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 조합원인 이모씨. 지난 4일 정부가 밝힌 대책이 솔깃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어렵다. 정부는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대신 빠른 사업속도, 이전보다 높은 수익성 등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이씨는 “준공 후 재산가치가 많이 올라야 이득인데 지금까지 민간이 해온 방식과 비교가 쉽지 않다”며 “공기업이 얼마나 잘 할까”라고 말했다.
# 새 아파트 청약에서 계속 떨어지고 집값은 계속 올라 아파트를 사기 위해 알아보던 40대 초반 박모(서울)씨. 정부가 공급하기로 한 물량이 예상밖으로 많고 청약 문턱도 낮아져 주택 매수를 일단 미루기로 했다.
박씨는 “급등한 집값에 무리해서 사는 것보다 당첨 기회가 늘어날 신규 공급을 기다려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 정부가 공공 주도로 지하철 역세권과 재건축 등 노후 주택지를 고밀 개발해 주택공급량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 본 빌라 밀집지역. [사진 뉴시스]
변창흠 국토부장관의 대대적인 주택공급 확대 방안인 2·4대책 이후 주택시장 이해 당사자들이 저울질로 바쁘다. 이번 대책이 공공 주도 개발 대상지뿐 아니라 이외 지역의 무주택자·다주택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업지역 주민 몫을 제외한 일반분양분의 청약제도가 바뀌고, 투기억제대책 강화로 매매시장 환경이 달라진다.
커지는 분양 로또
시세차익이 더욱 커진 ‘로또 분양시장’이 열린다. 주변 시세보다 지금도 훨씬 저렴한 분양가가 더 내려간다. 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 완화로 같은 크기의 주택을 짓는 데 필요한 대지지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지지분이 작으면 땅값과 건축비를 합치는 일반분양분 분양가상한제 가격이 내려간다.
지난달 3.3㎡당 5669만원에 상한제 분양가를 확정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의 경우 용적률이 현재 300%에서 400%로 올라가면 분양가가 3.3㎡당 4500만원 선으로 내려간다. 전용 84㎡ 기준으로 3억5000만원가량 하락한다.
용적률 완화로 건립 가구 수가 늘어 일반분양분이 많아진다.
청약저축액이 적거나 청약가점이 낮아 로또 분양시장에서 소외됐던 단기 무주택자의 당첨 기회가 늘어난다. 전용 85㎡ 이하에서 일반공급 비중이 15%에서 50%로 높아진다. 100% 청약저축액이나 청약가점 순으로 당첨자를 뽑던 일반공급 물량 중 30%는 앞으로 추첨제다. 무주택 기간 3년 이상이면 원래 공공분양 자격인 청약저축·종합저축 외 청약예금·부금 가입자도 신청할 수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분양가가 저렴하고 물량이 많아진 데다 문턱도 낮아져 무주택자라면 기대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사업 기간 단축, 수익성 ↑
이번 대책의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에 참여하면 주민은 감정평가 금액으로 기존 주택을 공공에 넘긴다. 기존 조합 사업방식과 마찬가지로 새로 짓는 아파트에서 주택 크기와 층 등을 일반분양분보다 우선해 받는다(우선공급권). 가격은 상한제 적용을 받는 일반분양가보다 싸다.
우선공급권은 지금처럼 입주 때까지만 팔지 못하고 상한제 일반분양분의 최장 10년 전매제한과 2~3년 거주의무 적용을 받지 않는다.
재건축은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른 재건축부담금을 면제받고 ‘2년 거주’ 분양자격도 적용받지 않는다. 업계는 강남 재건축부담금을 수억원대로 본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책에서 발표한 10~30% 추가 수익 보장이 일반분양가보다 저렴한 우선 공급권 분양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자료 국토부]
이런 당근에도 집값 안정을 위해 재건축 활성화가 시급한 강남에선 시큰둥하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명품 아파트’를 강조하는 강남에선 공공 시행에 대해 거부감을 보인다”고 전했다.
강남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재건축부담금 면제 등 경제적 혜택보다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서울에서 기존 재건축·재개발 조합 중 25% 정도가 참여할 것으로 보고 서울 32만가구의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조합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으면 대책이 차질을 빚게 된다.
노후 주택 시장 마비
자칫 노후 주거지 집을 잘못 샀다가 낭패를 보고 다주택자 ‘출구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의 고강도 투기억제대책으로 거래시장이 마비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이번 2·4대책에 따른 개발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주거지역에서 18㎡ 넘는 토지(대지지분 포함)를 거래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할 전망이다.
여기다 국토부는 이번에 대책 발표일(4일) 이후 취득한 부동산에 우선공급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새로 짓는 아파트·상가 등을 받지 못하는 현금청산 대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발 예상 지역 등에서 개발을 기대한 무분별한 투기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가격이 급등하면 사업성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발 지역 확정 전 무차별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개발·재건축 추진 지역을 비롯해 역세권 등의 노후 주거지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윤성원 국토부 차관은 지난 5일 라디오에 출연해 “222개 후보지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후보지가 아닌 지역에서도 집을 샀다가 나중에 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 현금만 받고 나와야 한다. 실제로 거주하거나 새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실수요자가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 변호사는 "과잉 규제로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과도한 재산권 침해인지 위헌 여부는 공익성이 어떻게 되느냐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지역 주택 매수세가 급감하면서 매도도 막힌다. 올해부터 종부세·양도세가 강화돼 처분을 고민하는 다주택자가 늘고 있었다. 노후 주거지에 다주택자가 소유한 주택이 많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 경색을 막고 실수요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노후 주택시장이 침체하면 신축 주택시장으로 수요가 옮겨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정부가 기대하는대로 빠른 시간 내에 저렴하게, 대량으로 주택공급이 이뤄지지 못하면 모두가 고통스런 '희망고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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