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아파트 2채를 가진 박모(67)씨. 올해부터 공시가격 현실화, 세율 인상 등으로 많이 늘어날 종합부동산세를 줄이기 위해 집 한 채를 처분할 계획이다. 박씨가 세무사에 상담한 바로는 종부세가 3000만원에서 8200만원으로 2배 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한 채를 팔려다 최근 자녀 증여 쪽으로 기울고 있다. 양도세와 증여 비용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아서다.
박씨는 “팔아서 양도세 내느니 집값이 앞으로 계속 오르면 매입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텐데 그냥 물려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 올해부터 종부세가 대폭 강화되면서 다주택자 매도보다 증여가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 아파트. [사진 뉴시스]
강남 아파트 2채 종부세 3000만→8200만원
증여가 다시 늘고 있다. 올해부터 확 늘어나는 종부세 부담을 줄이려는 다주택자의 선택이 정부가 기대한 매도보다 증여로 기울고 있다. 집값 급등으로 양도세가 크게 늘었고 증여를 억제하기 위한 증여 취득세 강화의 효과가 떨어져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집합건물(아파트 등) 증여 건수가 2471건으로 집계됐다. 증여 취득세 강화 직전 6500건까지 급증했다가 강화 이후 1000건 아래로 내려간 뒤 다시 크게 늘었다. 12월 증여 건수로 역대 최대다. 월간 200건 아래로 내려갔던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증여 건수도 지난해 12월 631건으로 급증했다.
▲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 정부 들어 세제 강화 전 나타난 증여 급증이 이번에도 재연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다주택자 종부세와 양도세를 대폭 올렸다. 그러면서 올해 납부 기준 시점인 6월 1일 이전 매도를 유도하기 위해 양도세 강화를 6월 1일 이후로 유예했다. 6월 1일 이전 팔면 종부세와 양도세를 모두 절감할 수 있다.
앞서 2018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2019년과 지난해 종부세 강화 등이 시행됐다. 이때도 정부는 양도세 중과 시행시기 유예나 한시적 감면 등으로 매도를 권했다.
하지만 매도보단 증여가 증가했고 이번에 더욱 많이 늘었다. 정부는 증여 쏠림을 막기 위해 지난해 7월 증여 취득세율을 3.5%에서 12%로 대폭 올렸는데도 효과가 오래 가지 못했다.
매도는 눈에 띄게 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이후 서울 집합건물 월간 매매 건수가 2만2000건 정도로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데이터사이트인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이 이달 하루 평균 4만건으로 지난해 1월 6만8000건보다 40% 적다. 다주택자가 매물을 많이 안 내놓는다는 말이다.
부담부증여하면 취득세 줄어
집값이 많이 올라 증여세보다 세율이 높은 양도세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증여 취득세율이 올라갔지만 임대보증금 등을 채무로 함께 넘기는 부담부증여를 통하면 증여 금액이 줄어 증여세뿐 아니라 증여 취득세도 낮출 수 있다.
김종필 세무사가 시세가 19억원인 강남구 도곡동 전용 59㎡ 도곡렉슬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9억원 임대보증금 채무를 함께 넘기는 부담부증여를 하는 3주택의 경우 양도세가 6억5000만원이고 총 증여 비용(증여세, 채무 양도세, 증여 취득세)은 6억2000만원으로 양도세가 더 많다. 3주택보다 양도세 세율이 10% 포인트 낮은 2주택자의 경우엔 비슷했다.
채무 없이 증여하면 증여 취득세가 1억4900만원인데 부담부증여로는 6700만원으로 절반도 안 된다. 채무 금액에는 증여 취득세율이 아닌 일반세율(3%)이 적용돼서다.
김종필 세무사는 “증여 비용이 양도세보다 아주 많이 들지 않으면 대개 집값 상승을 기대해 증여를 원한다”고 말했다.
증여는 앞으로 당분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부터 양도차익 10억원 초과 양도세 세율이 42%에서 45%로 올라가 10억원 넘게 오른 집의 매도가 더 불리하다.
▲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해 임대주택사업자제도 변경으로 임대주택 등록이 말소되는 주택들에서 증여가 늘어날 것 같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서울에서 말소된 주택이 14만2000가구다. 말소되면 등록임대주택의 종부세 제외 등 세제 혜택이 없어진다.
5월 말까지만 증여하면 올해 종부세를 피할 수 있지만 증여 비용을 아끼려면 올해 공시가격 확정 시점인 4월 말 이전이 유리하다. 증여 취득세 산정 기준 금액이 공시가격이다. 지난해 집값이 많이 올랐고 공시가격 현실화로 시세반영률도 올라가 올해 공시가격이 꽤 오를 전망이다.
▲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수증자 연령 30대 가장 많아
증여가 늘면서 ‘패닉 바잉’(공포 구매) ‘영끌 매수’(온갖 방법으로 자금을 모아 주택 구입)와 함께 30대 이하 젊은 층의 주택 소유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집합건물을 증여받은 수증자의 40%가 20~30대다. 이전 30% 선에서 크게 올라갔다. 연령별로 30대가 지난해 27%로 이전 가장 많았던 40대(22%)를 제쳤다. 지난해 서울 집합건물 매수자도 30대가 최다였다.
이우신 세무사는 “집값이 뛰고 세제가 계속 강화되면서 증여 시기가 빨라졌고 증여를 받는 연령도 내려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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