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할 때 조합원 몫을 제외한 일반 분양 물량을 임대주택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단지들이 있다.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돈이다. 일반 분양에서 받을 수 있는 돈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자금력이 충분해야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합원은 그만한 자금 부담을 떠안기를 꺼린다.
그렇다고 분양가 상한제를 받아들이자니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재건축 단지들의 고민이다. 현재도 정부의 분양가 규제로 일반 분양하는 아파트는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편이다. 오는 8월 분양가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면 분양가가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재건축 시장에서 대안으로 관심을 끄는 방안이 ‘리츠(부동산투자회사)’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모은 돈으로 임대주택을 운영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일반 분양으로 돌려 자금을 회수한다는 구상이다. 임대주택을 분양으로 바꿔 매각할 때는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대우건설은 다음달 16일 시공사를 선정하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에 재건축 리츠 방식을 제안했다. 1973년 준공한 이 단지에선 1490가구를 허물고 2091가구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예정 공사비는 8087억원이다. 만일 재건축 조합이 리츠를 선택하면 세금을 아끼기 위해 8년간 임대주택을 운영한 뒤 매각해야 한다.
▲ 1970년대 준공한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 서초동 반포주공1단지 전경. [사진 중앙포토]
민간임대특별법에 따르면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단지에선 재건축 조합이 임대 사업자에게 주택을 매각할 수 없다. 하지만 리츠 방식으로 하면 조합이 직접 임대 사업자가 되고 현물 출자를 하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게 대우건설의 주장이다. 대우건설은 “금전 이외의 재산을 내는 현물 출자는 주택 매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리츠 설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한 리츠 설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만일 재건축 조합이 임대주택 리츠를 설립하려면 서울시에서 임대주택 공급 등 사업계획을 다시 승인받아야 한다. 서울시는 “공정하게 무주택 시민에게 주택을 공급하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불공정 행위로 판단한다. 정비계획 변경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리츠의 인허가를 담당하는 국토부도 부정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 등을 피해가겠다는 목적이라면 청약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재건축 조합뿐 아니라 리츠에 돈을 맡기는 일반 투자자에게도 시세 차익의 기회가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리츠를 세우면 일반인도 인기 지역 아파트에 투자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했다. 다만 리츠가 투자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재건축 조합이 임대 사업자가 될 경우 보유세 부담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반포주공1단지 3주구의 경우 리츠 방식으로 하면 610여 가구의 임대주택을 운영해야 한다. 2주택 이상에는 종합부동산세가 무거워진다. 종부세 최고 세율은 2018년 2%에서 지난해 3.2%로 올랐다가 올해는 4%가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사는 “세율과 함께 주택 공시가격이 오르고 있어 연간 보유세가 수백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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