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시 광진구의 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사업 추진 현장.
비좁은 주택가 골목길 여기저기에 '지역주택조합 결사 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십여 장이 붙어 있다. 지역 주민들이 '(가칭)광진○○○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라는 임의 단체가 이곳에서 추진하고 있는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건립을 반대한다며 내붙인 플래카드다.
그런데 골목길을 좀더 걷다 보니 이런 플래카드와는 내용이 조금 다른 이색적인 프랜카드 한장이 눈길을 잡아 끌었다. 사업지가 속한 광진구청에 내건 '지역주택조합 사업 가입시 계약조건 꼼꼼히 살펴보세요'라는 내용의 플래카드였다.
지자체가 특정 지역주택조합 사업 현장에 조합 가입 계약서 작성할 때 주의하라는 경고문을 붙인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광진구청 주택사업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가 도중에 사정이 생겨서 조합에서 탈퇴를 할 경우 이미 납부한 분담금(분양대금)을 돌려받지 못해 민원이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주의를 환기시키자는 차원에서 플래카드를 내걸었다"면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이 추진하는 민간사업인 만큼 아파트가 언제 완공돼 입주가 가능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가입하더라도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검토하고 난 뒤 조합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광진구청이 관내의 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추진 현장에 내붙인 플래카드.
"조합원에 불리한 계약서에 도장찍는 순간 당신은 '을'" 주택시장에 지역주택조합 가입 '주의보'가 내려졌다. 지역주택조합들이 제시하는 싼 분양가(조합원 분담금)에 혹해 소비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도록 만들어진 지역주택조합 가입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가 분담금을 떼이는 등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실제로 기자가 (가칭)광진○○○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와 조합 가입 계약서를 작성한 한 조합원으로부터 계약서를 입수해 법률 전문가와 함께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검토해 본 결과 '을'(조합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조합원이 조합을 탈퇴할 경우 이미 납입한 분담금(일반 분양 아파트이 분양대금에 해당)을 환불 받기가 매우 어렵게 돼 있다는 점이었다. 우선 이 계약서의 '제8조 해약 및 손해배상' 조항을 보면 조합 가입계약 해지(조합 탈퇴)할 때 조합원이 납부한 분담금의 반환 조건에 대해 '을(탈퇴 조합원)의 권리·의무를 승계할 신규 조합원이 가입하여 조합원 분담금을 납입한 경우에 한하여 납부한 분담금 중 원금 만을 환불하며, 업무대행비는 환불하지 않는다'고 정해 놓고 있다.
또 조합원이 조합을 탈퇴하고 일반분양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일반분양 대금이 입금 완료되었을 때'로 환불 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한정하고 있다.
이는 중도금 납입 지체 등 수분양자의 귀책 사유로 분양 계약을 해지할 경우에도 지체 없이 기성 부분의 대가를 정산해야 한다는 국토교통부의 지역주택조합 표준 계약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한 지역주택조합 전문가는 "해당 해약 및 손해배상에 관한 조항은 한마디로 탈퇴 조합원을 대체할 신규 조합원이 나타나 조합에 가입하고 돈을 낼때까지 탈퇴 조합원에게 분담금을 되돌려 줄 수 없다는 얘기"라며 "대부분의 지역주택조합 가입 계약서가 이처럼 조합 탈퇴부터 분담금 환불에 이르기까지의 조건을 일방적으로 까다롭게 정해 놓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조합에 남아 있는 조합원들도 수두룩할 정도"라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이런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계약자는 '을'의 처지로 전락하면서 조합이나 업무대행사가 사업 편의를 위해 임의로 정한 규칙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다"면서 주의를 요구했다.
▲ 지역 주민들이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추진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고위험 상품…주의 필요" 더 큰 문제는 지역주택조합이나 업무대행사의 귀책 사유로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됐을 경우 조합, 또는 업무대행사로부터 분담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아예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보통 '업계획승인이나 설립인가가 나지 않을 경우, 언제까지 공사나 입주가 완료되지 않으면 조합원이 냈던 금액을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특약 사항을 보장증서 형태로 첨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가칭)광진○○○지역주택조합의 조합 가입 계약서에는 이런 조항이 전혀 없어 사업이 중단됐을 때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쉽게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당 지역주택조합이 지난해 10월 공고한 조합원 모집공고를 보면 (가칭)광진○○○지역주택조합은 내년 6월 조합설립 인가 신청을 하고 2022년 1월 사업계획승인을 받아 2025년 1월 입주 예정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 주민 반대가 적지 않고 토지 확보율도 아직 사업계획 승인 기준에 아직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어서 원활할 사업 추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광진구청 주택과의 또다른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은 한마디로 '잘되면 대박, 안되면 쪽박'인 펀드ㆍ주식이나 다름없는 위험 상품"이라며 "사업에 돌발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성공률이 1%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조합 가입 계약서를 쓸 때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간혹 금전적 피해를 당할 처지에 놓인 조합원이 찾아와 '왜 구청이 개입해 가입비를 받아주지 않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역주택조합 가입 계약서는 개인 간의 사업을 위한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구청이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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