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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강남 재건축
“1억, 2억원이 아니에요. 불과 몇 개월 새 10억원 이상 올랐는데도 찾는 사람이 있고, 실제 거래가 된다니까.”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압구정 재건축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압구정동 현대 7차 아파트 245.2㎡(이하 전용면적)는 최근 80억원에 팔려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전 신고가보다 13억원 오른 것으로, 3.3㎡당 1억원이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소형 주택형은 3.3㎡당 1억원에 거래된 사례가 있었지만 이제는 대형 주택형마저 3.3㎡당 1억원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압구정·잠실 아파트 나 홀로 상승

서울 한강변 재건축 추진 단지가 뜨겁다 못해 펄펄 끓고 있다. 압구정 현대 1차 196.21㎡도 최근 63억원과 64억원에 팔려 연거푸 신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아파트도 3.3㎡당 가격이 1억원에 이른다. 인근 현대 2차 160㎡는 최근 기존 신고가(지난해 12월)보다 11억8000만원 뛴 54억3000만원에 팔렸다. 

저층이냐, 고층이냐에 차이가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전례가 없는 큰 폭의 상승세라는 게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한강변의 또 다른 재건축 단지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82.51㎡도 최근 26억81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1월 체결된 두 건의 거래(24억8100만원, 23억원)와 비교하면 2억원 이상 비싸게 팔렸다.

한강변 재건축아파트값이 치솟는 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영향이 크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서울시장 후보들이 한강변 층수 제한 완화 등 규제 완화를 앞세우면서 재건축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한 것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박영선 후보도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여·야 후보 모두 35층 층수 규제나 용적률 상향 등으로 재개발·재건축사업의 채산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도심에서 양질의 주택을 공급해 집값을 잡겠다는 취지다. 다만 국민의힘 오세훈 시장은 ‘더 빠른’ 주택 공급을 위해 박 후보보다 ‘더 폭넓은’ 규제 완화를 약속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집값을 잡기 위한 주택 공급 방안(규제 완화를 통한 재개발·재건축)이 되레 집값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오 시장의 당선으로 당장 한강변 재건축 단지의 몸값은 더 뛸 가능성이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공급 확대 대상인 한강변 재건축 단지는 물론 인근의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며 “실제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일면 단기적으론 재개발·재건축 아파트값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필히 땅값(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개발이 이뤄지면 사람이 살거나 머무르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동산개발사업의 특성상 최근의 재건축아파트값 상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든, 낡은 주거환경을 정비하기 위해서든 재개발·재건축사업으로 정주(定住)환경을 개선하면 주변의 땅값·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4년간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며 재개발·재건축사업을 틀어막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개발에 따른 땅값·집값 상승이 두려워 재개발·재건축을 틀어막은 것인데, 이것이 결국 주택 공급 부족 사태를 불러오면서 집값을 더 많이 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주택시장 전체 상승세 경계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허들(재개발·재건축 몸값)을 넘지 않고서는 주택 공급 확대 목표를 이룰 수 없다”며 “허들이 무섭다고 여기서 또 그만두면 문 정부의 지난 4년과 똑같아진다”고 말했다. 주택 수요가 원하는 ‘도심에서의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허들이라는 얘기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장은 가격이 오를 수 있겠지만 실제로 재건축사업이 진척돼 주택 공급이 가시화하면 안정세를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을 앞세워 허들을 넘으려 했다. 2·4 대책에서 밝힌 공공주도 재개발·재건축사업과 공공주도 역세권 고밀개발(고층·초고층 개발)이다. 2·4 대책 발표 직후 시민단체들이 “주변 땅값을 자극해 투기판을 만들 수 있다”며 반대한 것도 그래서다. 

한 부동산개발회사 대표는 “정부가 직접 개발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일부 건설사와 몇몇 투기꾼에게 돌아갈 시세차익을 환수하려는 것”이라며 “이유가 어찌 됐든 재개발·재건축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선 오 시장의 주택 공급 방향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 들어 매수세가 줄면서 잠잠한 일반 아파트로까지 집값 상승세가 확산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한강변 재건축 단지의 불꽃이 주택시장 전체로 옮겨붙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시중 통화자금이 3233조원(1월 기준 광의통화)으로 여전히 사상 최대 규모인 데다 60조원에 이르는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도 곧 풀리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최악의 상황은 오 시장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가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되면 재건축 몸값만 올린 채 주택 공급은 지연돼 또다시 집값을 끌어 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행이라면 집값 상승세가 당장은 확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보유세(재산·종부세) 강화나 취득세 중과로 집이 1채 이상 있는 유주택자는 더는 집을 사기 어렵고, 무주택자는 대출 규제나 금리 인상 등으로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올해 들어 매수세가 위축된 건 대출 규제 등의 영향이 크다”며 “이 요인들이 지속하고 있으므로 당장 매수세가 확 늘어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강동권을 중심으로 집값이나 전셋값이 안정세인 건 대규모 재건축 단지의 입주가 시작된 때문”이라며 “집값이 무한정 오를 수 없으므로 어느 시점에 가서는 상승세가 멈출 것이고, 주택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 주택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표 ‘흔적 남기기’ 존폐 기로

내년 하반기 입주 예정으로 공사가 한창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재건축 현장.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이곳엔 기존의 낡은 아파트 1개 동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근대 유산 보존이라는 명분으로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진행 중인 ‘문화유산 흔적남기기’ 사업의 일환이다. 시는 철거가 확정된 개발지 내 유·무형의 역사·생활문화는 그 자체가 유산으로 흔적을 남겨야 한다며 시작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2년 4월 개포지구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개포주공은 한국 최초 연탄보일러식의 아파트”라며 1개 동 정도를 미래 유산으로 남기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시는 재개발·재건축조합에 낡은 아파트 1개 동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거나, 굴뚝·담장 등을 남기라고 요구했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보니 개포 주공1단지는 물론 개포 주공4단지 등이 어쩔 수 없이 기존의 낡은 아파트를 남기고 공사 중이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박원순표 ‘흔적남기기’ 사업도 존폐 기로에 서게 됐다. 그동안 주민들은 ‘흉물’에 불과하다며 거세게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개포 주공1단지 조합원은 지난해 8월 “미래 유산을 위한 전시관 형태인 청소년 문화시설로 대체해달라”고 시에 청원을 넣기도 했다. 청량리4구역에선 서울시가 집창촌 일대 건물을 보전하는 ‘청량리 620역사문화공간’ 조성을 추진해 주민들과 갈등을 빚다, 결국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개포 주공1단지 재건축조합은 조만간 오세훈 시장에게 옛 아파트 건물 일부를 그대로 남기는 방식 대신, 공원화 등 다른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조합 측 관계자는 “어떠한 형태로든 시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옛 아파트 흔적을 그대로 두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인 공원 등으로 꾸미는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주도 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1300가구와 문화체육복합시설이 들어설 옛 성동구치소 부지엔 구치소 담장과 감시탑 일부를 남기라는 게 시의 요구인데, 송파구청은 주민 반발이 계속된다며 시에 재검토를 요구했다. 

서울시는 원형을 보존하며 일부는 리모델링해 문화시설을 만들고 대중에 개방한다는 계획이지만, 주민들은 50년도 안 된 구치소 건물은 보존 가치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성동구치소는 1977년에 지어졌다. 1968년에 지은 영등포구치소는 완전히 철거해 재개발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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