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정부와 들어오는 정부가 집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안겨줬다. 집을 한 채 가진 1주택자는 임기 만료를 앞둔 현 정부로부터, 2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는 약 한 달 뒤 시작하는 새 정부로부터다. 주택 세금 감면 선물이다.
전국(2020년 기준 2090만 가구) 10가구 중 6가구(1주택 4가구, 다주택 2가구)가 대상이다. 현 정부에서 ‘폭탄’으로 표현되며 급등한 세금에 짓눌린 상황에서 이보다 더 기쁜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보유세·양도세 모두 이례적 완화
현 정부는 지난달 2022년도 공동주택(아파트·연립주택·다세대주택) 공시가격안 열람을 시작하며 올해 1주택자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올해가 아닌 지난해 공시가격으로 산정해 부과하겠다고 했다. 공시가격은 정부가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시세 등을 고려해 모든 주택에 매기는 것으로, 보유세 과세 등의 기준가격으로 쓰인다.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이 단독주택(414만 가구) 7%, 공동주택(1454만 가구) 17%다. 과표(세금 계산 기준 금액)가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되면서 세금이 올해 공시가 상승률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세금 인하가 반갑긴 해도 그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담에 비하면 만족스럽진 않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5년간 공시가격이 집값 상승률의 2배 정도로 뛰었고 보유세는 공시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양도세 다주택자 중과를 1년간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최대한 서둘러 당초 이달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현 정부가 관련 법령 개정을 거부하는 바람에 새 정부가 출범하는 5월 11일로 시행 시기를 늦췄다.
▲ 한동안 잠잠하던 집값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꿈틀대고 있다. 가격 상승 기대감이 높아지는 때에 양도세 다주택자 중과 한시적 배제가 매물 유도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본 강남권 아파트 단지 모습이다. 연합뉴스
다주택자 중과는 다주택자가 서울 등 전국 112곳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팔 때 일반세율(6~45%)에 가산세율(2주택자 20%포인트, 3주택 이상 30%포인트)을 추가한다. 중과 적용을 받지 않으면 세율이 내려가는 데다 3년 이상 보유에 주어지는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6~30%)이 되살아나 세금이 상당히 줄어든다.
현 정부와 새 정부의 선물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세금 감면이 증폭된다. 다주택자가 남는 집을 팔고 1주택자가 되면 양도세·보유세 모두 대폭 낮아지기 때문이다. 세금이 억대로 줄어드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올해 공시가격 기준으로 27억여원의 서울 강남 아파트에 살면서 7억원대 강북 아파트를 가진 다주택자 사례를 김종필 세무사가 모의 계산해봤다. 두 채를 유지하면 보유세가 올해 1억원이다. 강북 아파트를 팔면 2100만원으로 8000만원 줄어든다.
강북 아파트 양도세를 보자. 5년 전 4억5000만원에 샀고 현 시세 11억원에 팔면 중과일 경우 세금이 4억원인데 중과가 배제되면 2억3000만원으로 2억원 가까이 감소한다. 2주택자에서 1주택자로 되면서 얻는 절세 효과가 2억5000만원 정도다.
김종필 세무사는 “보유세와 양도세를 한꺼번에 이렇게 큰 폭으로 완화한 적이 없었다”며 “다주택자에게 여간 솔깃한 제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집값 많이 오를수록 세금 더 줄어
하지만 과세 형평성과 기대 효과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현 정부의 보유세 부담 완화가 집값이 많이 오른 고가주택에 더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만큼 공시가격이 내려가면서 세금이 줄기 때문에 지난해 대비 공시가격 상승률이 높은 집일수록 세금 인하 효과가 더 크다.
올해 수도권(서울 14.2%, 인천 29.3%, 경기 23.2%) 공시가격이 지방보다 더 올랐고, 서울에서 집값이 비싼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19%)·성동구(16.3%) 등이 평균 이상 상승률을 나타냈다.
올해 공시가격이 더 높아도 지난해 공시가격이 낮았으면 세금이 더 적은 가격·세금의 역전 현상도 나타난다. 과거 노무현 정부를 이은 이명박 정부도 공시가격이 많이 오른 2008년도 보유세를 줄였다.
2008년 공시가격을 그대로 쓰되 세금 계산에 적용하는 비율을 2007년 수준으로 낮췄다. 2008년 공시가격 상승률이나 2007년 공시가격에 상관없이 세금이 2008년 기준 집값에서 같은 비율로 줄어들었다.
