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당 6000만원 가까이 치솟은 아파트 분양가를 3.3㎡당 1000만원 선까지 낮출 수 있을까. 건축비만 받으면 가능하다. 지난 6월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분양가가 3.3㎡당 5653만원이었다.
이 중 1065만원이 건축비였다. 전용 74㎡(30평형) 분양가가 17억원이었고 건축비가 3억2000만원이었다.
땅은 빌려주고 건물만 팔아 가격을 확 낮춰서 ‘반값', 건물 소유권만 갖기 때문에 ‘반쪽'. 토지임대부 아파트를 말한다. 집값 급등세와 내년 대통령선거 바람을 타고 10년만에 부활하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가 너무나도 다른 입으로 같이 외치는 공통 공약이고 최근 취임한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의 첫 일성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대표적 부동산 공약인 기본주택이 ‘건축물만 분양하는 분양형’과 ‘건축물도 임대하는 임대형’이다. 분양형이 토지임대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역세권이나 국공유지에 무주택 가구를 위한 생애 첫 집으로 토지임대부 공공분양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김헌동 SH 사장은 지난 15일 취임식에서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주택’ 정책 추진을 통해 초기 분양 대금 부담을 덜어 드리겠다”고 말했다.
▲ 2010년대 초반 서울 서초지구와 함께 토지임대부를 분양한 강남지구. 전용 84㎡의 분양가가 2억원이었고 현재 시세는 13억원 정도다.
3.3㎡당 700만원대 분양가
토지임대부는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경기도 군포에서 시범사업으로 선을 보였다가 실패한 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특별법을 통해 정식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서울 강남·서초지구에서 2011~2012년 2개 단지만 분양하고 중단됐다.
수요자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일반 분양주택은 물론, 임대주택보다 청약경쟁률이 낮았다. 정부도 택지 확보 어려움 등을 내세워 더는 추진하지 않았다.
특별법이 2016년 폐지되고 일부 규정이 주택법으로 넘어가 지금까지 명맥만 이어오고 있다.
토지임대부 매력은 분양가를 대폭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분양가가 분양가상한제로 책정한 가격 중 택지비를 뺀 건축비다. 분양가상한제는 택지공급가격(신도시 등 공공택지)이나 감정평가금액(재건축 등 민간택지)인 택지비와 정부가 한도를 정한 건축비를 합쳐 분양가를 산정한다.
2010년대 초반 강남에 나온 토지임대부 분양가가 일반 공공분양의 절반 수준이었다. 서초지구 공공분양이 3.3㎡당 1050만원이었는데 토지임대부가 3.3㎡당 580만원이었다.
앞으로 나올 토지임대부의 분양가 인하 효과가 더 크다. 분양가에서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라가서다. 위례신도시 일반 공공분양 분양가 중 택지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54%에서 지난해 62%로 8%포인트 높아졌다.
건축비가 29% 오르는 동안 택지비가 2배가 넘는 67% 뛰었다. 땅값이 많이 오른 데다 택지공급가격 기준이 2015년 조성원가에서 감정평가금액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땅값이 상승하면 감정평가금액이 조성원가를 훨씬 초과하게 된다. 2011년 조성원가의 110%이던 택지비가 지난해엔 198%나 됐다.
위례신도시에 토지임대부를 적용할 경우 건축비 비율이 떨어지면서 일반 공공분양 대비 토지임대부 분양가가 2011년 46%에서 33%로 내려가게 된다. 래미안원베일리에선 5분의 1 정도다.
앞으로 나올 토지임대부의 분양가가 얼마나 될까. 래미안원베일리 건축비가 3.3㎡당 1000만원 선이지만 위례신도시를 비롯해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등의 공공분양에선 3.3㎡당 760만원 정도였다.
이 금액을 적용하면 흔히 34평형으로 불리는 전용 84㎡ 토지임대부 분양가가 2억5000만원 선이다. 건축비는 지역에 상관없기 때문에 강남에서도 가능하다.
'꼬리표' 토지임대료
토지임대부 분양가에 숨은 꼬리표가 있다. 땅값이 공짜가 아니다.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한다. 토지 임대료는 택지비에 은행 예금 금리를 적용해 계산한다. 2010년대 초반보다 금리가 많이 내려가 임대료 부담이 내려갔다. 2011년 금리가 4%대였고 지금은 1%대다. 공공택지에선 감정평가금액인 택지비가 아닌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임대료를 계산하기 때문에 더 적다.
2011년 서초지구 전용 84㎡ 토지임대료가 월 45만원이었다. 지난해 분양한 위례신도시 전용 84㎡ SH 공공분양을 토지임대부로 분양했다면 월 15만원이다. 조성원가가 아닌 감정평가 택지비를 기준으로 하면 임대료가 30만원이다.
