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이 둘은 문재인 정부 내내 집값을 들썩이게 했던 주요 요인이다. 온갖 규제로 주택 공급을 틀어막아 주택이 부족해지면서, 수도권 외곽 지역의 서울 도심 접근성을 높이겠다며 GTX를 확대하면서 서울은 물론 수도권 외곽까지 집값을 확 끌어 올렸다.
집값을 잡기 위해 편 정책이었지만, 되레 집값을 밀어 올리고 말았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다시 주택 공급과 GTX가 주택시장을 달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집값을 잡겠다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택 공급을 외치고 있다. 수도권에서 표를 얻기 위해 GTX 연장도 약속했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 후보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두 후보의 부동산 공약이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에는 서로 공약을 베끼는 듯 한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공약 자체가 비슷하다 보니 두 후보가 ‘질’보단 ‘양’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후보가 주택 100만 가구 공급을 선언하면, 그 다음날 다른 후보가 20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나서는 식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책 차별성을 위해 무리하게 숫자나 덩치를 키우면서 현실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누가 되든 당선된 이후엔 현실성을 앞세워 말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주택 공급, 숫자 늘리기 급급
가장 대표적인 게 주택 공급 물량이다. 두 후보는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큰 집값 안정 해법으로 ‘대규모 주택 공급’을 내세운다. 윤 후보는 2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나섰고, 이 후보는 문 정부가 계획한 206만 가구에 추가로 105만 가구를 더해 총 31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가 총 30만 가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5년 내에 윤 후보는 1기 신도시 8개를, 이 후보는 10개를 추가로 건설하는 수준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두 후보는 신도시 개발은 물론 도심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고, 도심 용적률을 상향해 최대한 공급을 늘리겠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물량 자체가 임기 내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어서 벌써부터 현실성 논란이 일고 있다. 말로만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숫자도 숫자지만 구체적인 공급 방안은 더 비현실적이다.
태릉·용산 등 국·공유지 개발과 1호선 지하화(이재명), 역세권 주거지 용적률 700%와 1기 신도시 재건축·리모델링 활성화(윤석열) 등이다. 1호선을 비롯해 국철 지하화는 지방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인데, 공사기간이나 비용 등을 고려하면 효율성이 낮아 빈말에 그치기 일쑤였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국철 구간 지하화에만 약 32조원이 넘게 든다. 서울 태릉·용산 등 국·공유지는 이미 문 정부가 추진하다 주민 반발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고, 공공 주도 도심 재개발·재건축 사업 역시 잘 안 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4 대책에서 공공 주도 재개발·재건축으로 13만6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현재까지 확보한 물량은 후보지 2곳에서 1000가구뿐이다. 윤 후보의 공약도 마찬가지다. 역세권 주거지의 용적률을 700%로 상향하면 동간 거리가 짧아져 주거환경은 열악해 진다. 아파트(동)가 다닥다닥 붙은 이른바 ‘닭장 아파트’를 양산할 수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저층부 일부에서는 1년 내내 햇볕이 들지 않는 영구 음영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두 후보의 공통 공약인 반값 아파트는 이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시도했지만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반값 아파트를 분양으로 공급하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장하는 셈이어서, 임대로 공급하면 재원을 고스란히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막연한 수준의 공급 물량을 내놓기 보다는 꾸준하고 안정적인 공급 기조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성 분석 없는 GTX 노선 연장
두 후보가 입을 맞춘 듯한 GTX 연장·신설안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외곽의 교통여건을 개선한다는 명분이지만 표심을 잡기 위한 ‘묻지마 공약’이라는 지적이다. 이 후보는 정부가 추진 중인 GTX-A·C·D 노선을 연장(GTX 플러스 노선)하는 동시에 E·F 노선을 신설하겠다 밝혔다.
A노선을 동탄에서 평택으로, C노선을 오산·평택에서 동두천으로 연장한다는 구상이다. D노선은 경기도안인 하남 연장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E(인천공항~강남~구리~포천), F(파주~광화문~잠실~여주) 노선을 추가했다.
윤 후보는 D노선을 강남에서 여주까지 추가로 연결하고, 수도권을 가로지르는 E노선(인천 검암~김포공항~구리~남양주)과 순환선인 F노선(고양~안산~수원~성남~의정부) 구상안을 내놨다. A·C노선은 이 후보안과 거의 같다. 두 후보의 GTX 연장·신설안은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GTX를 두 배 이상 확충해 교통여건을 개선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노선별 수요 예측을 비롯한 타당성 조사나 경제성 분석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아 표심 잡기식 공약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GTX 사업은 타당성 조사나 경제성 분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을 알기 어렵다.
경제성이 있다고 해도 재원 조달 방안이 빠져 역시 현실화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 후보는 “GTX처럼 대규모 예산이 투자되는 사업은 대개 민자사업이 많아 사업성만 확보되면 재정 부담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언급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발언이다.
사업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른 GTX-A노선은 전체 사업비 2조9000억원 가운데 국비와 지방비가 각각 약 1조원, 4000억원 이상 투입된다. 민간투자비로는 절반가량인 1조4000억원을 조달했다. 수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절반가량의 재원을 민간에서 유치한다 해도 나머지는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특히 무리한 GTX 연장·신설 공약이 투자 심리를 자극해 집값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에는 인덕원·의왕 등지가 GTX 건설 영향으로 집값이 급등한 바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 ‘Z노선’도 나오겠다는 조롱이 나오는 이유다.
‘G퓰리즘(GTX+포퓰리즘)’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등장했다. GTX 공약으로 구체적인 철도계획을 제시했다기보다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업과 정책이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정확한 수요 조사 등이 뒷받침되는 발표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세금 개편안도 현실성 떨어져
두 후보가 주장하는 부동산 관련 세금 개편안도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이 후보 직속기구인 부동산개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말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을 혁파하기 위해 토지이익배당금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국토보유세’를 토지이익배당금제로 이름을 바꿔 재추진하는 것이다. 국토보유세는 일정 금액이 넘는 주택·토지에 과세하는 종합부동산세와 달리 모든 개인과 법인이 소유한 주택·토지에 부과하는 일종의 징벌적 세금이다.
토지보유세 강화로 투기를 차단하고, 이를 소득 양극화 완화를 위한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게 이 후보의 구상이다. 토지이익배당금제는 명칭만 바뀌었을 뿐 국토보유세와 전반적으로 틀이 같다.
이 후보는 토지이익배당금제를 도입해 현재 0.17%에 불과한 부동산 보유 실효세율을 1%로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토지이익배당금제가 신설되면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이 만만찮아 계속해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국토보유세를 도입하면 보유 토지가 많은 대기업의 세 부담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예컨대 사업특성상 대규모 토지 사용이 불가피한 물류창고, 공장, 농업법인 등의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영업성과가 악화하고, 경제 전체적으로 고용·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후보가 토지이익배당금제와 종합부동산세의 통합에 대해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논란의 요소다.
최근 주택 보유자들의 종부세 부담이 무거워졌는데 이를 유지한 상태에서 토지이익배당금제를 별도로 걷는다면 세금 부담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보유세(종부·재산세) 부담을 줄이고, 양도소득세율을 낮추는 부동산 세제 개편을 예고했다. 세금을 완화해 시장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단기간 급등한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를 늦춰서 보유세 급등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종부세 전면 재검토,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재산세 부담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현행 50% 수준 감면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세법·종합부동산세법·소득세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당장 부동산 관련 세제가 바뀌기 힘들다는 얘기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는 2024년 4월 1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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