 원에서 4,000만 원이면 되고 대출을 전혀 받지 않아도 된다. 2년 후 재계약할 때는 전세금 상승으로 본인 투자금을 절반 이상 건질 수 있고, 반전세로 전환해서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여유자금으로 은퇴할 때까지 전세 물건을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게 되면 은퇴 후 고정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강남이나 마포 등 역세권 신축빌라는 앞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공급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지을 수 있는 땅이 거의 소진됐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모아서 해야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며, 월세 끼고 한 채보다는 전세 끼고 서너 채를 선점하는 것이 노후를 여유 있게 보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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