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영동대로를 따라가면 아주 오래된 아파트가 하나 보인다. 강남 중심부에 아직도 이렇게 오래된 아파트가 있단 말인가?
아파트 외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빛 바랜 이름 하나가 눈에 띈다. 은마(銀馬). 바로 1979년 8월 지금은 없어진 한보건설이 강남 중심부에 지은 28개동 14층 4424세대 은마아파트이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 당시에도 복부인 치마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분양가는 평(3.3㎡)당 68만원, 31평 기준 2100만원 정도였다.
그런 은마아파트가 드디어 재건축을 시작한다. 완공된 지 43년 만이며 재건축추진우위회가 설립된 지 19년 만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계획안이 10월 19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이하 도계위) 심의를 통과했다.
이번 결정으로 33개동 최고 35층 5778세대 대단지 아파트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사업은 그동안 부동산시장의 뜨거운 이슈였지만 안전진단 세 차례 탈락, 주민간 이견, 서울시 반대 등 여러 번의 고배를 마셨다.
강남 재건축의 상징인 은마아파트 재건축 이제 마음껏 달릴 수 있을 것인가? 재건축계획안 심의통과는 축하할 일이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는 어렵고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당장 조합설립을 해야 하는데 토지 등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동의, 토지면적의 4분의 3 이상 동의, 그리고 각 동 별로 과반 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같은 가족 사이에서도 돈이 걸리면 이견이 생기는데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내 집에 대한 재건축 문제는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민감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어서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특히 상가건물 동의는 아파트와 이해관계가 달라 재건축사업의 아킬레스 건이라 할 정도로 갈등이 많이 발생한다.
여기에 GTX노선이 지하로 지나가는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사업성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현 용적률이 204%인데 통과된 계획안에 따르면 250%밖에 적용되지 않아 사업성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 4424세대에서 5778세대로 재건축을 하면 1354세대가 늘어나는데 이 중 공공주택 678세대를 제외하면 일반분양은 676세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조합원 6100세대, 일반분양 4786세대의 둔촌주공 재건축사업도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데 사업성이 낮은 은마아파트 재건축은 앞으로 여러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분양가상한제 등 정부의 부동산 규제도 넘어야 할 숙제이다.
가장 빨리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는 신도시 개발사업도 계획에서 입주까지 대략 10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재건축사업은 정비계획안 심의통과 후 아무리 빨라야 10년이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서 15년 이상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뉴스만 보고 금방 될 것 같은 착각을 하면 안되는 이유이고 최근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꺾이면서 주변아파트 가격을 밀어 올리거나 서울 전역의 재건축, 재개발사업이 들썩일 가능성도 낮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얼어붙은 지금 상황이 오히려 서울의 새 아파트 공급을 위해 재건축, 재개발의 시동을 걸기 에는 좋은 때다.
만약 1년 전에 이렇게 심의 통과가 되었더라면 투자심리를 자극하면서 또 한번 홍역을 겪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향후 강남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은마아파트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