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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받는 재개발·재건축
#1 1971년 준공된, 서울 여의도에서 지은 지 가장 오래된 시범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재건축사업을 추진한다.

지난달 시범 아파트를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 사업지로 선정한 서울시는 최근 이 아파트의 재건축 관련 건축설계용역을 발주했다. 재건축(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사업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용역을 발주했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재건축조합 측은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신통기획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신통기획은 민간인 재건축조합이 사업을 주도하고 서울시가 관련 인·허가를 돕는 형태다. 이를 통해 서울시는 도시계획 결정기간을 종전 5년에서 2년으로 확 줄일 수 있다고 본다.

#2 서울시는 이달 초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해제된 이후 재개발 사업이 사실상 멈췄던 서울 종로구 창신1~4구역을 재개발 사업지(정비구역)로 일괄 지정했다. 이곳은 2007년 창신·숭인뉴타운으로 묶여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2013년 뉴타운에서 해제되면서 개발이 멈춰 있었다.

30년 이상 된 노후·불량 건축물이 95% 이상 달해 재개발 압력이 높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에 막혀 정비사업은 공회전을 거듭했다.

서울시는 “뉴타운 해제 이후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며 “동대문 일대 낙후된 도심 상업공간이 한양도성 도심 위상에 맞게 재편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서울 여의도 시범 아파트 등이 서울시가 추진하는 민간 주도 재건축 사업인 신속통합기획 방식을 도입키로 해 주목받고 있다. [뉴스1]


상계주공 13개 단지 1차 안전진단 통과

서울을 중심으로 도심 재개발·재건축사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강북의 노후 주택 밀집 지역(재개발)과 강남의 낡은 아파트(재건축)가 10여 년 만에 재개발·재건축 깃발을 꽂고 출항 준비를 하고 있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10여 년 만에 서울시장이 바뀐 영향이다.

4월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일부 규제를 풀고 재개발·재건축사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서울은 빈 땅이 없어 재개발·재건축이 사실상 유일한 주택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주택시장에도 단비가 될 전망이다.

‘재건축의 상징’으로 불리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도 최근 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전체 소유주 30%에 해당되는 1460명이 동의를 얻어 최근 강남구청에 신통기획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를 주도한 은마반상회 측은 “은마 아파트의 경우 이미 20년째 정비구역 지정 관련 협상을 진행해 왔다”며 “은마반상회의 신통기획 동의서 징구 소식만으로도 은마 재건축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은마 아파트는 1990년대 말 첫 재건축사업 추진을 시작했지만 안전진단, 층수제한 등 정부와 서울시의 각종 규제 대상이 되면서 20년간 공회전을 거듭했다.

양천구 목동과 비슷한 시기에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된 노원구 상계동에서는 주공12단지가 지난달 재건축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상계주공 1~16단지 중 13개 단지 모두 안전진단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상계주공 1단지는 지난달 11일 2차 안전진단인 적정성 검토를 신청했다. 이 단지는 10월 1차 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47.5점)을 받았다. 상계주공 7단지와 4단지, 10단지도 각각 7월과 8월, 9월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노후 단독주택지가 많은 강북에서는 재개발사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재개발에 이어 민간 재개발을 추진하는 곳이 수십여 곳에 이른다.

한동안 끊기다시피 했던 재개발·재건축사업 바람이 부는 건 오 시장이 내놓은 신통기획 영향이 크다. 이른바 ‘오세훈표 재개발’로 불리는 신통기획은 정부가 서울에서의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추진하는 공공 주도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일반적인 형태인 민간 주도 방식이다.

민간 주도로 사업을 진행하되, 서울시가 계획과 절차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서울시가 사업 초기 단계에 참여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대신 정비구역 지정을 5년에서 2년으로 단축시킨다.

이전까지는 각 자치구와 주민들이 동의서를 모으고, 정비계획안을 짠 뒤 이를 시에 제출하는 과정을 거쳤다. 통상적으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정비계획을 결정하려면 심의를 세 번 정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보류 결정을 받으면 자치구 담당 주무관부터 서울시 담당 과장까지 다시 결재를 받아야 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통기획은 서울시가 초반부터 조합 측과 정비계획안을 같이 짜니 시 도시계획위원회 통과가 비교적 빠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70여 곳 주민 동의만 하면 재개발 가능

지난달 말 신통기획 재개발 공모에 102곳이 지원하는 등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우후죽순 난립한 뉴타운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주민 동의율을 30%로 높였는데도 신청이 밀려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주도 재개발은 주민동의를 10%만 받아도 되는데, 공모 뒤 1년 동안 70여 곳이 신청한 것과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다.

