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부동산 시장에서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매매 사례가 화재였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대장주로 꼽히는 이 단지에서 이전 거래가 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신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일보 취재 결과 이전 거래의 실거래가 신고가 늦어지면서 나타난 '착시현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차 전용면적 157.36㎡(51평형)가 지난달 9일 55억원(5층)에 거래됐다. 이는 5월 19일 같은 면적(압구정 현대 6차)의 역대 최고 매매가(58억원·4층)보다 3억원 낮은 금액이다. 국토부에 신고된 거래 계약일을 기준으로 보면 약 3주 만에 3억원이 하락한 것이다. 그러나 55억원 거래가 58억원 거래보다 먼저 진행됐다.
지난달 9일 55억원 거래 매도인의 지인 A씨는 중앙일보에 "시점상 55억원 가계약금이 먼저 입금됐고, 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진 뒤 58억원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55억원 거래의 경우 토지거래허가가 늦어지면서 실제 계약일이 58억원 거래보다 뒤로 밀렸다"고 말했다.
강남구 압구정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매매 시 강남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압구정동에서 영업하는 B공인중개사도 "55억원 계약이 먼저 진행됐고, 그 뒤 58억원 거래가 이뤄졌다"고 했다. 결국 이 아파트 해당 면적의 매매 가격은 하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한 것이다. 이 평형은 2월 50억원(11층)에 거래된 뒤 55억원, 58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한 셈이다.
▲ 서울의 대표적인 재건축 대상 단지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강북에서 바라본 모습. 연합뉴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실거래가 하락 여부가 관심을 끈 건 강남구가 최근 서울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의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금리 인상에 따른 거래절벽 장기화로 매수세가 약해지면서 서울 아파트값이 6주 연속 하락했고, 낙폭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똘똘한 한 채'로 주목받으며 최고가 거래가 이어지던 강남 아파트마저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서울 주변 지역의 낙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최근 거래에서도 상승행진을 이어갔지만 이런 상승세가 지속 될지에 대해선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전망이 엇갈린다.
C공인중개사는 "올해 들어서도 최고가 거래가 이어졌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매도 호가를 좀처럼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며 "거래 신고는 안 됐지만 최근 한강변 11동(현대 1차) 전용 196㎡(64평형)의 경우 1월에 거래된 최고가인 80억원에 새롭게 거래가 됐다. 당분간 최고가 거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30년 넘게 압구정동에서 영업한 D공인중개사는 "가격이 계속 오르기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며 "실거래가가 58억원에서 55억원으로 떨어졌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거래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 거래된 최고가보다 가격을 조금 낮춘 매물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값은 4주 연속 보합을 유지하다가 지난달 마지막 주(지난 4일 조사 기준)에 0.01% 떨어지며 4개월 만에 하락으로 돌아섰다. 압구정동이 아닌 강남구 내 다른 단지에서는 하락 거래가 나타나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 청담자이 전용 89㎡는 지난해 12월 36억2500만원(34층)에 거래됐지만, 지난달 7500만원 떨어진 35억5000만원(27층)에 팔렸다. 또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전용 164㎡는 지난달 6일 43억5000만원(46층)에 거래됐지만 3주 뒤인 지난달 29일 1억원 낮은 42억5000만원(47층)에 매매가 이뤄졌다.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59㎡는 지난해 8월 기록한 최고가 23억원(7층)에 비해 1억6000만원 낮은 21억4000만원(5층)에 지난달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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