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제도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다. 옛날에는 주로 도시에서 방을 빌려주고 월세를 받았었는데 집주인의 입장에서 1년분 이자가 나올 목돈을 받으면 그 목돈에 여윳돈을 보태 또 부동산을 살 수 있었으므로 결국 그 목돈이 전세보증금으로 변환 것이다.
임차인의 입장에서도 다달이 월세를 내는 것 보다 목돈을 주었다가 집을 비어줄 때 다시 받아 나오면 공짜로 사는 셈이 되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가 될 것이기에 보증금이 있는 사람은 전세로 살고, 없는 사람은 월세로 살게 됐다. 이게 1950년대 6.25사변 후에 등장한 전ㆍ월세 제도다.
1960년 초 민법 개정 때 전세제도를 빼느냐, 넣느냐에 대한 의논이 분분했다. 결과는 민법에 넣기로 했다. 당시 농촌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처지에 있었으므로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민법의 물권편에 넣고, 보증금의 보호는 근저당권설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하게 됐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민법에 규정한 전세권이 부동산투자의 단초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받아 또 집을 사고, 또 보증금을 받아 집을 사는 집 투자를 했다. 이런 투자를 부채질한 것은 매년 또는 3~5년 사이에 집값이 약 30%씩 올랐기 때문이다.
전세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고,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보증금 액수가 집값의 80%에 육박했다. 3억원짜리 집은 전세보증금이 2억4000만원 정도 됐기에 5000만원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었다. 그게 재건축이나 재개발에 들어가면 팔자까지 고칠 정도였다.
심지어 자기 집을 전세 놓고, 다른 집에서 전세로 살면서 그 보증금으로 또 집을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름하여 이를 ‘갭투자’라 칭했는데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갭투자로 인해 질서가 문란해졌고, 사는 집 한 채 소유가 아닌 ‘사재기’ 또는 ‘사 모으기’식 투자가 돼버린 것이다.
특히 시장이나 장관,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집값을 들었다 놨다 했다. 5000만원 내지 1억의 여윳돈으로 전세를 안고 집을 살 사람들은 재개발ㆍ재건축에 귀가 쫑긋해 있으므로 작년처럼 여의도 개발문제가 거론되면 집값은 날개를 달았고 모든 주택시장을 용광로로 만들었다.
보통사람들은 어찌하던 집을 여러 채 사두면 좋을 줄 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열 채씩 백 채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실제 상담해보면 자기 돈은 몇 억 또는 몇 십억뿐이고, 대부분이 전세보증금이나 대출이다. 매달 이자를 몇 천 만원씩 내는 사람도 있다.
한 채를 가지고 있더라도 영양가가 있어야지 백 채 가지고 있으며 빚 속에서 산다면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논에 물이 가닥 차 있어야 벼가 잘 자라는 줄 안다. 가끔은 논바닥을 말려야 벼가 튼튼하게 자라고, 수확을 많이 할 수 있다. 인생살이도 같은 것이다.
“전세 보증금 받아 집 사들이는데 쏟아 부어
자기 집 빼서 남의 집에 얹혀 살며 ‘갭투자’
주택임대 혜택과 보유세 사이에서 고민 커져”
잠시 빌려 쓰는 세상, 사는 집 한 채면 족하고, 욕심이 생기고 여유가 있으면 땅뙈기 하나 사놓으면 될 일이지. 집하고 무슨 원수를 졌다고 여러 채를 갖는단 말인가? 예로부터 이르기를 ‘계(契)’가 천이면 빚이 천 냥이라고 했다. 빚 천 냥 짊어지고 다리 오그리고 살다가 죽어봐라. 저승에 가서도 다리 오그리고 살 것이다.
우리들 삶의 그릇에도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비워야 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주택시장에 매물이 잠길 때는 물을 비울 때다. 오늘은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야 할 것인가. 그걸 잘 판단하는 게 지혜로운 삶이다. 집값은 쉽게 오르지 않을 것이니 값이 더 내리기 전에 어서 비우자.
사람의 마음에는 저마다 저울이 있는데 가끔 욕심이라는 존재가 눈금을 가려 사리분별을 못할 때가 있다. 특히 돈과 사랑과 출세에는 눈금이 없다. 작은 돈 들어오면 작은 부동산 사놓게 되고, 그걸 되풀이 하게 되면 재미가 나서 열 채, 백 채, 늘어나서 서민들이 살아야 할 집 다 가져가버렸다.
사람의 욕심과 작은 돈, 그리고 작은 집, 이 3박자가 지금 우리나라 주택시장을 꽉 묶어버렸다. 그런 투자자들에게 정부는 임대사업자라고 부르며 갖가지 혜택을 퍼주고 있다. 4월 초에 아파트 공시가격이 오르면 이제 매년 집 한 채씩 팔아야 보유세를 낼 수 있다. 피 같은 돈 세금으로 내면 애국자이긴 하겠지만.
강남 집값이 그 동안 열탕이었지만, 지금은 냉탕에서 떨고 있다. 잠실동 어느 아파트 전용 85㎡짜리는 4년 전에 8억5000만원이었다. 그러던 집이 지난해 18억5000만원까지 올랐다. 지금은 16억원에 내놨는데 아예 흥정조차도 들어오지 않는다. 중개업소에서는 14억원에 내놔보라 하는데 그렇게라도 해야 할지 난감한 노릇이다.
혹자들은 기다리노라면 서울 집값은 다시 오를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앞으로 공급량도 무시할 수 없으려니와 이제 작은 돈으로 작은 집 사는 투자는 틀렸다는 심리가 팽배해 상당기간 값이 내리거나 약보합을 유지하다가 3~5년 후에 다시 값이 오르는 시세 게임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느 종목에 투자해야 할까? 필자가 늘 말하고 싶은 바는 토지다. 토지는 커도 좋고, 작아도 좋다. 다만 전세를 놓을 수 없는 게 문제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투자하되 5년 이상 10년쯤 보고 투자하는 지혜를 발휘해보자.
◇윤정웅= 21세기부동산힐링캠프 부동산카페(cafe.daum.net/2624796) 대표, 수원대 평생교육원 부동산ㆍ법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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