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준수.’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성실히 수행할 직책으로 국민 앞에 선서하는 가장 중요한 의무다. 헌법은 “국가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쾌적한 주거생활을 위해 대통령이 노력해야 할 1순위가 ‘집값 안정’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격이 대부분을 설명하듯 집값에 주거생활이 드러나 있다.
1986년부터 집값 동향을 조사해온 KB국민은행에 따르면 현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전국 30.6%, 서울 46% 올랐다. 전국은 88년 올림픽을 치른 노태우 정부(43.4%) 이후 가장 많이 올랐고, 서울은 역대 최고 상승률이다.
무주택자가 집을 사기 어려워졌고 부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무주택자는 ‘벼락거지’로 전락한 데 이어 전셋값마저 뛰어 ‘전세난민’ 신세가 됐다. 유주택자 내에서도 지역·주택유형간 가격 상승 격차가 커 역시 양극화가 나타났다.
세금이 집값 오른 만큼보다 훨씬 더 늘었고 다주택자는 ‘세금폭탄’을 토로한다. 누구든 발 뻗고 편히 자기 힘들어졌다.
여야 모두 역대급 물량 공세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된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급 확대가 여야 대선 후보의 부동산 공약 ‘1호’가 됐다. 후보 등록을 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번째 항목으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3번째로 담았다.
이 후보가 ‘311만호 주택공급으로 내집마련·주거안정 실현’, 윤 후보는 ‘수요에 부응하는 주택 250만호 이상 공급 공약’이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모두 대폭적인 용적률 완화를 통해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을 활성화해 도심 주택공급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사진은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공약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후보 간 별 차이가 없다. 뜯어보면 여야나, 좌우, 진보·보수를 떠난 실용주의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되는 셈이다. 큰 틀은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공식으로 통하는 '많이, 싸게, 빨리'다.
일단 물량 공세다. 이 후보가 당초 250만 가구에서 61만 가구 더 늘렸다. 윤 후보는 “필요할 경우 추가적인 공공택지 개발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물량은 대부분 수도권에 배정했다. 이 후보가 258만(83%)이고 서울이 107만 가구(34%)다. 윤 후보는 서울 50만 가구(20%)를 포함해 수도권 130만~150만 가구(52~60%)다. 역대 정부의 주택공급 실적을 보면 수도권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서울이 10% 남짓이었다. 현 정부에서도 수도권 물량이 53%이고 서울이 14%다.
일반가구수 대비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집값 상승을 주도해온 수도권에 집중한 것은 긍정적이다. 2020년 기준으로 주택보급률(일반가구수 대비 주택수 비율)이 수도권 98%, 서울 94.9%로, 지방(108.9%)보다 한참 낮다.
주택 개발 방식은 ‘영끌’이다. 전통적인 대규모 주택공급 방식인 공공택지 개발과 기존 도심 주택의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을 비롯해 용산공원, 지하철 지하화, 국·공유지 자투리땅 등을 총동원한다.
공공택지 확보가 어려운 도심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적극 고밀도 개발에 나선다. 같은 땅에서 지을 수 있는 건축 규모인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을 대폭 높이는 것이다.
이 후보, 윤 후보 모두 현재 300% 한도인 용적률을 500%까지 높이겠다고 입을 모았다. 용적률 상향으로 주택 수를 70%가량 더 늘릴 수 있다.
두 후보는 1990년대 초반 개발된 분당 등 1기 신도시를 대량 주택공급원으로 주목하고 있다. 1기 신도시에 본격화하고 있는 리모델링을 통해서다. 이 후보는 용적률을 500%로 높이기 위해 새로 도입하는 ‘4종 주거지역’을 리모델링에도 적용키로 했다.
윤 후보도 용적률을 올려 10만 가구를 추가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존 주택 수가 30만 가구다.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1기 신도시 개발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로 했다.
민간이 중심의 재건축 등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지원방안도 내놨다. ‘신속협의제’(이 후보), ‘신속 통합 인허가’(윤 후보) 등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재개발에 도입한 ‘신속통합기획’을 본떴다.
