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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추석 이후 집값
벼가 무르익은 뒤 고개를 숙이듯 추석 뒤 주택시장 ‘불장’ 기세가 꺾일까. 과거 서울 아파트값 통계를 보면 대부분 꺾였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집값 조사를 시작한 1986년 이후 지난해까지 35년간 집값이 7~9월 상승한 해가 28번이었다. 이 중 10~12월 상승폭이 7~9월보다 줄어든 해가 23차례였다. 8번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가장 극적인 반전의 해가 월드컵을 개최했고 2000년 이후 주택시장이 가장 뜨거웠던 2002년이다. 그해 7~9월 11.7% 뛰다 9~12월 0.5% 내렸다. 그해 추석도 올해와 같은 9월 21일이었다. 19년 만에 날짜가 겹쳤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각각 닥친 1997년과 2008년에도 추석 전후로 집값 행보가 오르막에서 내리막으로 바뀌었다.

과거 추석 이후 집값 상승세 대부분 둔화

반면 추석 이후 기세가 더욱 거세진 해가 2002년 이후 최고의 집값 상승률을 나타냈고 ‘버블’(거품) 논란이 있었던 2006년이다. 10~12월 상승률이 12.5%로 7~9월(1.4%)의 10배가 넘었다.

현 정부 들어 4번의 추석 동안 2019년 한 번만 상승률이 올라갔고 나머지는 줄어들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추석 이후에는 계절적으로 가을 이사철이 마무리되고 이 무렵 집값 상승세를 잡기 위한 정부 규제책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 올해 2002년 이후 최고의 상승세를 보인 집값의 추석 이후 행보가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주택가. 뉴스1


집값 몸살을 앓은 정부마다 가을 즈음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주요 대책이 발표된 시기가 노태우 정부 1988년 8월 10일, 김영삼 정부 1993년 8월 12일, 김대중 정부 2002년 9월 4일, 노무현 정부 2003년 10월 29일과 2005년 8월 31일, 현 정부 2017년 8월 2일과 2018년 9월 13일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터진 시점도 가을 즈음이었다.

2002년 추석 후 주택시장 온도 급락은 9월 4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임대주택 100만가구 건설, 분양·재건축 규제 강화 등 대책 영향이 컸다. 하지만 집값이 대책 충격으로 잠시 반짝 하락세를 보였을 뿐 바로 상승세를 회복했다. 상승폭은 추석 전보다 많이 줄었다.

올해 수직 상승하던 집값의 추석 이후 전망에 안개가 끼었다. 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정부의 고강도 규제 대책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승세 발목을 잡는 요인과 더욱 키울 요인의 줄다리기가 팽팽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집값 상승 레이스에 피로감이 느껴진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전국 아파트값 기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연간 상승률이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째 2002년 이후 19년만의 최고치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누적된 전국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모두 2002년 이후 가장 높다.
 

중심부보다 더 오른 주변부

집값 상승이 지역별로 돌만큼 돌았다. 서울 강남 등부터 집값 상승이 더딘 지역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곳은 다 올랐다. 오히려 주택시장에서 ‘변두리’로 꼽히는 지역이 더 상승했다. 수도권에서 서울(11.6%)·경기(21.2%)보다 인천(21.8%) 상승률이 높다.

서울에서는 강남보다 강북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에서 가장 많이 오른 자치구가 노원구(18%)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는 8~10% 올랐다.

과거 인천과 강북 강세는 대개 집값 상승기 후반에 나타났다. 2006년 급등 이후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인 2007년부터 금융위기의 2008년까지도 인천과 노원구가 강세를 띠었다.

집값 급등으로 서울에서 주택 중간 가격이 가구 중간 소득의 18배가 넘어섰다. 1년 새 4배가 더 늘었다. 집을 살 구매력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정부가 돈줄을 죄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올렸다. 당시 이주열 총재가 ‘첫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앞으로 더 오를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정부의 가계부채 증가 억제와 맞물려 대출 축소와 중단 등 대출이 막히다시피 했다. 코로나 19 이후 초저금리로 흘러넘치던 유동성이 줄어들게 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금리 상승과 대출 제한으로 유동성이 제약을 받으면 집값 상승세의 추진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사전청약 확대가 주택 수요를 분산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달 1차 4333가구를 분양해 21.7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사전청약을 당초 6만2000가구에서 16만3000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사전청약은 주택시장 큰 손으로 떠오른 30대를 겨냥해 특별공급·추첨제 확대 등으로 문턱을 낮춘다. 1차 사전청약 신청자(9만3000명) 중 30대가 절반이 넘었다.
 

높아지는 규제 완화 기대감

하지만 시장을 데울 화력이 지속하거나 더 거세질 가능성도 크다. 한 차례 금리 인상으로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시장 열기를 식히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기준금리를 인상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금리 인상의 집값 상승 억제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2년 10개월에 걸쳐 8차례 금리를 올렸는데 앞으로 추가 금리 인상에 내수 등이 변수다.

사전청약 물량이 대부분 경기도에 위치해 핵심인 서울 주택 수요 분산의 한계로 지적된다. 지역우선공급제도 등으로 정작 서울에서 가져가는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1차 사전청약 당첨자 발표 결과 서울 거주자가 청약에선 38.2%를 차지했으나 당첨자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사전청약은 미래의 주택공급을 장부상 가불하는 셈이어서 실질적인 주택공급 효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 기대감이다. 1주택자 비과세 한도를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올리며 종부세가 완화됐고 정부가 분양가 규제와 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 건축 기준을 조금 풀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나서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에 주력하고 있어 수요 억제 규제는 없을 것"이라며 "공급 관련 제도 위주로 규제 완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내년 대선 후보 경쟁도 규제 완화 기대감을 높인다. 야당 주자들의 규제 완화 목소리가 높다. 여당 주자들이 세제 등 규제 강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표심을 노리고 일부 규제 완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집값 상승세 지속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뒤섞여 거래가 주춤한 가운데 당분간 상승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무주택자는 기회가 많은 사전청약에 주목하고, 분양을 기대할 수 없는 수요자는 기존 주택 매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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