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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도면 토대로 작성된 견적 요구해야
중소형 건물(일명 '꼬마빌딩')을 지으려는 건축주들을 만나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건물을 지어줄 시공사를 선정할 때 대개 상세 설계도면은 보여주지도 않고 그저 견적만 빨리 받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상세 설계 도면은 시공업체가 견적서를 산정하는 근거가 되는 기초 자료다. 그런데도 건축주는 도면은 보여주지 않고 견적서만 빨리 보내달라고 시공업체를 닥달한다. 이 경우 시공업체는 기존에 작성해 뒀던 견적서를 대충 짜깁기해 견적을 내준다. 

이때 시공업체는 대충 시중 단가에 맞춰 전체 공사비를 제시한다. 누가 봐도 무난한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수준의 금액에 공사비 액수를 맞춘다. 그러다 보니 시공사의 관심은 실제 설계 내용보다는 건축주 주변 지인들이 적당하다고 평가해줄 만한 공사비 금액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하는데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중소형 건축물 건축시장에서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설계자인 필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매우 안타깝기 그지 없다. 정확한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채 시공업체에서 대충 산정한 견적서는 추후 건축주와 설계자, 시공사 간 분쟁의 씨앗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대충 만든 견적서는 분쟁의 씨앗

이와 관련해 필자가 실제 경험했던 사례가 하나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서울의 한 현장에 중소형 건축물을 지으려는 한 건축주로부터 3곳의 시공사로부터 받은 견적서를 한번 검토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들 시공사가 건축주에게 제시한 총 공사비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세부 내역을 들여다 보니 견적서 내용은 업체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외장재의 종류가 설계와 다른 것은 기본에 불과했다.  창호의 수량과 성능이 다른 것은 물론, 설계 상에는 반영돼 있지 않는 공정이 버젓이 견적서에 담겨 있기도 했다. 

세부 설계 내역은 3개 업체 제각각 서로 다른데도 총 공사비는 3개 업체가 비슷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시공업체들이 사전에 전체 공사비를 설정해 놓고, 그에 맞춰 견적서의 세부 내역을 두드려 맞춰서 짰기 때문이다. 필자는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시공업체에 이 문제를 따져 물었다. 

그러자 시공업체에서는 "건축주가 설계 검토 기간을 너무 짧게 주고 공사비 산출을 요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면서 "그래도 견적을 시장 단가에 맞추어 산정했으니 실제 공사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건축주가 조급한 마음에 시공 견적서 빨리, 싸게 받으려 한다면 분쟁 위험도 그만큼 더 커진다. ※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시공업체의 해명대로 공사에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설계 내용을 제대로 검토하고 산출한 견적서를 토대로 지은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은 건축 품질이나 하자 등의 문제에서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 설계회사는 설계회사 대로 건물 건축 과정에서 설계 도면 내용을 제대로 관철시키기 위해서 그야말로 고군분투를 벌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중소형 건물을 지을 때  시공 견적서 산출은 전체 건축 공정의 첫 단추에 해당한다. 때문에 건축주는 이를 제대로 끼울 수 있도록 시공사에게 상세 도면을 토대로 작성한 견적서를 요구하고, 또 시공사가 이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한다.

특히 시공사와 설계자 간에 충분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건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줄일 수 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면 설계자가 설계 내용을 자세하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자료를 준비시켜야 한다. 예컨대 설계자가 설계자가 도면에 대한 설명서를 준비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건축주는 설계상의 특이점, 시공 상 유의할 부분, 건축 공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또 시공사는 건축물에 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정한 공사비를 산출 할 수 있게 된다. 시공 견적은 소위 '고급 주택이냐, 아니냐의 차이'로 산출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주·설계자·시공사 간 소통이 중요

물론 이와는 반대의 사례도 있다. 최근 충청북도의 한 건축 현장에서 겪은 일이다. 이 현장에서 필자는 건축 현장의 설계 이해도가 높은 상황에서 선정된 시공사와 일을 공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시공이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날 시공사로부터 '설계도면이 난해하고 어렵다. 하자 발생 여지가 많은 부분에 대해 상의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시공사 관계자를 만났다. 시공사 관계자를 만난 필자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시공사가 하자를 줄이고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해법을 고민해 상세 도면까지 그려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공사가 제시한 해법대로라면 공사비 증가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설계 도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방향 설정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공감대가 건축주에게까지 형성됐다. 이 덕분에 그 건축 현장은 별 탈없이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 사례에서 봤듯이 건물 건축을 분쟁없이 성공적으로 진행하려면 건축주와 설계자, 시공사 간 소통이 중요하다. 특히 무엇보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좋은 시공업체를 선정하려면 시공사를 기술인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제대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또 설계자는 설계자 대로 건축주와 시공업체에 설계 내용을 잘 전달하고 설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시공사를 단순히 예산을 줄이기 위해 싸워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면 시공사 역시 똑같은 태도를 취하고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러면 건축 공사가 제대로 진행될 턱이 없다. 

