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보다 분양가가 20∼30% 싸서 분양받으면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을 것 같아 분양받으려고 합니다."(서울 노원구 거주 40대 주부)
지난달 28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몰려들 방문객들로 견본주택 내부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오전 방문객만 3000명을 넘어섰다는 게 견본주택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약 성적도 좋았다. 이 아파트는 지난 7일 진행된 청약에서 평균 33.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전 주택형이 마감됐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분양한 H아파트는 899가구 모집에 843명이 신청하는데 그쳤다. H아파트 분양 관계자는 "분양가가 주변보다 비싼데다, 전매도 계약 후 3년 동안 제한돼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같은 아파트라도 주변보다 분양가가 저렴하고 개발호재가 많은 역세권 아파트에는 수요자가 몰리지만, 그렇지 않은 아파트는 외면을 받고 있다.
지역별 편차도 커지고 있다. 개발호재가 많은 서울·수도권 유망지역과 공급이 적었던 대구 등 일부 지방의 경우 최고 수백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지역 기반 산업이 무너지고 규제의 유탄을 맞은 지역에선 청약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분양가 싼 유망지역 아파트는 수백대 1 경쟁률아파트 분양시장의 양극화는 무엇보다 단지별 청약경쟁률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특히 분양가가 저렴한 아파트에는 여지없이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청약 열기가 뜨겁다. 대림산업이 지난 7일 청약을 받은 서울 동대문구 e편한세상 청계 센트럴포레는 249가구 모집에 3807명이 몰렸다.
특히 전용면적 51㎡의 경우 279.5대 1로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아파트가 이처럼 분양에서 대박을 터트릴 수 있었던 건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편한세상 청계 센트럴포레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2600만원 선으로 주변 단지보다 20∼30% 싸다.
GS건설이 지난 3일 경기도 하남 위례지구 A3-1블록에서 분양 위례포레자이도 487가구 모집에 6만3472명이 신청해 평균 130.3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이 아파트 역시 공공택지 아파트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싸게 책정되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로또 분양'이라고 불리며 수요자 몰이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신설 역세권 아파트에도 청약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GS건설이 경기도 남양주에서 분양한 다산신도시 자연&자이가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 2일 청약에서 208가구 모집에 무려 1만689명이 신청했다. 단지에서 300m 거리에 지하철 8호선 연장선 다산역(가칭)이 예정돼 있어 서울 강남권까지 30분대 이동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분양가가 비싸거나 입지여건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파트에는 찬바람이 가득하다. 한신공영의 지난 11일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분양한 한신더휴는 1순위 청약에서 899가구 모집에 843명이 청약하는데 그쳤다.
이 아파트의 청약률이 저조했던 것은 역시 비싼 분양가 탓이었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한신더휴는 평균 분양가가 3.3㎡당 1189만원으로 앞서 분양했던 검단 금호어울림 센트럴(3.3㎡당 1150만원)이나 검단신도시 호반베르디움(3.3㎡당 1201만원)보다 비싸다.
'똘똘한 한채' 열풍 거세, 양극화 심화될 듯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수요자들이 철저한 옥석가리기식 선별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김재일 JPK리얼티 대표는 "정부의 고강도 규제로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투자자들이 돈이 될 만한 곳에만 지갑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똘똘한 한채'와 '로또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투자 수익이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곳에만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정부의 규제로 외각 지역 아파트를 매도하고 '똘똘한 한채'에 집중하려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주택시장에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분양시장 불투명성 확대로 수요자들이 내 집 마련에 한층 더 신중해진 측면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특히 최근 지방 분양시장의 경우 실수요자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주거 여건이 좋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곳은 청약자가 몰리는 반면, 집값 하락 지역은 미분양이 늘어나고 있다"며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 같은 지역에서도 단지별로 양극화, 다극화 현상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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