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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지킬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주요 원인
건축사인 필자가 집을 지으려는 건축주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집 짓다가 십 년은 늙는다는데 괜찮을까요?”
“예전에 집 한번 짓고 나서 다시는 집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이럴 때마다 필자의 심정은 '이제는 건축시장이 옛날 같지 않다. 안심하셔도 된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예전보다 건축 구조물이 더 튼튼한가, 화재 대비는 잘 되고 있나, 계약 관계가 투명해져 건축주는 안심하고 설계나 시공을 맡길 수 있는가, 감리는 책임을 다하는가 등등 하나하나 따져 보면 예전과 그대로인 부분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건축시장이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내실은 그렇지 않다.

단적인 예로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기로 하자.

지진 대비 법과 규제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 강화

첫번째, 포항에 지진이 났을 때 벽돌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다세대 건물 일층의 기둥들이 주저앉았다. 이후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지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고, 지진에 대비하여 시간과 비용을 더 쓰게 됐다. 구조 안전 확인서가 모든 건물에 의무화되고 구조사무실은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그 비용은 건축주의 비용에 추가되었다.

이 결과 우리는 포항 지진 이후 지진에 관련해서 소형 건축물에서만큼은 일본에 못지 않게 충분한 규제와 안전장치를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국에 일본 같은 강진이 온다면, 우리의 건축물들은 일본 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건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대부분 같은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진에 대비해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같은 법과 규제를 가지게 됐는데도 왜 우리는 아직도 지진이 나면 일본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될까. 

두번째, 도시의 공동주택과 근린생활시설 건물에 대형 화재가 빈발하고 있다. 화재가 나면 온갖 전문가들의 주장·자문·토론이 난무하고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의 대책이 쏟아진다. 누전, 밖에서 잠긴 문, 짐을 싸 논 좁은 통로, 외단열 공법의 외부 단열재 등 주된 원인은 화재마다 계속 바뀐다. 그때그때 화재의 주된 원인들이 확정되면 그에 대한 규제가 나온다.

최근에는 단순히 시민들이 보기에 불안해 한다는 이유로 드라이비트(화재에 취약하다고 알려진 외벽 도장재) 공법을 금지하는 지자체가 있을 정도로 그 대책들은 다양하고 신속하다. 대책을 세웠으니 이제 시민들은 화재 걱정 없이 안심할 수 있을까? 답은 지진과 마찬가지다. 여전히 화재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규제를 더 만들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뉴스에서는 대기업에서 만드는 단열재조차 규정보다 빨리 불이 붙는다고  보도된 바 있다.

세번째,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추락한다. 안전 검사가 강화되어 새로운 비계 시스템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중이다. 얼마나 더 좋은 규제와 시스템이 마련돼야 추락사가 없어질 수 있을까. 건설 현장은 사방에 낙차가 큰 곳들이고, 2~3미터 높이에서도 작업자가 떨어지면 다치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 많은 곳들을 공사 기간 내내 누가 어떻게, 어떤 좋은 시스템으로 다 관리해야 할까? 정작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자는 그 안전시설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식인데 말이다.
 

▲ 중소형 건축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건축주와 전문가 모두가 괴로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다.※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사회적인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 지자체, 국회는 지진이 나면 구조안전 대책, 화재가 잦으면 불연 재료 의무화, 안전사고 대책, 에너지 절약 방안 등 매년 건축법이 개정될 정도로 노력 중이다. 설계자, 시공자도 헷갈릴 정도로 수많은 대책이 쏟아지지만 현실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건축주는 규제가 생길 때마다 추가되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설계, 시공, 감리 등 건축 기간 내내 업체들과 씨름하며 자신의 건물이 제대로 완공될 때까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설계변경, 공사 지연, 추가 비용 요구 등 생각지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큰 사고나 시공업체와의 분쟁 없이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건축주의 걱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건물은 완공됐지만, 만일 지진이 발생하면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고,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안 붙는다고 해서 더 비싸게 시공한 단열재에서 여전히 유독가스가 피어오를 것이다. 콘크리트와 석재에서 방사능이, 각종 내장재에서는 발암물질이 나오지만 그 수치를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다. 누수, 결로 등의 부실시공은 경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현실적인 정책과 건축주 의식 전환이 필요

