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8개월. 문재인 19대 대통령 취임 이후 4년 반 동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내 집을 장만하는 데 필요한 기간이 이만큼 늘었다.
2017년 5월엔 중간 소득 가구가 중간 가격 주택을 사기 위해 10년 10개월 치의 월급을 모아야 했는데 지금은 18년 6개월 치가 필요하다. 전셋집을 구하는 데는 2년 2개월 더 걸린다(국민은행 통계).
‘벼락거지’ ‘전세난민’. 문 대통령 임기 동안 악화한 주거의 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헌법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35조 3항)고 명시했지만 국가가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서 국민은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최대 화두 중 하나가 주거 안정이다. 이를 위해 여야 대선 후보 주자들은 한 목소리로 공급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서로 결이 다르다.
여당 주자들은 공공 주도와 신도시에 초점을 뒀고, 야당 주자들은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주택공급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국민의 재산권과 직결되는 부동산 세제는 여야간 선명하게 엇갈린다. 여당 주자들은 '더 많이', 야당 주자들은 '더 적게'로 나뉜다.
▲ 현 정부 들어 집값이 급등하면서 주거 안정이 이번 대선 공약의 주요 이슈가 됐다. 서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5년간 250만가구 공급"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년 임기 내 250만 가구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250만 가구는 지난해 기준 전국 재고 주택(1850만 가구)의 14%에 해당하고 연평균 50만 가구는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입주 물량(43만 가구)을 훨씬 상회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연간 50만 가구가 누적되면 시장에 상당한 공급 압력이 될 수 있지만 관건은 공급량보다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선호도가 높은 주택을 짓는 공급의 질”이라고 말했다.
주택공급 방안으로 야당 주자들은 도심에 주목하며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현재 특히 재건축이 강한 규제에 발목 잡혀 있다. 재건축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안전진단 강화, 재건축 사업 기간 집값 상승분에 부과하는 재건축부담금 등이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는 단기적으로 집값을 자극하는 부작용과 적정한 개발이익 환수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여당 주자들은 박용진 의원을 제외하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푸는 데 대체로 부정적이다.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박 의원은 각각 서울공항·김포공항의 신도시 개발을 들고 나왔다. 서울과 인접해 입지여건은 좋지만 지금까지 신도시 대상에서 제외된 데서 알 수 있듯 안보 등 논란이 많은 곳이다.
기본주택·원가주택·쿼터아파트
급등한 집값을 의식해 주자들은 저렴한 주택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30년간 건설원가 수준의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100만 가구의 ‘기본주택’(이재명), 건설원가로 공급하는 ‘원가주택’(윤석열), 시세의 4분의 1 가격인 ‘쿼터아파트’(국민의힘 홍준표 의원) 등이다.
기본주택은 저소득층 위주의 임대주택 범위를 중산층으로 넓혔다. 원가주택은 일정 기간 거주한 뒤 분양가에 가격상승 일정분을 보탠 가격으로 국가에 매각하는 방식의 청년층을 위한 주택이다. 쿼터아파트는 서울 강북의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건물만 분양하는 식이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토지임대부 주택, 공공전세 등 시세보다 싸게 공급하기 위한 목적의 기존 주택유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며 “공공이 맡아서 해야 하는데 부지 확보, 재정 마련, 당첨자가 이익을 가져가는 ‘로또’ 등이 난제”라고 말했다.
집값이 치솟으면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양주택에 주택 수요가 몰리는 상황에서 자산을 형성하기 어려운 이들 주택이 시장의 관심을 얼마나 끌지도 불확실하다.
국토보유세·토지독점규제3법 vs 보유세 등 완화
여야 어느 주자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게 세금이다. 여당 주자들은 불로소득 환수를 목적으로 ‘국토보유세’(이재명), ‘토지독점규제3법’(이낙연)을 도입하고 보유세·양도세 강화(추미애)를 주장한다.
국토보유세는 민간이 소유한 모든 토지에 세금을 부과해 0.17%인 실효세율을 1%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토지독점규제3법은 일정 규모가 넘는 택지 소유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택지소유상한법, 개발이익 환수를 강화하는 개발이익환수법 개정안, 유휴토지에 가산세를 매기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이다. 택지소유상한법은 과거 위헌 판정을 받기도 했다.
야당 주자들은 세제 완화를 말한다. 윤 전 총장은 적절한 보유세와 낮은 거래세가 주택 정책 기본이라고 했다. 홍 의원은 보유세·양도세 완화로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승민 의원은 1주택자 취득세 인하도 언급했다. 윤 전 총장은 대출 규제도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야당 주자들은 규제 완화를 1주택자로 제한하고 다주택자 완화에는 신중하다.
김종필 세무사는 “급격한 세제 완화는 투기 조장 우려를 낳을 수 있다”며 “새로운 세제 도입은 잦은 세제 변동으로 가뜩이나 피곤해진 국민의 세금 부담을 더욱 가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차기 대통령 후보 주자들은 역대 최고 수준의 규제로 최저의 주거 성적표를 거둔 현 정부 정책의 역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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