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원조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꼭대기 층을 차지하고 있는 122평형 수퍼펜트하우스. 건축 규제를 피하기 위해 두 집으로 쪼개 지은 90평형(전용 222㎡)과 32평형(전용 79㎡)을 하나로 합친 합병(전용 301㎡)이 잇따르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다주택자 중과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종부세 폭탄은 피해도 다른 세금 폭탄이 기다리고 있다. 집을 살 때 내는 취득세다. 현 소유자는 상관없지만 이 집을 사는 매수자가 부담할 세금이다.
다주택자 고급주택 취득세 최고 20%
합병 주택의 전용면적이 245㎡ 초과여서 과거 ‘사치성 재산’으로 불린 ‘고급주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취득세가 중과(8%포인트 추가)된다. 일반주택 세율(1~3%)의 최고 3배가 넘는 11%다.
2020년 11월 90평형과 32평 두 채가 총 75억원(각 55억5000만원, 1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9억원 초과 3% 세율을 적용한 취득세가 합쳐서 2억5860만원이다. 합병한 한 채 고급주택이면 9억2250만원이다. 고급주택 여부에 따라 세금이 3배 정도인 7억원가량 차이 난다.
▲ 초고가주택인 서울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청담 29가구 중 27가구가 고급주택 기준에서 살짝 모자라는 전용면적 273.96㎡로 이뤄져 있다. 뉴시스
올해 수퍼펜트하우스 공시가격(예정)이 60억4900만원이다. 이 금액에 해당하는 보유세가 종부세 7100만원, 재산세 2200만원 등 9300만원이다. 10년 치 보유세를 취득세로 내는 셈이다.
신방수 세무사는 “오래 살 경우 최대 80%까지 깎아주는 고령자·장기보유 종부세 감면을 고려하면 취득세가 어마어마한 셈”이라고 말했다.
타워팰리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고급주택 취득세 때문에 팔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보단 종부세 등 보유세 절감 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합병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퍼펜트하우스 소유자 대부분 장기 거주하고 있어 매도는 한참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취득세에도 다주택자 중과가 2020년 도입되면서 고급주택 취득세 부담이 더욱 커졌다.
박정현 세무사는 “다주택자가 고급주택을 취득하면 다주택자 중과세율과 고급주택 중과세율을 합친 세율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2주택자가 고급주택을 사면 20%다. 지방교육세 등 취득세에 자동으로 붙는 부가세를 합치면 22.2%다. 2주택자가 타워팰리스 합병 수퍼펜트하우스를 75억원에 산다면 세금이 16억6500만원이다.
고가주택에 전용 244㎡ 많은 이유
이러다 보니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한 '꼼수' 주택형이 많다. 고급주택 기준(전용 245㎡ 초과)을 살짝 피한 전용 244㎡다. 지난해 공시가격을 산정한 아파트 등 공동주택 가운데 전용 244㎡ 이상이 3806가구이고 이 중 2613가구가 244~245㎡다.
245㎡에 가장 근접한 집이 부산 해운대에 있는 전용 244.997㎡다. 고급주택보다 0.003㎡ 작다.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다.
전용 245㎡를 초과하는 주택은 고급주택 취득세를 각오한 것일까. 고급주택의 다른 기준으로 전용 274㎡가 있다. 복층이면 274㎡까지 고급주택에서 제외된다. 245㎡는 단층 기준이다.
245㎡ 초과 1439가구 중 80%가 넘는 1183가구가 274㎡ 이하다. 여기서도 274㎡와 소수점 아래 2~3자리에서 차이 나는 집들이 적지 않다.
공시가격 1위를 배출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청담은 두 가구를 제외한 27가구 모두 전용 273.96㎡다. 211.94㎡와 62.02㎡ 복층이다.
미드미네트웍스 이월무 대표는 “주택이 커지고 고급스러워지면서 초고가 주택에 전용 244㎡보다 273㎡ 주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구 한남동에 2011년 지은 한남더힐에서 가장 큰 주택형이 전용 244㎡이고 전체 가구수(600가구)의 2%다. 인근에 2019년 들어선 나인원한남의 경우 최대가 전용 273㎡이고 43가구로 전체(341가구)의 10%가 넘는다. 113㎡와 160㎡ 복층형이다. 244㎡는 3가구 중 하나 꼴인 124가구다.
2020년까지 공시가격 1위였던 서초구 서초동 트라움하우스5차 주택형이 전용 273.64㎡다. 특이한 복층 구조로 아래층이 한 평보다 조금 큰 5.5㎡(위층 268.14㎡)다. 274㎡ 이하에서 한 개 층을 최대한 넓힌 복층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층 면적을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준공한 트라움하우스5차 이후 전용 274㎡ 이하 복층도 한 개 층이 245㎡를 초과하면 고급주택으로 본다는 기준이 추가됐다. 트라움하우스 5차를 제외하곤 한개 층이 245㎡를 초과하는 복층이 없다.
트라움하우스5차 전용 273.64㎡가 지난해 9월 185억원에 거래됐다. 취득세가 1주택 기준으로 6억5000만원이다. 집이 0.36㎡ 더 커 274㎡를 초과했다면 고급주택으로 취득세가 22억6000만원이다. 방석 정도 크기 차이로 세금이 16억원 줄었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1위인 더펜트하우스청담 전용 407㎡ 등 전용 274㎡를 초과한 주택은 어차피 고급주택 세금을 예상하고 지었다.
청담동 에테르노청담과 집안에 주차할 수 있는 같은 동 워너청담도 수퍼펜트하우스가 274㎡보다 훨씬 크다. 각 497㎡와 341㎡다. 분양가가 300억원과 35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350억원이면 취득세가 42억7000만원이다.
고급주택 아닌 국내 최대 전용 552㎡
그런데 크다고 다 고급주택이 아니다. 고급주택 요건에 공시가격 9억원 초과가 있다. 원래 크기 기준만 있다가 2008년 종부세 기준과 맞춰 공시가 6억원 초과라는 가격 요건을 추가했다. 2020년 12월 현재 9억원으로 조정됐다.
고급주택 크기에 해당하는 주택이 대개 고가주택이어서 가격 요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집값이 저렴한 지역에선 전용 274㎡가 넘는 집 중에서도 공시가격 9억원에 못 미치는 집들이 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연립주택 등 초미니 공동주택이기도 하다.
지난해 공시가격 기준으로 전용 274㎡ 초과 공동주택 256가구 중 공시가격 9억원 이하가 59가구였다. 경북 안동에 있는 전용 326㎡가 1억2100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올해 예정 공시가가 1억2200만원이다.
공동주택 중 집 크기가 가장 큰 경기도 평택 전용 552㎡도 공시가격이 지난해 6억9200만원, 올해 5억8800만원으로 고급주택이 아니다.
고급주택 과세 형평성 논란
고급주택 과세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고급주택보다 훨씬 비싼 작은 집이 많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싼데 세금이 더 적다. 감사원은 2019년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기준이 불합리하다며 중과기준을 개정할 것을 행정안전부에 통보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시가격 상위 1%는 면적을 제외하고 가격 기준으로만 고급주택으로 분류하는 등 고급주택에 대한 취득세 중과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들과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제도 개선 토론회를 하며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며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
주거용 오피스텔도 주택이 아닌 업무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 적용을 받지 않는다. 취득세가 크기·가격에 상관없이 4.6%다. 지난해 12월 334억4933만원에 거래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내 주거용 오피스텔 ‘시그니엘’ 전용 795㎡ 취득세가 15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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