물론 이것이 시공사를 무조건 신뢰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간혹 건축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건축주가 지레 짐작으로 시공사에 저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건축주 입장에서는 건축물을 시중 단가보다 낮은 금액에 지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얼마 전 충청북도의 한 지역에서 자그마한 단독주택을 지을 때의 일이다. 이 건축 현장은 건축주가 꼭 필요한 공간 넓이에 비해 건축주가 확보하고 있는 예산은 부족했다. 그래서 필자는 나름대로 저예산으로 지을 수 있도록 설계 방향을 설정했다. 한창 설계 도면을 그리고 있는데 건축주로부터 시공사를 선정했으니 한번 만나봐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시공사와 만나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과연 시공사 측은 의기양양했다. 건축주가 제시한 공사비로 집을 지어 줄 수 있는 업체는 자신들박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설계 과정에서 이것저것 간섭하기 시작했다. 건축 예산이 적으니 재료는 특정 등급 이상은 쓰지 말라든지, 공기를 단축해 건축비를 줄일 수 있으니 자신들의 공법과 구조를 적용해야 한다든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필자는 고민 끝에 그때까지 진행돼 왔던 시공사와의 회의 내용을 무시하고, 나름대로 저예산 단독주택 설계도면을 만들어 건축주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설계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나눈 다른 시공사 2곳으로부터 견적서를 받아 건축주에 전달했다. 이 도면은 물론 건축주의 예산으로 충분히 집행이 가능한 설계도면이었다. 

건축주는 필자로부터 전달받은 설계도면에 만족해 했다. 필자는 건축주가 원하는 예산으로 알뜰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설계자로서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필자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축주는 당초 본인이 원하던 업체를 시공사로 선정했다. 회사 이익없이 봉사 차원에서 주택을 시공해주는 것처럼 사탕발림하는 시공사를 끝내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설계 도면은 시공사 입맛대로 완전히 왜곡되고 말았다. 그나마 유지됐던 설계 의도 조차 그들에게 생소한 공법이다보니 품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시공사에게 완전히 의존하던 건축주가 설계자보다 시공사의 말을 더 신뢰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당초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해당 시공사가 건축 마지막 단계에서 당초 건축 예산을 넘어선 추가 비용을 공사비로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공업체가 건축주에게 추가 공비사를 요구하면서 했던 말이 가관이었다. 이 시공사는 건축주에게 추가 비용을 달라면서 "당초 우리가 얘기했던 대로 진행했으면 추가 비용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건축주가 설계도면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던 시공업체에 공사를 맡겼더라면 추가비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초 필자가 추천했던 이들 시공업체는 설계 의도와 예산의 주안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에서 봤듯이 중요한 것은 시공사의 주장이나 얘기가 아니라 건축주 상황에 맞도록 짜여진 맞춤형 설계도면이다. 세상에 건축주를 위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하는 시공사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건축주가 중심 잘 잡아야 성공 가능

지금까지의 사례들을 종합해서 말하면 시공사는 기술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체이다. 이윤을 내지 않으려 하는 현장은 없다. 중소 규모 건축 사업에서는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시공사가 현장을 대하는 자세에 영향이 간다.

건축주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시공사를 싸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공사와 건축사는 자신의 건축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원팀'(one team)이며,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소통해야 하는 대상이다.

 특히 시공사나 건축사 등 특정 전문가의 의견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일생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야 할 ‘내 집, 내 건물 짓기’가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건축주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그냥 알아서 잘 지어주세요"라는 말은 결국 건축주에게 칼날이 돼 돌아올 수 있다. 또 건축주 자신을 위해 설계자나 시공사 수익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건축 현장과 건축주의 상황에 부합하는 설계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와 함께 시공업체가 설계 도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 도면이 실제 공정에 관철되도록 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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