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역대급 대규모 분양시장이 들어서지만 ‘로또’ 수확이 이전만 못 할 것 같다. 집값 하락세가 짙어지며 시세가 내리는데 분양가가 뛰기 때문이다. 땅값·물가 급등 파장이 분양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최고 로또로 꼽히는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의 매력이 떨어진다. 도심 상한제 아파트가 2020년 하반기부터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분양한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분양예정인 물량이 2만가구로 지난해 3000가구의 7배에 가깝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는 조합원 몫을 제외하고 일반에 분양예정인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1만6000여가구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
서울 분양 물량 대부분 상한제 적용을 받는다. 25개 자치구 중 18곳이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올해 상한제 분양가가 뛴다. 상한제는 시세에 상관없이 원가로 분양가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감정평가 금액인 택지비와 정부가 정한 건축비를 합친 금액이다. 분양가를 좌우하는 변수가 택지비 감정평가 기준인 표준지 공시지가와 건축비 상한선인 기본형건축비인데 둘 다 올해 크게 오른다.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가 지난해보다 전국 10.17%, 서울 11.21% 각각 오른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이다.
▲ 올해 서울 분양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히는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 공사 현장. 이미 2019년 말 착공에 들어가 한창 공사 중이다. 조합원 몫을 제외하고 4800여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다.
건설 공사비 13% 급등
정부가 1년에 두 차례씩 3, 9월 고시하는 기본형건축비도 올해 크게 오를 전망이다. 건축자재·노무비 등이 많이 올라서다. 통계청의 주거용 건물 건설공사비 지수만 보더라도 지난해 13.3% 올라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정부는 급등하는 철근 가격을 반영해 지난해 7월 비정기 고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고시 금액이 지난해 3월보다 5% 넘게 올랐다. 다음 달 정기고시 금액은 1년 전보다 1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에는 1년에 5% 이상 오르지 않았다.
표준지 공시지가와 기본형건축비 상승의 분양가 인상 효과가 어떻게 될까. 지난해 6월 3.3㎡당 5653만원에 역대 최고 상한제 분양가였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분양가로 모의 계산해보자.
인근 표준지 공시지가가 올해 12% 오른다. 기본형건축비 상승률을 10%로 보면 분양가가 3.3㎡당 6310만원으로 11.6% 상승한다. ‘국평’(국민주택 평형)으로 불리는 30평대(전용 84㎡) 분양가가 19억원에서 21억원으로 20억원을 넘어선다. 가격이 비싼 지역일수록 분양가에서 차지하는 택지비 비중이 커 건축비보다 택지비 변동 효과가 크다.
올해 서울 분양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분양가가 3.3㎡당 3500만원을 거뜬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나온 택지비 감정평가금액 3.3㎡당 6680만원을 기준으로 추정한 금액이다. 래미안원베일리 택지비 감정가격이 3.3㎡당 1억2700만원이었다.
3.3㎡당 3500만원만 넘으면 둔촌주공 전용 59㎡(26평형) 분양가가 9억원을 초과해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한다. 일반분양 예정물량 4800여가구 중 전용 29~49㎡ 2100여가구만 분양가가 9억원 이하여서 중도금 대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신도시 등 공공택지의 공공분양 사전청약 전용 84㎡ 분양가가 9억원 ‘천장’을 뚫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최고 분양가가 지난해 11월 3차에 나온 과천시 과천주암 8억8460만원이다. 2%만 올라도 9억원이 넘는다.
시세 내려 로또 줄어
분양가가 뛰는 사이 주변 시세는 하락 조짐이다. 국내 최고가 아파트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29㎡가 지난달 51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1월 최고가 60억2000만원보다 10억원가량 낮은 금액이다. 같은 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가 지난해 최고가보다 5000만원 싼 37억5000만원에 지난달 손바뀜을 했다.
둔촌주공 인근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전용 100㎡도 지난해 11월 23억7500만원에 거래돼 두 달 전보다 2억원 가까이 내려갔다.
과천시 원문동 래미안슈르 전용 84㎡ 실거래가가 지난달 16억2000만원이었다. 지난해 최고가가 17억8000만원이었다.
지난해 6월 분양가상한제에 따라 3.3㎡당 5653만원에 분양한 래미안원베일리. 지난 1년 간 오른 땅값·건축비를 반영해 올해 분양가를 다시 산정한다면 3.3㎡당 6300여만원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6월 분양가상한제에 따라 3.3㎡당 5653만원에 분양한 래미안원베일리. 지난 1년 간 오른 땅값·건축비를 반영해 올해 분양가를 다시 산정한다면 3.3㎡당 6300여만원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 지역에선 분양가가 이미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상한제 지역 이외 투기과열지구 등 고분양가관리지역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보증하는 분양가 기준을 지난해 시세의 85~90%까지 올린 영향이다.
지난달 서울 강북구 미아동 북서울자이폴라리스 전용 84㎡가10억원선에 분양했다. 2년 전 같은 미아동에 분양한 꿈의숲한신더휴 전용 84㎡ 분양가가 최고 6억9000만원이었다. 2년 새 분양가가 45% 정도 뛰었다.
미아동 전용 84㎡ 최고 실거래가가 지난해 10월 꿈의숲롯데캐슬 11억7000만원이다.북서울자이폴라리스 분양가와 차이가 2억원 이내다.
이달 청약 접수한 인천시 송도 럭스오션SK뷰 전용 84㎡ 분양가가 9억원이 넘었다. 1년 전인 지난해 초만 해도 8억원을 밑돌았다. 1년 새 1억원 넘게 뛰었다. 2019년 입주한 송도SK뷰 전용 84㎡ 실거래가가 지난해 10억4500만원까지 올라갔다가 지난달 2억원가량 낮은 8억5000만원으로 내려갔다.
고분양가엔 '현금부자' 유리
분양가 상승과 시세 하락으로 로또 기대가 줄면서 청약열기도 식고 있다. 지난해 1월 송도자이크리스탈오션의 경쟁률이 21.9대 1이었지만 이달 럭스오션SK뷰가 5.7대 1이었다. 북서울자이폴라리스 경쟁률이 34. 4대 1로 2020년 이후 브랜드 대단지의 세 자릿수에서 확 떨어졌다.
이월무 미드미네트웍스 대표는 “주변 시세와 가격 차이로 기대할 수 있는 시세차익이 줄어드는 데다 분양가 9억원 초과로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하는 물량이 늘어 청약경쟁률이 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풀 꺾인 로또 기대감에 청약을 안 하기도 하지만 대출 규제에 발목 잡혀 청약하지 못하는 수요자도 적지 않은 셈이다.
올해 분양시장이 더욱 ‘현금부자’ 차지가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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