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3주구(에이아이디차관주택, 이하 반포3주구) 72㎡(이하 전용면적)를 지난해 5월 16억여원에 팔았다. 같은 달 거래된 같은 주택형 다른 집보다 최고 14억원 저렴한 금액이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같은 달 K씨 집을 제외하고 거래된 집이 6가구다. 거래가가 22억~30억원이다. 거래가 30억원 집은 K씨와 같은 층이다.
K씨 거래가격은 재건축으로 지을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자격이 되지 못해 조합에서 현금으로 보상받은 현금청산 금액이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 집은 K씨가 2001년 샀고 매수 후부터 현금청산 때까지 거주한 것으로 돼있다.
반포3주는 1974년 입주한 72㎡ 단일 주택형 1490가구로 이뤄져 있다. 도로 건너편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이하 반포주공1단지)와 함께 지어졌으나 도로를 경계로 재건축 사업구역이 나뉘어졌다. 2014년 재건축 조합을 설립했고 지난해 7월 최종 재건축 계획인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뒤 착공하기 위해 현재 이주 중이다. 시공사가 삼성물산이다.
▲ 반포3주구는 강남 재건축 대장주인 반포주공1단지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1974년 준공한 5층 저층 단지다. 이주 막바지 단계다.
K씨가 20년간 살던 집을 시세의 거의 절반 수준에 현금청산된 이유가 뭘까. 현 정부의 첫 고강도 종합 부동산대책인 2017년 8·2대책 후폭풍이다. 정부는 서초구 등을 조합설립 이후 조합원 자격 변경을 금지(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재건축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거래 제한 조치였다.
실거래가 30억원, 현금청산 16억원
투기과열지구에선 조합설립 이후 매매 등을 통해 소유권을 갖더라도 조합원 자격이 넘어오지 않는다. 조합원 자격이 없으면 현금청산 대상이다. 현금청산 금액 산정 시점이 사업승인을 받은 무렵이다. 이 아파트가 2017년 9월 사업승인을 받았다. 그해 8월 실거래가가 16억8000만원이었다.
등기부등본에 조합의 매도청구 소송이 나오지 않아 전문가들은 K씨가 조합과 현금청산에 합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K씨 현금청산 사유가 복합적이라고 말한다. K씨는 2019~2020년 지분 90%를 남편과 자녀에게 증여했다. 이혼·상속은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의 예외사유로 인정되지만 증여는 매매와 마찬가지로 제한된다.
예외 조항으로 10년 이상 보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하면 매매·증여 등을 해도 지위를 양도할 수 있지만 K씨는 해당하지 않았다. 증여 전 10년 넘게 보유하고 거주했지만 1주택자여야 한다는 요건에 어긋나기 때문에 입주권을 받지 못한다. K씨는 도로 건너편 반포주공1단지도 소유한 2주택자다.
또 K씨의 다른 집인 반포주공1단지가 이 아파트에 앞서 2018년 12월 관리처분 인가를 받았다. K씨는 관리처분 인가에 따라 2018년 12월 반포주공1단지를 분양받은 데 이어 3년만인 지난해 7월 다시 반포3주구를 분양받은 셈이다.
이는 같은 8·2대책에 따라 도입된 재당첨 제한에 걸린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재건축 조합원 분양 대상자는 5년 이내에 다른 재건축 분양 대상자가 될 수 없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여러 사정이 종합적으로 걸려 구제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반포발 재건축 현금청산 공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조합설립 이후에도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적용을 받지 않고 팔 수 있는 방법이 적지 않다. 조합설립 이후 단계인 단지인데도 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한 거래다. 조합설립 이후 취득해도 조합원 자격이 나오는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예외를 정리해봤다.
이혼·상속은 예외, 증여는 금지
조합 설립 이후에도 본의 아니게 불가피한 사정으로 소유권이 바뀌는 경우다. 근무 또는 생업 상의 사정이나 질병치료·취학·결혼으로 세대원이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집이다. 같은 서울 내 다른 자치구는 안된다. 광역자치단체나 같은 광역자치단체에선 시·군이 달라야 한다.
해외로 나가면서 파는 집도 조합원 지위가 승계된다. 이주하거나 세대원 모두 2년 이상 체류하는 경우다. 상속받은 다른 집으로 전 세대원이 모두 들어가기 위해 매도하는 집엔 조합원 지위가 살아있다.
이혼·상속으로 받은 집도 마찬가지다. 다만 증여는 매매처럼 의도적인 소유권 이전이어서 해당하지 않는다. 경매·공매 주택도 조합원 자격이 있다.
장기 보유 주택도 조합원 지위가 유효하다. 1주택자가 10년 이상 소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한 집이다. 소유자 외에 배우나 직계존비속이 거주해도 된다.
※ 실거래가는 월별 최고가. 자료: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
반포3주구에 소유한 지 10년이 지나지 않아 증여했다가 현금청산된 사례가 있다. L씨는 2010년 11억5000만원에 매입한 집을 2019~2020년 자녀(추정)에게 지분 99%를 증여했다. L씨는 지난해 3월 16억6000여만원에 현금청산됐다. 소유기간 10년이 지나지 않은 증여로 다툼의 여지가 없어서인지 별다른 법적 다툼 없이 조합에 매도했다.
지난해 3월 실거래가 25억3000만~28억6000만원이었다. L씨가 1주택자라는 전제에서 1년만 늦게 증여했더라면 현금청산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3년 이상 사업 정체 단지 승계 가능
재건축사업이 장기간 정체된 집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 조합설립 이후 3년이 지나도록 사업승인을 신청하지 못했거나 사업승인 이후 3년이 지나도록 착공하지 못한 아파트다. 다만 둘 다 3년 이상 소유기간을 충족해야 한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잠실주공5단지. 조합설립 3년이 지나도록 사업승인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다. 조합설립 이후여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대상이지만 3년 이상 보유했으면 조합원 지위와 함께 양도할 수 있다. 뉴스1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가 8년이 지나도록 조합설립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반포주공1단지·반포3주구 모두 사업승인 후 5년째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앞선 K씨·L씨 사례는 사업승인 후 3년이 지나기 전에 이뤄진 증여여서 장기 정체 예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이민경 법무법인 조운 변호사는 “전문가도 헷갈릴 정도로 조합원 지위 양도 문제가 복잡해 조합원 지위 승계 여부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며 “투기과열지구에서 조합 설립 이후 단계의 집을 처분하거나 매수할 때는 법률 자문을 받아 조합원 자격을 잘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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