 이런 현실을 개선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허가권자가 기본을 지킨다면, 기본적인 법과 규칙들 그리고 상식과 양심을 지킨다면 모든 것들이 현저히 좋아질 것이다. 매년 대책들을 쏟아낼 필요도 없고, 건축주는 믿을만한 업체와 계약해 놓고 편안히 지켜보기만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기본을 지키려 해도 현실은 기본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지 않는다. 건축 일을 하는 사람 누구도 외부 충격에 무너지는 건물을 원하지 않으며, 자기 작업자들이 추락하고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어떠한 부실이나 사고라도 결국 책임이 돌아올 것을 뻔히 아는데 누가 원하겠는가. 근본적인 원인은 건축업계 밖에 있다.
 
 건축업계가 기본을 지킬 수 없는 예를 하나 들어보다. 건설 면허를 가지고 있는 업체가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소규모 건축물의 경우 면허 대여가 일상화돼 있다. 면허 대여가 건축의 질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폐해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면허를 대여한 시공업체는 대여 비용 때문에 공사비를 절감해야 하고 부실공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통상 면허 대여비는 총 시공비의 최대 1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공사가 잘못됐을 경우는 더 심각해진다.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힘들어지거나 아예 책임질 주체가 없어질 수도 있어 건축주가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면허대여를 한 건설업자를 모두 다 처벌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많은 사람들의 생계는 어떻게 할 것이며, 설사 다 처벌한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대신하게 될 것이다.
 
 우선 면허대여를 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보자. 동네에서 흔히 보는 다세대주택이나 상가(근린생활시설) 건물을 지으려면 보통 사장 겸 소장 1인, 보조 기술자 1인 정도의 인원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작은 건물을 짓는데도 종합건설면허가 있어야 되고, 면허를 따려면 5억 원의 자본금과 5명의 건축기술자 그리고 사무실이 있어야 한다.

자본금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일 년에 한두 채 짓는 규모의 업체에서 5명의 기술자 연봉을 지불하는 것은 그들의 사업 규모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면허를 대여해서 시공할 수밖에 없으며, 약점이 있기 때문에 더 열악한 계약조건도 받아들이게 된다.

기본을 안 지킨다고 비난하고 처벌할 것이 아니라 기본을 지킬 수 있게 만들어 줄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종합건설면허 같은 경우는, 자동차 운전면허에 비유하면 승용차 운전자에게 대형 트럭 면허를 요구하는 꼴이다. 소규모 건물을 지을 업체에게는 그에 맞는 면허를 신설해주면 될 일이다. 예를 들면 자본금 2억원, 기술자 2명 정도의 조건이라면 많은 업체들이 자신의 면허를 가지고 떳떳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모든 건설업체가 같은 면허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억지다. 소규모 건축 면허를 만들어 주고, 그래도 지키지 않으면 엄하게 처벌하면 될 일이다.

앞에서 예로 든 면허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지킬 수 있는 법, 규제를 만들어 주고, 그다음에 위반에 대하여 엄한 처벌을 가하는 것만이 기본을 지키는 길이다.

 건축주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업체에 일을 의뢰하기에 앞서 면허, 실적, 재정상태 등 업체를 꼼꼼히 살핀 후 세부사항들이 모두 포함된 정확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건축주들 역시 기본을 벗어나지 않아야 현실을 바꿀 수 있다. 터무니없이 싼 시공비의 유혹에 빠져 무면허 업체와 계약한다면, 건물 하나 짓고 십 년이 늙어 다시는 건물 짓기 싫어지는 현실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건축의 기본 지키려는 의지에 환경 뒷받침돼야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건축에는 수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매년 쏟아지는 대책에도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대책들 때문에 여러모로 시간과 비용이 추가되고, 추가된 비용 때문에 다른 필요한 비용이 생략되어, 가뜩이나 열악한 실정에 결과적으로 부실공사가 늘어날 수도 있다.

중소형 건축현장의 관계자들은 그 대책들을 공허하게 바라보고 허탈하게 웃는다. ‘국회의원들이 대책 세우지 말고 해외 외유를 다니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하게 된다. 새로 생기는 규제들이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은 되지 않지만, 현장에서 해야 될 노력과 비용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기본을 지키자'. 그리고 '기본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 이 두 문장은 같은 뜻이라는 것을 건축 관계자, 건축주, 허가권자 모두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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