현재 금리가 올라가는 추세여서 토지임대료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토지 임대료를 낮추는 방안으로 고밀 개발이 필요하다.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을 높이면 대지지분이 줄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 아파트를 짓는 데 필요한 땅(대지지분)이 용적률 200%이면 50㎡지만 용적률이 400%로 올라가면 25㎡로 절반으로 줄어든다.
과거 특별법은 토지임대부 용적률을 2.5배까지 완화할 수 있게 했다. 서초지구 토지임대부 용적률이 260%로 다른 일반 공공분양 아파트 210%보다 50%포인트 높았다. 용적률을 210%로 적용했다면 토지임대료가 월 55만원으로 10만원가량 늘어났을 것이다.
현행 토지임대부 관련 법에는 토지임대부 주택의 용적률 특례 조항이 빠졌다. 현재 여당에서 발의된 법령이 1.5배까지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역세권 민간 재건축 용적률을 300%에서 500%로 상향조정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공급물량을 늘리기도 하지만 토지임대부 토지임대료도 70%가량 낮출 수 있는 방안이다.
토지임대부 '쟁점'은 로또
토지임대부 쟁점이 ‘로또’다. 2011~2012년 분양한 토지임대부 시세가 분양가의 6~7배로 뛰었다. 분양가 2억원인 서초지구 전용 84㎡ 시세가 14억~15억원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토지 소유권이 없어도 집을 쓰는 데 상관이 없어서 토지임대부와 일반 아파트 간 가격 차가 크지 않다”며 “전셋값은 거의 같다”고 말했다.
토지임대부는 건물과 토지 소유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정부가 실거래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토지임대부 등기부등본을 보면 건물 전용면적만 표시돼 있고 대지권 항목이 없다.
토지임대부는 일반 분양 아파트를 훨씬 능가하는 로또다. 래미안원베일리 주변 새 아파트 최고 거래가격이 3.3㎡당 1억원을 넘어섰다. 주변 시세를 3.3㎡당 1억원으로 잡아도 래미안원베일리 토지임대부 방식의 분양가(3.3㎡당 1000여만원)가 10분의 1 수준이다.
위례신도시 전용 84㎡ 실거래가가 지난 9월 최고 18억5000만원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11월 분양한 SH 공공분양 같은 크기의 최고 분양가가 7억원이었다. 토지비를 제외한 건축비가 2억5000만원이다. 토지임대부라면 로또가 16억원으로 공공분양(11억5000만원)보다 4억5000만원이 더 많다.
하지만 앞으로 토지임대부 로또를 기대할 수 없다. 토지임대부의 과도한 시세차익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 1월 시장의 거래를 제한하고 공공에 매각하도록 관련 법령이 바뀌었다. 매각가격은 분양가에 보유기간 동안 예금 이자를 합친 금액이다. 관련 법 개정이 이후 입주자모집을 하는 단지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앞서 분양한 단지들은 상관없다.
토지임대부의 시세차익을 금지하면 사실상 월세 임대 아파트인 셈이다. 로또를 기대하는 일반 아파트 수요를 만족하게 할 수 없고 임대 수요자에게도 매력이 없다. 토지임대부는 재산세·종부세를 내야 한다. 공시가격이 일반 아파트의 70% 정도다. 전용 84㎡ 기준으로 서초지구 내 일반 아파트 올해 공시가격이 9억5000만원 선이고 토지임대부가 6억8000만원 정도다.
토지임대부를 활성화하려면 시세차익 여지를 남겨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시행된 공공 도심복합단지 내 이익공유형 주택의 환매 조건을 참고할 만하다.
이익공유형은 분양가를 분양가상한제 가격보다 20% 이상 저렴하게 책정한다. 대신 전매제한 후 공공에 되팔아야 하는데 주변 시세 대비 분양가 수준과 보유기간에 따라 시세의 50~80%를 받는다.
신혼희망타운에도 시세차익 환수 장치가 있다. 70%까지 연 1.3%의 파격적인 초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대신 보유기간, 자녀 수에 따라 매각차익의 10~50%를 가져간다.
김규정 한국자산신탁 자산승계연구소장은 “토지임대부의 환매 조건이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관건'은 공급물량
관건은 물량이다. 임기 5년 이내에 이재명 후보가 기본주택 100만가구 이상 공급하겠다고 했다. 토지임대부를 30%로 보면 30만가구다. 윤석열 후보가 공약한 토지임대부 물량이 20만가구다.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주택건설인허가를 받은 일반 분양주택이 연평균 52만가구이고 이중 공공분양이 2만가구도 채 되지 않는다. 공공분양을 모두 토지임대부로 바꾸고 물량을 대폭 늘리더라도 달성하기 쉽지 않다. 공공 개발할 땅이 많지 않은 데다 공공주택 개발에 대한 해당 지역의 반발도 거세다.
분양가를 확 낮추는 토지임대부가 태산명동서일필(태산이 떠나갈 듯이 시끄럽더니 쥐 한 마리만 뛰어나왔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수요자에 혜택이 많이 돌아가고 시장 가격도 안정시키려면 공급물량이 아주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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