‘청년’ 위해 공급 늘리고 가격 낮춰
두 후보는 공통으로 분양가 인하를 약속했다. 이 후보는 분양가상한제에 따라 땅값과 건축비로 분양가를 매기는 공공택지 아파트의 택지비 산정 기준을 감정평가금액에서 조성원가로 바꾼다.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시세를 반영하는 감정평가금액이 공공택지 조성에 들어가는 원가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에 분양가 인하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 과천시 지식정보타운에서 지난해 공공분양 분양 때 택지비 감정평가금액이 조성원가의 3배가 넘는 3.3㎡당 3256만원이었다. 택지비 기준을 조성원가로 바꾸면 분양가가 3.3㎡당 2400만원에서 3.3㎡당 1300만원으로 내려간다.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의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택지에서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윤 후보도 건설원가 수준의 원가주택으로 수도권 20만 가구 등 전국 30만 가구를 공약했다.
두 후보 주택공급의 최대 수혜자로 ‘청년’이 떠오른다. 20~30대를 말한다. 이 후보는 신규 공급 물량의 30%를 청년에 우선 배정하고 용산공원 일대에 지을 10만 가구 전량을 청년용으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청년 원가주택으로 수도권 20만 가구 등 전국 30만 가구를 공급한다. 수도권 14만 가구를 포함해 전국 20만 가구로 계획한 ‘역세권 첫집 주택’도 청년이 주 대상이다.
250만~311만 가구가 일부에서 공급과잉 우려가 나올 정도로 많기는 해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수치가 아니다. 2005년 이후 가장 많은 주택이 들어선 현 정부의 5년간 준공 물량이 261만 가구다.
인허가 기준으로 보면 김영삼 정부(93~97년)와 5년을 채웠을 경우 박근혜 정부(2013~2016년)가 310만 가구를 넘겼다.
뒤늦게 공급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현 정부가 추가로 추진하는 물량이 205만 가구다. 정부는 205만 가구 대책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2030년까지 연평균 56만 가구를 공급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공급 공약이 사업 부지나 인허가 기준이어서 실제 준공으로 이어져 얼마나 시장에 공급될지 불확실하다. 공공택지 개발의 경우 자금이 문제다. 택지비를 감정평가금액에서 조성원가로 낮추면 택지 판매 수입이 그만큼 줄어든다. 공공택지 개발과 적자인 임대주택 공급이 자금난을 겪을 수 있다.
재건축 등 민간의 주택공급 의지도 변수다. 조합 등 민간이 나서지 않으면 사업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후보나 윤 후보 모두 민간 개발을 통해 공급량의 절반 정도를 충당할 예정이다.
부지를 확보하고 인허가를 받더라도 실제 건축 물량은 줄어든다. 2005~2021년 총 891만 가구가 인허가를 받고 82%인 729만 가구가 준공했다.
"과열시키지 않고 물 끓여야"
주택공급 확대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공급 확대가 가격 인하로 이어지는 것은 수요가 늘지 않을 경우다. 아무리 공급이 늘어도 수요가 더 많으면 공급 부족 상태다. 수요에는 구매력을 높이는 유동성, 개발 기대감 등이 작용한다.
공급 확대는 기대감을 높이는 개발 호재를 낳기 때문에 집값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택지 등이 개발되면 지역발전 기대감으로 인근 집값이 들썩인다. 재건축 등에서 용적률 상향은 집을 더 많이 팔 수 있어 사업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두 후보가 모두 재건축 관문인 안전진단 문턱을 낮출 예정이어서 준공 30년이 지난 단지들에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진다. 재건축 규제 완화는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현 정부나 과거 노무현 정부가 공급 효과를 알면서도 규제 완화에 나서지 못한 이유다.
개발이익 사유화도 숙제다. 당첨자가 분양가 인하의 특혜를 독점하는 ‘로또’ 분양과 재건축 등의 개발이익을 말한다.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리모델링에는 개발이익 환수 장치가 거의 없다. 단기 개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도 우려된다.
개발계획이나 규제 완화 발표 뒤 가격 불안에 놀라 포기한 경우가 많다. 이른 가격 안정이 공급 발목을 잡을 수 있다. 2010년대 초반 집값 약세가 이어지자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방안인 보금자리주택을 축소하고 공공택지 개발을 중단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북 주택개발인 뉴타운을 대거 해제한 것은 주택공급 기반을 훼손해 이후 주택공급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대규모 공급에 성공하려면 너무 열이 나지 않게 물을 끓여야 한다. 과열되면 물이 끓기 전에 주전자가 터져버린다.
차기 대통령은 수요 억제에만 치중해 실패한 현 정부의 주택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수요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급확대에만 '올인'해도 주택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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