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상승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세금이 늘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은 한국부동산원이나 감정평가사가 시세 등을 고려해 산정하는 국가 공인 몸값으로 보유세로 꼽히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계산하는 기준 금액이다.
주택 공시자격이 주택 재산세·종부세 기준이고 토지 공시가격에 해당하는 공시지가가 토지와 주택 이외 비주거용 건물 토지분 과세 자료로 쓰인다. 공시지가가 일정 금액을 초과하면 종부세도 내야 한다. 나대지, 비업무용 토지 등 종합합산 토지가 5억원, 상가·사무실 부속토지 등 별도합산 토지가 80억원이다.
▲ 지난 6월 분양가상한제에 따라 3.3㎡당 5653만원에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내년 표준지 공시지가 급등으로 강남 최고 분양가가 3.3㎡당 6000만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개별 필지 공시지가 잣대가 될 표준지 공시지가가 지난 23일부터 열람에 들어갔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10% 넘게 오르는 것으로 나타냈다. 내년에도 토지 보유세가 상당히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표준지 공시지가 급등에 미소 짓는 땅 주인이 있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이다. 모든 조합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서울 등 분양가상한제 지역 조합이다. 반면 분양을 기다려온 수요자는 씁쓸할 것이어서 희비가 갈린다.
강남 분양가 10% 상승 요인
조합원 몫을 제외하고 일반에 파는 일반분양분 분양가를 정하는 분양가상한제가 표준지 공시지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분양가상한제는 인근 유사한 아파트 부지의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감정평가해 산정한 땅값에다 정부가 정한 건축비를 합쳐 분양가를 매긴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강남 등 집값이 비쌀수록 분양가에서 차지하는 땅값 비중이 크다”며 “표준지 공시지가가 오르면 자연히 분양가가 오르면서 분양수입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시간이 돈을 벌어주는 셈이다.
지난해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등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뒤 조합들이 분양을 서두르지 않은 이유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분양을 미룰수록 땅값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강남 재건축 조합이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 덕을 톡톡히 본다. 내년 11.21% 오르는 서울에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가 가장 많이 올랐다(12.55~13.32%).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으로 분양가가 얼마나 오를까. 분양가 중 택지비 비중에 따라 차이 나는데 감정평가 땅값이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에 따라 11% 오른다고 보면 총분양가 상승 요인이 대략 5~10%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본다. 강남에선 10% 정도다.
지난 6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분양가가 3.3㎡당 5653만원이었다. 이 아파트 인근 표준지 공시지가가 내년 12% 상승할 예정이다. 래미안원베일리 분양가 중 건축비는 그대로 두고 땅값에 12% 상승을 적용하면 3.3㎡당 6200만원이 나온다. 강남 분양가상한제 분양가가 3.3㎡당 6000만원 시대에 들어서면서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84㎡ 분양가가 1년 새 2억원 정도 올라 20억원을 넘게 된다.
본지가 분양가상한제 지역의 내년 아파트 최고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모의 계산한 결과 서초구보다 표준지 공시지가가 더 비싼 강남구가 3.3㎡당 6300만원대다. 송파구 잠실에선 3.3㎡당 5000만원이 가능할 전망이다. 내년 하반기 송파구 신천동 진주 재건축 아파트가 분양할 예정이다.
내년 분양할 것으로 예상되는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의 분양가가 관심을 끈다. 1만2000여가구의 매머드 단지이고 일반분양물량이 5000가구 정도에 달한다. 당초 분양가상한제 시행 전 조합이 3.3㎡당 3500만원선의 분양가를 기대했으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3000만원 이하로 제한하면서 분양이 미뤄졌다. 둔촌주공 인근 송파구 표준지 공시지가로 보면 3.3㎡당 3500만~4000만원이 예상된다.
개별 단지 감정평가금액이 위치 등에 따라 표준지 공시지가와 차이 나기 때문에 실제 개별 분양가는 모의계산과 다를 수 있다.
표준지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시세 반영률)도 주의해야 한다. 국토부는 내년 표준지 공시지가 현실화율이 71.4%로 올해보다 3%포인트 오른다고 밝혔다. 현실화율 제고만으로 공시지가가 4%가량 상승하는 셈이다. 실제 땅값은 그만큼 덜 오르는 것이다.
분양가상한제 분양가의 변수로 용적률을 빼놓을 수 없다. 용적률은 땅에 지을 수 있는 건축 규모를 결정한다. 용적률이 올라갈수록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땅(대지지분)이 줄어들어 분양가가 내려가게 된다.
용적률 낮으면 분양가 더 올라
강남 재건축 용적률이 대개 법적 상한인 300%이지만 낮은 단지가 더러 있다. 용적률이 내려가면 반대로 필요한 대지지분이 커지고 땅값이 늘어나 분양가가 올라가게 된다. 둔촌주공이 273%다. 용적률이 300%에서 27% 포인트 내려가면서 택지비 증가로 분양가가 3.3㎡당 200만원 정도 올라가게 된다. 후분양을 추진하는 서초구 반포동 반포3주구 용적률도 270%대다. 용적률 300%의 반포 3.3㎡당 6200만원에 용적률 270%를 적용하면 3.3㎡당 6700만원 선으로 3.3㎡당 500만원 정도 분양가 인상 요인이 된다.
같은 지역에서 용적률 차이로 재건축 분양가가 공공택지 분양가보다 낮을 수 있다. 재건축 용적률이 250~300%인데 공공택지 용적률이 200% 안팎이다.
▲ ※ 내년 해당 지역 아파트 최고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추정. 개별 단지 분양가는 위치 등에 따라 차이 남.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분양가상한제 분양가도 덩달아 뛰고 있다”며 “그래도 주변 시세보다 아주 저렴한 ‘로또’여서 분양가상한제 단지의 청약경쟁은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분양가 상승률보다 시세 상승 폭이 훨씬 크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16.4%다. 분양가와 시세 격차가 더욱 벌어진 셈이다.
강남에서 1년 새 전용 84㎡ 분양가가 2억원가량 오르는 사이 잘 나가는 새 아파트 시세는 5억원 이상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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