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동안 부동산중개업의 외길을 걸어온 K씨. 부동산중개 사무실을 운영하며 꾸준히 사 모은 수도권 땅이 한때 50억 원대에 달했던 땅 부자였다.
K씨는 이를 밑천으로 빌라 건설업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잘 나가던 사업은 그리 오래 가지 못 했다.
1995년을 전후로 땅값이 다시 들썩이자 정부는 규제의 칼날을 꺼내들었다.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1차 손실을 입었던 K사장은 1999년 IMF로 운영하던 건설회사 마저 문을 닫아야 했다.
설상가상이었다.
회사가 망하고 나자 수십억 원의 빚만 남았다. 빚을 갚다 보니 금쪽같던 땅들은 어느새 남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사정이 급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보유하고 있던 땅을 대부분 헐값으로 넘겨야 했다. 급한 눈치를 보이면 거저다 시피 빼앗아 가려고 달려드는 게 세상 인심인 것을 새삼 절감했다.
대충 빚을 정리하고 나자 점심 값이 없어서 굶고 다닌 적도 있었다. 견디다 못해 한때 자신의 부하 직원으로 일했던 친구에게 몸을 의탁한 채 4∼5년을 버텼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심정으로 절치부심했다.
사실 K사장에게 아직 최후의 보루는 남아 있었다. 고향인 경기도 화성에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있던 3만3000㎡(1만평)의 과수원이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릴 때마다 ‘그냥 팔아버릴까’ 여러 번 망설였다. 하지만 차마 팔아넘기지 못했다. 워낙 애착이 컸던 땅이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후일 재기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계산이 깔렸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 제일 처음 사둔 땅이라서 미련이 컸다. 자식으로 치자면 장남 같은 존재였다.
Daum부동산은 제휴 부동산정보업체가 제공하는 매물 정보와 기타 부동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로서,
제휴 업체의 매물 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 및 이와 관련한 거래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사 또는
글쓴이에 있으며, Kakao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