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후 매매 계약서를 단 한 건도 못 썼습니다. 주택 구매심리가 요즘 날씨만큼 얼어붙었어요."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동 L공인중개사무소 전모 대표의 말이다. 전 대표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는 팔아달라고 내놓은 매물은 많은데 사겠다고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 대표는 "그래도 추석 이전까지는 매매 문의가 있었고 매수 타이밍을 묻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쩌다 오는 문의 전화도 앞으로 가격이 얼마나 더 떨어질까 묻는 것들뿐"이라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주택 거래시장이 '올스톱'되다 시피했다. 추석 이후부터 분위기가 꺾이기 시작해 최근 집값 상승폭이 둔화되면서 매매가 뚝 끊겼다.
서울부동산광장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매매는 276건에 불과했다. 전체 25개 자치구 중에서 거래 건수가 10건 미만인 자치구가 13곳에 달했다.
거래는 줄고 있는데 매물은 쌓여만 가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4만1880건으로 한 달 전(3만8831건)에 비해 7.8% 늘었다. 경기·인천에서도 한 달 새 매물 수가 각각 14.5%, 21.1%씩 증가했다.
▲ 거래가 끊기고 집값 상승폭이 감소하면서 주택시장에 '변곡점'이 왔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자료사진
집값 상승폭도 둔화되고 있다. 2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 7주째 상승폭이 감소하고 있다. 지난 8월23일 연중 최고치인 0.22%를 기록한 이후 상승 둔화세가 이어지고 있는것잉다.
상승 폭은 지난 11일 0.17%까지 축소했다.
집값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지지만 매수세는 크게 줄었다. 매수세를 보여주는 매매수급지수는 서울의 경우 거의 기준치까지 내려왔다.
1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1.9로 한달 전보다 5.2포인트 하락했다. 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200에 가까울수록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지난 4월 19일 이후 약 6개월 만에 최저치다.
이처럼 주택시장이 악화된 것은 집값 단기 급등에 따른 ‘고점 인식’ 확산에다 대출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값이 많이 올라 매수가 부담스러운 시점에 정부의 강력한 주택공급 확대 정책, 금리 인상, 중국 경제 악화 우려 등 국내외 시장 여건이 불투명해지면서 매수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 5% 가까이 오른 주택담보대출 금리 부담이 크다. 투자 수요 입장에선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한 뒤 이자만 납부하다가 2∼3년여뒤 시세차익이 생기면 집을 팔고 나가는 '레버리지 투자'가 어려워져 자연스레 주택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정이 이렇자 시장에선 2015년 전후로 시작한 서울 아파트 가격의 대세 상승이 이제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현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값이 2배 가까이 치솟으면서 집값이 너무 올라 피로감이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 규제로 매수 여력은 감소해 매수 심리가 꺾이기 시작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공급 확대가 구체화되고 금리인상이 계속되면 대세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소위 '갭 투자자'들의 경우 보유세 강화에 대출 이자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급매 물량을 대량으로 시장에 풀어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문제는 일단 급매 폭탄 물량이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붕괴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집값이 하락하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집값 상승폭 둔화가 일시적인 조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주택 공급 부족 현상이 해소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대세 하락을 말하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 주택 수요 물량은 9만1000여가구다. 2022~2023년은 8만5000가구 정도다. 반면 공급 예정 물량은 7만여 가구 수준으로 수요보다 약 2만가구 부족한 상황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올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입주 물량이 2022년과 2023년에는 더 감소하게 된다"며 "내년 대선을 전후로 정책 변화도 예상되는 만큼 아직 추세를 단정적으로 확정해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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