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누구나집’, 저축하듯 내 집으로 차곡차곡 늘려나가는 ‘지분적립형’, 국민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는 ‘기본주택’, 원가에 파는 ‘원가주택’, 시세 반의반 값인 ‘쿼터아파트’.
듣기만 해도 솔깃하다. 새 아파트를 싸게 공급하겠다는 정책과 공약이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맞물려 정부와 여야를 가리지 않은 정치권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 전성시대다.
정부는 다급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으로 추진하고, 정치권은 표심을 잡기 위해 아이디어 경쟁을 벌인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을 연상시킬 정도다.
“표심 잡아라” 백가쟁명식 경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기본주택(분양형)은 건물값만 받는다. 강남 등 땅값이 비싼 지역일수록 분양가 인하 효과가 크다. 지난 6월 3.3㎡당 5653만원에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를 기본주택으로 공급하면 분양가가 3.3㎡당 1000여만원으로 내려간다.
분양가 중 3.3㎡당 4500여만원이 땅값이었다. 74㎡ 분양가가 17억원에서 4억원대로 확 떨어진다. 대신 분양받은 사람은 토지 소유권이 없기에 입주 후 토지분에 대해 임대료를 내야 한다. 이미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시세보다 훨씬 싼 건설원가에 분양가를 매긴 원가주택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건설원가로 주택을 제공하는 맞춤형 분양주택’이라고 표현했다. 또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서울 강북지역에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시세의 4분의 1 수준인 쿼터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장한 누구나집은 집값의 10% 정도만 보증금으로 내고 10년간 임대로 살다가 미리 확정된 금액에 소유권을 넘겨받는다(분양전환). 인천 검단 등 6개 단지(6000여 가구)를 시범사업장으로 정하고 사업자를 공모하고 있다. 대형건설사를 포함해 25개 업체가 사업의향서를 제출했다.
정부가 지난해 8·4대책에서 도입하기로 한 지분적립형주택이 지난 8월 제도화했다. 분양받은 사람이 분양가의 10~25%만 내고 입주한 뒤 20~30년에 걸쳐 소유 지분을 10~25%씩 확대해 나간다.
지난 2월 2·4대책에서 나온 이익공유형주택도 지난 9월 시행에 들어갔다. 분양가가 분양가상한제에 따라 정해진 가격의 80% 이하다. 대신 집을 시장에서 팔지 못하고 집값 상승분을 공공 사업자와 공유해 공공에 환매해야 한다. 입주 때까지 들어가는 초기 자금은 누구나집이나 지분적립형이 가장 적다.
물량 적어 집값 안정 효과 떨어져
이들 주택은 과거 정부의 실패한 주택정책을 재활용한 것들이다. 우선 기본주택은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시범 도입했다가 포기한 뒤 올해 초 부활한 토지임대부주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청약자격을 소득·자산에 상관없이 무주택자 전체로 확대한 게 차이점이다. 또 원가주택은 택지공급가격과 건축비로 분양가를 매기는 현행 분양가상한제와 별로 다를 게 없다.
누구나집은 10년 임대주택인 기존 공공지원 민간임대에 확정 분양전환가격 조건을 추가한 것이다. 공공지원민간임대는 임대 후 분양전환 의무가 없다. 과거 10년 분양전환 임대와 비슷한데 이 주택이 감정평가 방식의 분양전환 가격으로 논란이 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처음부터 분양전환가격을 못 박았다.
지분적립형은 이명박 정부 때 토지임대부와 함께 도입한 분납임대와 비슷하다. 이명박 정부는 지분형주택을 분양주택이 아닌 임대주택으로 도입했다. 분양가 납부 방식이 같고 임대주택이냐 분양주택이냐만 다르다.
이익공유형도 노무현 정부 때 토지임대부와 함께 시범사업을 한 환매조건부 판박이다. 기본주택 등이 앞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시범사업 정도 후 사라져 사실상 실패한 정책을 다시 불러낸 셈이다. 분납임대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는 시범사업으로 반짝 선보인 뒤 폐기됐다.
정부와 정치권이 값싼 주택에 공을 들이는 것은 집값을 안정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분양가는 제도로 규제할 수 있지만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이들 주택이 급등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공급물량이 제한적이다. 실제로 기본주택 등은 공공이 짓는 주택으로 도심 공급에 한계가 있고 공공이 사업하기 편한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일부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전매제한이 현행 분양가상한제 주택보다 더 엄격하고 분양받은 사람이 시세차익을 모두 가져가기 힘들다. 윤석열 후보의 원가주택도 매매차익의 30%를 환수할 예정이다. 분양가가 좀 더 비싸더라도 현행 주택이 훨씬 많은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로또’에 꽂힌 주택 수요자의 눈길을 얼마나 돌릴지 불확실하다.
강남 3.3㎡당 1000만원 내릴 수 있어
집값이 뛰는 건 분양가를 낮춘 주택 유형이나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분양가와 집값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안으로 고밀개발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땅에 지을 수 있는 건축 규모인 용적률을 높이면 된다. 분양가가 3.3㎡당 5600여만원에 달하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용적률을 현재 300%에서 400%로 높일 경우 분양가를 3.3㎡당 1000만원가량 낮추고 주택을 1000가구 정도 더 지을 수 있다.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 용적률이 대개 200% 이하다. 도심 주거지 상한인 300%로 올려도 주택공급을 50% 더 늘릴 수 있다. 분양가도 당연히 내린다. 지난 8월 3.3㎡당 2430만원에 분양한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공공분양의 경우 용적률이 200%였다. 300%로 올리면 분양가가 3.3㎡당 2000만원 아래로 내려간다.
정부가 뒤늦게 주택공급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고밀개발을 도입했지만 공공개발에서만 제한적으로만 추진하고 있다. 법안에 용적률을 50%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기본주택도 공공주택이다. 윤석열 후보가 용적률 상향을 민간 사업장으로 확대해 300% 상한인 재건축 용적률을 500%로 올리겠다고 했다.
공공부터 물꼬가 트인 고밀개발 범위를 사업 주체·사업지 등에 상관없이 대폭 확대해야 한다. 고밀개발을 통한 공급 확대가 우선이다.
<저작권자(c)중앙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