인수위 경제1분과 최상목 간사는 지난달 31일 양도세 중과 1년 배제를 발표하며 “종부세 부담이 과도한 다주택자가 보유세 과세기준일인 6월 1일 전에 주택을 매도할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주고 매물 출회를 유도해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중과 세율이 최고 75%에 달해 세금 무서워서 집 못 팔겠다는 다주택자에게 잠시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남은 시간 많지 않은 것도 맹점
다주택자가 쉽게 팔까. 우선 시간이 촉박하다. 올해 세금을 줄이려면 5월 31일까지 잔금을 치르거나 소유권 이전 등기 신청이 이뤄져야 한다. 당장 매물로 내놔도 2개월 안에 끝내기가 빠듯하다. 급하게 파느라 가격을 시세보다 낮추면 절세 효과를 못 볼 수 있다. 매도 기준을 계약으로 변경하든, 올해 내 매도를 소급해 적용하든 시간을 더 줘야 한다.
시간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다주택자가 집을 파는 것은 앞으로 집값 전망에 달렸다. 이번에 팔아 줄어드는 세금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 팔지 않고 보유하는 게 유리하다. 이우진 세무사는 “각종 상황을 저울질하고 중장기적으로 따져서 버티면 손해라는 판단이 서야 처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시장 상황이 매도가 꼭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 지난해 말 이후 관망세와 거래 절벽 속에 기죽어 있던 집값이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강남3구, 용산 등부터 상승 폭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개발 공약 기대감이 높아지면서다.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집값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윤 당선인은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을 현행 300%에서 500%로 높이겠다고 했다. 용적률 증가분의 절반을 공공이 환수하더라도 용적률 100%만큼 집을 더 지어 팔 수 있다. 지난해 6월 분양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에 용적률 500%를 적용하면 상한제 분양가 3.3㎡당 5653만원을 그대로 받더라도 조합원당 7억원씩 추가 이익을 본다.
기준 완화 등으로 안전진단 문턱이 낮아지면 낡은 아파트를 손쉽게 재건축할 수 있다. 4000가구가 넘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 등이 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지은 지 30년 이상 지난 아파트의 안전진단 면제가 공약에 들어있는데 아파트 40% 정도가 1990년 이전 준공했다. 분당 등 1기 신도시가 1990년대 초반 입주해 조만간 준공 30년을 맞는다.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확충 등 지역 개발 호재까지 더해져 곳곳에 개발 붐이 일어날 전망이다. 대출 규제가 풀리면 구매력이 좋아져 주택 수요가 늘어나는 효과를 낸다. 개발 기대감에 오르는 호가가 대출 뒷받침을 받아 가격 상승세로 굳어진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개발은 곳곳에 기름을 뿌리는 셈”이라며 “기대감에 불이 붙으면 금리 상승 등 악재에 개의치 않고 집값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주택 등록, 증여 택할 수도
다주택자는 중과를 피할 생각이더라도 이번 한시적 배제 동안 서두를 필요가 없다. 1년 중과 배제가 끝난 뒤 중장기적으로 다주택자 중과가 폐지되거나 완화된다면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기 때문이다. 당선인이 공약에서 다주택자 중과 폐지를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폐지’ 쪽으로 방향을 정한 셈이다. 폐지하지 않고 세율 인하 등으로 완화하더라도 1주택자와 격차가 많이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시적 중과 배제가 그나마 효과를 보려면 '마지막 기회'여야 하는데 앞으로 기회가 더 있다면 효과가 없다. 기다리는 동안 임대주택으로 피해도 된다. 새 정부는 현 정부에서 대폭 축소한 임대주택사업자 제도를 다시 활성화할 전망이다.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보유세 등 세제 혜택이 주어질 것이다. 세금 부담을 줄여 버틸 수 있다.
중과 적용을 받지 않기 위해 주택 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양도세 중과 유예 동안 증여를 고민할 수 있다. 임대료 등 부채를 함께 넘기는 부담부증여를 하면 채무 증여에 대한 양도세도 중과 배제 적용을 받아 증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사실상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1호인 양도세 중과 한시적 배제에 이렇듯 허점이 많다. 2년 이내 단기간에 되팔거나 현 정부에서 집을 추가로 매수한 다주택자가 이번 중과 배제를 이용한다면 투기에 퇴로를 열어줬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섣부른 '선심성 부자 감세' 비판도 나온다.
규제는 묶기보다 풀기가 더 어렵다. 쾌도난마식으로 단칼에 자르면 예상치 못한 거센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하나하나 꼼꼼히 풀어야 한다. 무턱대고 풀기 시작하면 다른 곳에서 막히기 때문에 계획도 필요하다.
역효과를 내지 않게 분명한 규제 완화 청사진과 로드맵이 시급하다. 시장에 만연한 기대감의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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