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30대 끌어안기에 나섰다. 이달부터 민간이 짓는 민영주택에도 생애최초 특별공급(최대 15%)을 도입하고 생애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소득요건을 완화했다. 14일엔 소득요건을 내년부터 추가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30대는 생애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주 대상이다. 청약가점이 낮아 일반공급 당첨이 어려운 30대에 청약 문턱을 낮춰, 기존 재고시장에서 '패닉 바잉' 하지 말고 분양시장으로 눈을 돌리라는 신호다.
금융위기 이후 수준 '거래 절벽' 30대를 향한 이런 뒤늦은 '구애'가 집값 불안의 불씨를 잡을 수 있을까.
서울 주택시장은 극심한 눈치 보기 장세다. 전례가 없을 정도다. 거래가 급감했는데도 가격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초강도 대책과 주택 소유자의 버티기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이다.
▲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가 급감했지만 가격 상승세는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 연합뉴스]
서울시에 따르면 8월 아파트 매매거래(5000건, 계약일 기준)가 7월의 반 토막으로 확 줄었다. 이어 9월에는 거래량이 금융위기 몸살이 심하던 2010년대 초반 수준으로 급감하는 추세다. 업계 예상대로 9월 거래량이 3000여건으로 줄어들면, 2012년 9월(3388건) 이후 가장 적다. 지난해 9월(7021건)의 절반이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의 거래절벽은 더욱 심해 9월 거래량 450~500건이 업계의 전반적인 예상이다.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9월(329건) 이후 12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 [자료 국토부]
거래 급감은 수요가 규제로 인해 바짝 엎드렸기 때문이다. 취득세 중과, 보유세·양도세 강화 등으로 다주택자가 집을 살 메리트가 없어졌다. 집값 시세차익보다 취득·보유·양도세가 더 많아서다.
법인도 마찬가지다. 세금 ‘폭탄’으로 법인 거래가 5분의 1 정도로 줄었다. 대부분 지방인 서울 이외 거주자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율이 8월 20% 밑으로 내려갔다. 10%대는 지난해 8월 이후 1년 만이다. 30%를 넘보던 강남 3구 외지인 매입 비율도 20%대 초반으로 하락했다. 지방의 원정 매수자는 거의 다주택자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대책 전 서울 아파트 다주택자 매수 비율이 7.8%였다. 전체 매수의 10%에 육박하는 거래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 [자료 국토부]
대출 등 규제 강화로 1주택자나 무주택자가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도 감소했다. 정부는 14일 지난 6월 50%를 넘어섰던 서울 주택 거래 ‘갭투자’ 비율이 9월 25.6%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거래 급감으로 가격 하락 압력이 높아졌지만 이례적으로 집값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주간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이 지난 8월 중순 이후 8주 연속 0.01%를 이어오고 있다. 강남 3구가 들어있는 동남권은 8월 초부터 10주 연속 ‘0’다.
지난해 12·16대책 등 앞선 대책 직후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서울 아파트값 월간 변동률이 상승세에서 하락세로 돌아선 게 2017년 8·2대책 때는 발표 직후, 2018년 9·13대책에선 2개월 뒤, 지난해 12·16대책은 발표 3개월 뒤였다.
서울 아파트값 8주째 보합세 가격이 하락한 거래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신고가 거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인기 단지의 강세도 여전하다. 시가총액 상위 50위 아파트를 대상으로 하는 국민은행의 '선도아파트 50지수' 상승률이 지난달 2.49%로 서울 전체 평균(2.0%)을 훨씬 웃돌았다.
거주할 집이 필요한 실수요가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매물도 크게 줄면서 규제에 따른 수요 감소와 시중 공급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 가격 하락 폭이 크지 않은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세를 끼고 사기 어려워진 가운데 임대차계약갱신청구 등으로 ‘매물 잠김’이 빚어지고 있다”며 “집이 필요한 실수요가 드물게 나오는 매물을 높은 가격에도 받아준다”고 분석했다.
▲ [자료 한국감정원]
실수요는 내 집을 마련하려는 무주택자와 집을 옮기려는 1주택자다. 대출을 통하지 않고 고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현금 부자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는 15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 비율이 전체의 11.4%로 정부 대책이 나오기 전 5~7월 9.8%보다 올라갔다. 대출한도(LTV, 담보인정비율)가 40%에서 20%로 줄어든 9억~15억원 거래 비율도 같은 기간 22.6%에서 26.8%로 높아졌다.
다주택자, 법인, 외지인, 갭투자 수요가 줄어든 반면 30대 수요는 더 늘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30대 매입자 비율이 8월 36.9%로 연령별 조사를 시작한 지난해 1월 이후 최고다. 법원에 접수된 아파트 등 집합건물 소유권 이전 등기 현황에서도 30대 매수인 비율이 이달(31.2%) 들어 사상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다주택자 등은 규제 강화로 주택을 매수할 유인이 줄었지만 30대는 종부세 규제 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집값 불안 심리가 여전해 주택 매수를 포기할 이유가 없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30대 매수 증가는 정부가 30대에 청약 문턱을 계속 낮추는 이유다. 주택을 사는 30대의 절반 정도가 무주택이어서 30대 청약 기회 확대로 기존 매매시장의 30대 수요를 상당 부분 분양시장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서울 물량 적고 대출 문턱 높아 하지만 정부 기대만큼 30대가 분양시장으로 고개를 돌릴지 불확실하다. 서울 30대 수요는 경기도가 아닌 서울 주택을 원하는데 3기 신도시를 포함한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에 서울 물량이 많지 않다.
자산이 별로 없는 30대에게 여전히 대출 문턱은 높다. 30대 청약기회는 많아지지만, 중도금·잔금 대출은 다른 연령대와 똑같은 적용을 받는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30대를 잡으려면 서울 분양물량을 늘리고 대출 한도도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30대 청약기회 확대가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 30대 우대로 인해 ‘4050 세대’ 1주택자는 청약시장의 ‘패자’로 계속 남게 됐기 때문이다. 40~50대 주택 매수자의 80% 이상이 유주택자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40~50대 1주택자가 입지여건이 좋은 새 아파트로 갈아타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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