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동산 시장은 규제 홍수다. 숨 가쁘게 쏟아지는 규제는 너무 많고 시행은 너무 빠르다.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치지 않고 시행된 규제 탓에 모두 갈팡질팡이다. 이 틈새에서 억울하고 황당한 고충을 겪는 피해자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사는 하모씨(66)는 최근 기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살면서 한 번도 세금을 체납하거나 미룬 적 없는 우량 납세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하씨는 “불합리하고 가혹한 주택정책에 날벼락을 맞고 호소할 곳이 없어 하소연한다”고 했다. 하씨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저는 10년 전 은퇴 후 노후 생활비로 고심하다가 2013년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4평짜리 원룸(도시형생활주택) 4가구를 샀습니다. 7년 전 매입 당시 시세는 1가구당 1억원이었고 대출을 50% 받았습니다. 각각 보증금 500만원에 월 45만원씩 임대료를 받아왔습니다.
한 달 총 수익은 180만원이고 대출이자 50만원을 제하고 나면 130만원이 남습니다. 이마저도 중개수수료나 하자보수 등 관리비용을 제하면 실제 수익은 100만원 남짓입니다.
3년 전 정부가 주택임대사업을 장려해서 4가구 모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정부가 아파트 임대사업을 폐지했습니다. 등록 5년(도시형생활주택)이 지나면 사업자 등록이 자동 말소됩니다.
그러면 저는 다주택자가 됩니다. 현재 사는 아파트(시세 7억원)까지 합해 무려 5주택자입니다. 부자들이나 내는 줄 알았던 종합부동산세를 내게 생겼습니다.
▲ 경기도 수지택지2지구 단독주택촌의 원룸형 다가구 주택. 소형 원룸이지만 현행법상 5층 이상의 도시형생활주택은 공동주택(아파트)으로 분류된다. [사진 중앙포토]
임대사업을 계속하고 싶지만, 제가 보유한 도시형생활주택이 아파트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4평짜리 원룸인데 5층 이상이라 아파트라는 겁니다. 임대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부랴부랴 도시형생활주택을 팔려고 내놨습니다. 7년 전 1억원에 샀지만 8000만원으로 가격을 낮춰 급매로요. 하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살 사람은 없지 싶습니다. 8000만원짜리 4평 원룸 때문에 다주택자가 되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주택임대사업자가 모두 부자는 아닙니다. 공실도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도 이거라도 붙잡고 있어야 근근이 생계라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강남 20억원짜리 아파트 4가구를 보유한 부자와 8000만원짜리 원룸 4가구를 보유한 제가 똑같은 다주택자라니요. 정부가 진정 서민을 위한다면 이런 부분을 손질해서 억울한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와주십시오.”
하씨가 보유하고 있는 도시형생활주택은 2009년 당시 정부가 도입한 준주택이다. 늘어나는 1~2인 가구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도심에 신속하고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건축을 장려했다.
이 때문에 소형 원룸이지만 도시형생활주택 대부분이 10층 이상 고층으로 지었다. 그런데 현행법상 5층 이상 주택은 공동주택(아파트)이다. 하씨가 임대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다. 하씨가 다주택자인 것도 맞다. 20억원 아파트도, 8000만원 도시형생활주택도 같은 1가구라서다.
아쉬움은 꼬리를 문다. 정부가 지난 7·10대책에서 아파트 임대사업을 폐지하면서 주택 크기에 따른 예외 조항을 두었다면. 이전 정부가 준주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면서 도시형생활주택에 대한 건축법상 정의도 정리했더라면. 그랬더라면 하씨가 고통받는 일은 없었을 테다.
늦지 않았다. 정부가 더 세심하게 살피고 고민하면 된다. 규제지역과 비규제지역으로 구분해도 되고, 금액을 기준으로 삼아도 되고, 임대인의 연령(예컨대 수입이 전혀 없는 65세 이상)으로 규제 기준을 완화해도 된다. 하씨의 고통을 구제할 방법은 많다. 투기꾼 몰이에 앞서 지금이라도 정부 말을 따랐다가 하씨처럼 ‘뒤통수 맞은’ 서민의 곤궁함을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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