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급 과잉은 집값 하락을 걱정하는 유주택자나 투자자의 논리입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해요.”
최근 한 부동산 전문가가 전화 수화기 너머로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공급 과잉’이란 단어를 꺼내기가 무섭게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가 공급 과잉을 우려할 상황도 아닐 뿐더러 그렇다 치더라도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택 공급이 늘어나는 만큼 극에 달한 전세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측면에서다.
디소 무리한 듯하면서도 그럴 듯한 주장이다. 공급 과잉이 맞는지 등의 논란은 차치하고 한 번 짚어볼 만한 내용이다.
실제로 아파트 분양이 확 늘어나면 2~3년 뒤엔 입주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 시점에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가장 큰 피해자는 집을 분양받은 수요자나 투자자가 된다. 아파트값이 대출금보다 싼 ‘깡통주택’이 되는 등 금전적 손실을 떠안기 때문이다. 만약 금리까지 오르면 부담은 더 커진다.
“세입자에겐 배부른 소리”그렇다면 세입자는 어떨까. 공급이 늘면 그만큼 전세나 월세 물건이 많아진다. 특히 잔금을 마련해야 하는 계약자는 자금 부담에 월세보단 전세를 많이 놓는다. 그럼 전세물건이 늘고 전셋값도 내려갈 수밖에 없어 세입자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물론 기존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의 경우 집값 하락으로 자칫 전세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 영향이 많은 게 사실이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 전세로 사는 이모(33)씨는 “공급이 늘어 집값과 전셋값 거품 좀 쫙 빠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세난을 잠재우기 위해선 임대 등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업계 안팎에선 이런 논의가 수시로 오갔다. 하지만 몇 개월 새 ‘전세난 해법’은 ‘공급 과잉’이란 모습으로 둔갑했다.
기자와 통화하던 전문가는 “공급 과잉 우려가 많은 것이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그는 한 마디 덧붙인 뒤 전화를 끊었다. “전세난 때문에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아파트에서 연립·빌라로 이사하는 ‘전세난민’이 급증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세난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그냥 흘려 듣기엔 어딘지 찜찜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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