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만 무주택 가구의 주거가 걸린 전ㆍ월세 시장의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있다. 전·월세 상한제(5%)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이 속전속결로 시행된 데다 오는 10월부터 전ㆍ월세 전환율이 4%에서 2.5%로 낮아지면서다. 뛰는 전셋값을 잡고 서민 부담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의미 없는 뒷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전세 물건이 씨가 마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7735건으로, 지난해 7월보다 24% 줄었다. 이달 들어서는 2520건(20일 기준)에 그쳤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8월(1만467건)보다 7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 통계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74.6으로, 2016년 4월 이후 가장 높다. 100을 기준으로 지수가 높을수록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전ㆍ월세 전환율이 의미가 있는 건데 월세로 바꿀 전세물건이 없는 상황에서 집주인만 자극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미 시장이 공급자(집주인) 우위인 상황에서 정부의 각종 대책이 자칫 전셋값 상승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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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차 관련 규제가 잇따라 쏟아지며 전월세 시장의 혼돈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전세→월세, 월세→전세 전환율 달라 세입자 입장에선 당장 2년간 월세를 낮출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주거비용 부담이 더 커진다는 우려가 크다. 전세에서 월세 전환 시엔 전환율이 낮을수록 월세가 줄어들지만, 월세에서 전세로 전환 시엔 전환율이 낮을수록 전셋값 부담이 커진다. 예컨대 월세 60만원을 전세로 바꾼다고 하자. 전환율 5%를 적용하면 보증금이 1억4400만원이지만, 2.5%를 적용하면 두 배인 2억88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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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에 대해 정부는 월세를 전세로 전환할 때는 2.5%가 아닌 시장 전환율을 적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전세에서 월세로 바꿀 때는 2.5%를 적용하지만, 월세에서 전세로 바꿀 때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합의로 정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세물건이 부족한 상황에선 집주인이 올려달라는 데로 올려줄 수밖에 없는 구도다.
무주택자인 성모(35) 씨는 “월세 살다 돈 좀 모아서 전세로 옮기고 또 모아서 집 사는 건데 평생 월세살이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월세로 세금·보증·건보료 감당 안 돼” 집주인은 집주인대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집을 세놓고 내야 하는 세금 등 유지비가 월세보다 많아질 수 있어서다. 예컨대 은퇴한 2주택자인 A씨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1주택(6억원)을 전세(보증금 4억8000만원) 대신 월세로 바꾼다고 하자. 전ㆍ월세 전환율 2.5%를 적용하면 A 씨의 소득은 연 1200만원이 된다.
다른 소득이 없어도 연간 1200만원의 월세에 대한 임대소득세를 61만원 내야 한다. 현재 사는 주택(9억원)이 있기 때문에 보유세 부담은 800만원 선이다. 여기에 임대보증금 보증보험료(75%)로 최소 74만원 정도 내야 한다.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중개수수료(0.4%)로 192만원을 냈고 도배(60만원)도 했다. 여기에 인상된 건강보험료까지 합하면 월세로 받은 1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자연히 세입자와 집주인 간 분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집주인이 전환율 2.5%를 어겨도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어서다. 집주인이 더 높은 전환율을 적용해서 재계약을 요구해도 과태료 같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강행규정이라 이를 위반하면 계약이 무효가 된다. 예컨대 전환율을 5%를 적용해서 재계약을 맺은 후 세입자가 2.5%에 대한 금액만 월세를 내도 계약 위반이 아니라는 의미다.
집주인 입장에선 “계약 위반이니 나가라”, 세입자 입장에선 “개정안대로 했으니 나갈 이유 없다”며 소송이나 다툼이 늘어날 우려가 크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당장 2년은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속도가 완화되겠지만, 2년 후에는 결국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임대료 상승 폭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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