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며느리가 수도권으로 올라간 지 10년 만에 새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했다는 전갈을 받고, 전라도 시골에 사는 70대 중반 김 영감 부부는 우리 애들도 드디어 “성냥갑”을 마련했다고 온 동네 자랑을 하셨다. 시골에서는 아파트를 성냥갑이라 표현한다.
따라서 시골에 살지라도 도시에 성냥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자반열에 속한다. 시골에서 전답 팔고 집 팔아봤자, 도시에서 중소형 아파트 한 채 사기도 버거운 실정이기에 농부들의 마음은 농사는 농사대로 짓더라도 후일을 위해서 도시에 성냥갑을 갖는 게 큰 희망으로 삼고 있다.
김 영감님은 아들이 대견스러워 연방 헛웃음을 치신다. 성냥갑도 보고 싶고, 병아리 같은 손자 손녀들이 보고 싶어 참깨,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찹쌀, 팥 등 곡식을 두 보따리 싸서 이고 지고 고속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은 오늘따라 대부분 아파트만 보인다.
“저렇게 많은 아파트에 누가 산당가? 엄청 지어놨네. 아들이 샀다는 아파트도 저렇겄제?”
“모르겄소, 언제 우리가 아파트 살아봤어야제~ 아파트 이름은 잘 적어 놨당가요?”
“암, 잘 적어놨제. 그런데 아파트 이름이 엄청 길고 무슨 뜻인지 모르겄네”
“가보면 알겄지라~”
아파트 이야기 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린 김 영감 부부는 택시를 탄 후, 운전기사에게 “이 아파트로 가 주시오”라고 쪽지를 내밀었다. 2천 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인지라 운전기사는 금방 알아차리고 능수능란하게 운전을 해서 아파트 정문에 택시를 세웠다. “다왔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보따리 짐을 내리는 사이 택시는 떠났다. 그런데 “아뿔싸” 아파트 이름과 동호수, 아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택시 안에 두고 내린 것이다. “이 일을 어째?” 지나가는 주민들과 초등학생을 불러 세워 김소라네 집이 어디냐고 물어봐도 아는 사람은 없다.
마침 정문 경비아저씨가 김 영감님 부부를 발견하고, 방송을 통해 “전라도 어디서 오신 김소라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아들집을 찾고 계신다”는 방송을 했으나 집이 비었는지, 두 시간이 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다.
경비아저씨도 애가 탈일이다.
경비 - 이 아파트가 분명 맞습니까?
영감 - 운전기사가 쪽지를 가져가 버렸으니 알 수 없소.
경비 - 아파트 이름 기억하세요.?
영감 - 스무 글자로 된 아파트인데 영어발음이라 기억할 수 없소.
경비 - 전화번호 모르세요?
영감 - 전화번호도 쪽지에 적어 놨는데~
경비 - 아파트 이름이 스무 글자라면 이 아파트가 맞긴 맞는데~ 옳지 좋은 수가 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 관리사무실에 가서 입주민 명단을 확인하고 올 테니, 아들 이름이 뭐요?
경비 - 내 아들은 김병식이요.
30분의 시간이 또 흘렀다. 입주민 명단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공동으로 등재돼 있었다. 경비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집을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다. 아들 부부는 쌍벌이인지라 오후 6시 이후가 돼야 올 것이고, 애들은 학원에 간 모양이다. 오후 2시에 도착한 김 영감 부부는 몇 시간을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신 할머니께서는 지치셨는지 현관바닥에 누워버린다. 옛날에는 “장미” “진달래” “개나리” 아파트였으나 지금은 외래어로 바뀌었고, 그 뜻도 애매모호 하거나, 이중삼중으로 좋은 단어만 골라서 쓰기 때문에 아파트 이름이 스무 글자까지 늘었다.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께서 통곡할 일이다. 건설사에서 이름을 지어봤자, 이제는 입주민들이 바꿔버리는 세상이다. 옛날 코미디에 아들 이름을 지으면서 장수하는 이름을 짓다보니 “김 수한무(壽限無),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 워리워리 세부리깡~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똘똘이” 등등 10분 동안 불러야 할 이름을 지었음을 기억하시리라.
대형건설사나 중견건설사나 아파트 이름을 잘 붙이느냐, 잘 못 붙이느냐에 따라 계약비율이 달라진다. 정도가 심해지다 보니 건설사에서는 고상한 외래어 찾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순수한 한글만을 쓰거나, 한문 혼용 아파트 명칭은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가 조사해 보니 한글이나 한문 혼용 아파트 이름은 “내안愛” “사랑으로” “편한세상” “백년가약” “래미안” 등 몇 개에 불과하지만, 이름 끝에 또 외래어를 붙이기 때문에 순수한 우리말의 아파트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사람이름이다. 요즘은 작명을 부탁하는 사람마다 옛날처럼 글자의 획수를 따져 짓기보다는 부르기 쉽고 아름다운 이름을 원한다. TV프로에 아름다운 이름이 나오면 그 다음 달 출생신고에는 모두들 그 이름으로 신고하기에 똑같은 이름이 수백 명 있게 된다.
세상이 빨리 변해가니 건물이나 사람 이름까지 변하고 있다. 따라서 부동산 재테크도 변하고 있다. 전세 안고 집 사고, 대출 안고 집 사는 세상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부동산 재테크를 하시겠는가. 한 해가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내일의 새로운 그림을 잘 그려보자.
21세기부동산힐링캠프(부동산카페)대표. http://cafe.daum.net/2624796
수원대 사회교육원 교수(부동산. 법률). 010-5262-4796. 031-213-4796
수원대 사회교육원 부동산학과 봄학기 학생모집 중 010-4878-6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