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지을 수 없어 매각이 번번이 좌절됐던 백현동 구(舊)한국식품연구원 부지가 민간 시행사인 A사에 팔린 후 1년 남짓한 시간 만에 일반 분양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준주거지역으로 변경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원은 용도 변경이 안 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불리한 조건에도 해당 부지를 A사에 수의매각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백현동 구(舊) 사옥 부지를 2011년부터 총 8차례 입찰에 부쳤지만, 모두 유찰됐다고 밝혔다. 부지 대부분이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자연녹지로 이뤄져 사업성이 낮았기 때문이다.〈중앙일보 10월5일자 4면 참조〉한국식품연구원도 이점을 알고 성남시에 몇 차례 용도 변경을 요청했었지만, 승인하지 않았다.
5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공기관이 실패한 용도 변경은 A사가 뛰어든 이후 빠르게 진행됐다. 한국식품연구원은 A사와 2015년 2월 MOU와 같은 조건으로 실제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약 7개월 후인 2015년 9월 성남시에서는 토지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했다. 4년간 8번 유찰될 동안 바뀌지 않았던 토지 용도가 A사가 뛰어든 1년 남짓한 시간 만에 4단계나 상향됐다.
▲ 경기 성남시 백현동 구(舊)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지어진 아파트 전경. 함종선 기자
용도 변경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당시 성남시는 임대 주택 건설을 조건으로 용도 변경을 승인했다. 2016년 12월 이마저도 일반 분양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식품연구원은 성남시 요청으로 임대 주택을 일반 분양으로 바꿔 달라는 공문을 대신 보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준주거지역 변경은 물론 일반 분양으로 바꿔준 것도 상당한 특혜로 볼 수 있다”면서 “민간 업자가 해당 부지를 매입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성남시가 이런 절차를 빠르게 진행한 것은 둘 사이 사전 교감을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당시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을 담당한 성남시 B국장은 이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대장동 부지 사업도 담당했다.
성남시와 공공기관이 토지 용도 등을 바꿔 민간 업체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지만, 계약은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한국식품연구원은 국회에 제출한 해명자료에서 부지 매각 계약을 하기 1년 전 A사 제안으로 토지 매각합의서(MOU)를 먼저 체결했다고 밝혔다. 토지 용도와 지구단위계획 변경 후 잔금을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인·허가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계약을 무를 수도 있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시작 단계부터 수의계약을 염두에 두고 A사와 MOU까지 체결했다. 부지 매각 과정을 감사한 감사원은 매입자에 유리한 새로운 조건이 추가된 만큼 연구원이 “수의매각이 아닌 재공고를 통해 입찰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매각 금액도 자연녹지 상태에서 감정평가를 받은 금액(2187억원)으로 팔았다. 준주거지역으로 바뀐 후 2015년 9월 받은 감정평가금액(4869억원) 절반 수준이었다. 용도 변경이라는 위험은 한국식품연구원이 모두 지고, 토지 가격 상승은 A사가 모두 누렸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공공기관이 인허가를 전제로 부지를 매각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면서 “용도 변경이 안 될 경우 계약금을 다시 물어줘야 하는 조건을 내걸었다면 수의계약이 아닌 입찰을 부쳤어도 매각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캠프 측은 “백현동 부지는 공공기관 이전 위해 당시 박근혜 정부의 국토교통부가 용도 변경을 독려했고, 성남시는 정부 시책에 협조해 준 것”이라며 “한국식품연구원은 이전 비용 위해 용도 변경 등을 추진했음에도 성남시 요청에 응했다고 거짓말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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