오 시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서울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이 약 10년간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신통기획을 바탕으로 속도감 있게 재개발·재건축을 진행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사업기간 단축을 앞세운 신통기획으로 바람몰이를 하고 있지만, 결정적 계기는 규제 완화였다. 서울시는 10월 재개발·재건축 사업성 저해 요인으로 꼽혔던 이른바 ‘2종 7층’(2종 일반주거지역의 7층 높이 제한) 규제를 풀었다. 이에 따라 7층 규제를 받던 2종 일반주거지역은 최고 25층까지 건축이 가능해졌다.

허용 용적률은 190%에서 200%로 상향됐다. 2종 일반주거지역의 7층 높이제한은 저층주거지 주거환경 보호, 난개발 방지 등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서울시 전체면적(605㎢)의 약 14%(85㎢), 주거지역 면적(325㎢)의 26%는 7층 이하로  규제를 받았다.

앞선 9월에는 재개발 대못으로 불린 주거정비지수제를 폐지했다. 2015년 도입된 주거정비지수제에 따라 그간 재개발 구역 지정을 위해서는 법적 필수요건인 노후도 3분의 2 이상, 구역면적 1만㎡ 이상은 물론 주거정비지수 기준점수 70점 이상과 노후도 연면적 60% 이상을 동시에 충족해야 했다.

이 때문에 박 전 서울시장이 2015년 주거정비지수제를 도입한 이후 지난해까지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사업지는 한 곳도 없었다. 앞서 서울시가 재개발 해제구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해제지역 316곳 중 절반이 넘는 170여 곳(약 54%)이 여전히 건물 노후화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정비지수제가 적용되면 재개발 가능 지역은 14%에 불과하지만, 제도 폐지로 170여 구역이 주민 동의만 얻으면 회생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른바 ‘35층 룰’로 불리는 35층 층고 제한 완화도 예고됐다. 현재 서울시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은 35층 이하, 한강에 면한 동은 15층 이하로 층고를 제한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이 2014년 발표한 ‘2030 서울플랜’에 근거하고 있다.

도시 경관 보호 목적으로 박 전 시장이 만든 규제인데, 그래서 시장에서는 ‘박원순 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가 35층 룰에 부딪혀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대표적인 곳이 은마 아파트다.

최고 49층으로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서울시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서울시는 신통기획에 선정되면 35층 룰 완화를 전제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강남·여의도 주요 재건축 단지가 앞다퉈 신통기획 신청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집값 올라 재개발·재건축 동력은 충분”

최근 몇 년 간 집값이 급등한 것도 재개발·재건축사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비사업은 기본적으로 주변 아파트값이 올라야 가능한 구조다. 재개발·재건축으로 늘어난 주택을 비싸게 팔수록 조합(소유주)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집값 상승으로 동력이 충분한 데다 서울시가 규제를 계속 규제를 완화하거나 풀고 있기 때문에 노후 아파트나 주택지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며 “당분간 재개발·재건축을 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개발·재건축 깃발을 꽂았다고 곧바로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신통기획은 정비구역지정과 사업시행인가 단계를 신속히 해주는 제도일 뿐이다. 정비구역지정을 받으려면 먼저 안전진단 등 여러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안전진단부터 막힌다면 신통기획을 아예 추진할 수 없다.

강동구 고덕주공 9단지가 대표적인 예다. 1차 안전진단은 통과했지만 6월 2차 안전진단에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안전진단 항목 중 구조안전성을 대폭 강화하면서 붕괴 위험성이 없는 이상 재건축 판정을 받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규제를 모두 걷어 내더라도 민간 주도의 개발사업 특성상 사업 기간도 평균 15년 이상으로 긴 편이다. 결과적으로 당장 주택 공급 물량이 확 늘어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 불안이나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 등으로 재개발·재건축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노후 주택지의 주거환경 개선과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필요한 사업”이라며 “당장은 주택 공급 효과가 미비하겠지만 한동안 막혀 있던 사업에 물꼬가 트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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