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3억9000만원이던 집값이 5억5000만원으로 40% 뛰었다. 서울 집값 얘기가 아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아이다호주 주도인 보이시 사례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가격 통계인 S&P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미국 20개 도시의 집값이 1년 새 평균 17% 올랐다. 피닉스(25.9%)·샌디에이고(24.7%)·시애틀(23.4%) 등이 20% 넘는 상승률을 나타냈다.
뉴욕타임스는 “버블이 형성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는 금융권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6월 기준으로 영국 평균 집값이 4억5000만원으로 지난 1년간 13.2% 상승했다. 2004년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버블 붕괴' 도쿄도 8.7% 상승
30년이 지나도록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은 어떤가. 일본부동산연구소 통계를 보면 도쿄 집값이 지난 5월 1년 전보다 8.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버블 붕괴 이후 10년 넘게 이어온 장기 하락세를 탈출한 2005년 이후 최고다. 지난해까지 4~5% 정도이던 연간 상승률이 올해 들어 2배로 뛰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국가가 집값 몸살을 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달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값이 지난 1분기 기준으로 30년 만에 최고 상승률(9.4%)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6.7%로 평균 이하였다.
이는 과소평가 논란을 낳고 있는 한국부동산원 통계의 전국 집값 변동률이다. 국민은행 통계는 11.2%다. 가장 민감한 서울 아파트값이 같은 기간 16% 상승했다.
외신들은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저축 증가에 따른 구매력 향상, 목재 등 건축 자재비 상승, 재택근무 증가로 인한 도심 외곽 주택 수요 증가 등을 꼽는다. 한국에선 정부 주택 정책 실패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다 전 세계적인 공통 원인이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초저금리가 낳은 유동성 급증이다.
공급 부족에 유동성이 '불쏘시개'
유동성 증가가 집값에 불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은 공급 부족 탓이다. 공급이 충분하다면 유동성이 흘러넘치며 급증한 수요를 흡수했을 것이다.
주택 수가 거주 단위인 일반가구 수와 비슷한 한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택 수급 여유가 충분하다고 알려진 미국 등도 공급 부족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 국토부에 따르면 218년 기준으로 인구 천인당 주택 수가 미국 421가구, 영국 433가구, 일본 494가구로 한국(403가구)보다 훨씬 많다.
코로나 사태는 그동안 양적으로 충분하다고 본 재고도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주요 국가가 집값 진정을 보며 주택 공급을 등한시해왔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 주요 7개국(G7)의 주택공급이 금융위기 이후 20% 줄었고 미국은 40%나 감소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이 많이 감소했다. 부동산114 집계를 보면 연평균 아파트 입주물량이 1991~2010년 17만가구에서 2011~2020년 14만가구로 줄었다. 서울은 5만4000가구에서 3만3000가구로 40%가량 급감했다. 2010년대 들어 공공택지 개발을 중단하고 재개발 예정 구역 등을 대거 해제하며 공급 기반도 약해졌다.
금융위기 이후 충격을 받은 집값이 공급 감소와 경기 회복, 금리 인하 등으로 대략 2014년부터 다시 오르다 코로나가 ‘부스터’가 돼 되살아나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에선 정부 정책 엇박자가 부채질하기도 했다.
집값을 안정을 위한 대책은 전 세계적으로 하나다. 공급 확대다.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강도 높은 수요 억제책을 꺼냈지만 공급만이 능사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규제를 남발하는 대신에 정부는 주택시장의 장기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에너지를 더 쏟아야 한다…수요·공급 원칙이 말하는 대로 집을 더 많이 지으면 집값은 내려갈 것이다.”(이코노미스트의 집값 특집 기사)
한국 정부도 수시로 꺼내던 수요 억제책을 버리고 공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젊은 층의 ‘영끌’을 빗대 “영혼을 끌어모아 공급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님비가 공급 확대 걸림돌
하지만 공급 확대 전망이 밝지 못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요 국가들의 공급 확대 걸림돌로 건축 규제가 거론되고 있다. 미국 최소부지(minimum lot size) 규정 등 강화된 규제가 공급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 대표적으로 재건축·재개발 규제, 가격 통제를 꼽을 수 있다.
‘님비’(NIMBY)도 장애물이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내세워 환경 훼손, 소음 등을 낳을 수 있는 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것이다. 임대주택 반대, 고밀 개발 반대, 그린벨트 개발 반대 등도 해당한다. 한국도 같은 난관에 직면해있다.
규제를 풀고 님비를 넘기가 난제다. 규제 완화는 집값을 자극할 우려가 커 완화 폭과 속도가 제한된다. 열을 내지 않고 온도를 높일 수 없는 셈이다.
님비 해결은 정부의 소통이 관건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공유지 비극’ 발언 같은 떠넘기식은 감정만 건드릴 뿐이다.
금리가 올라 주택시장 '압력'이 다소 빠질 것이란 기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닥치고 공급'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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