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이후 또다시 반지하 주택이 화제다. 지난달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면서다. 매번 침수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반지하 문제가 반짝 거론됐다가 잊혔지만, 이번에는 파급력이 남달랐다.
참사 직후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 퇴출을 선언하면서다. 지난달 8일 신림동 침수 현장을 살핀 오세훈 서울 시장은 “지하ㆍ반지하의 주거 목적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건축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장의 선언에 건축법을 주관하는 행정부처 수장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즉각 반박했다. “반지하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반지하를 없애면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지하ㆍ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이다. 서울에만 이중 절반이 넘는 20만849가구(61.4%)가 몰려 있다. 결국 서울시의 반지하 퇴출 선언은 취약계층의 주거권 논쟁으로 번졌다.
건축업계는 서울시의 반지하 퇴출 선언이 생뚱맞다는 분위기다. 20여년 전 건축법이 바뀌면서 시장에서는 반지하 주택을 신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퇴출된 셈이다.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경사지여서 반지하를 지상층처럼 쓸 수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반지하를 안 만드는지 오래됐고, 오 시장의 퇴출 선언은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인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00년 이후 반지하 사라진 이유
서울 신림동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모습. 집집마다 주차금지 메모가 붙어 있다. 한은화 기자
서울 신림동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모습. 집집마다 주차금지 메모가 붙어 있다. 한은화 기자
주택 시장에서 사실상 반지하를 퇴출시킨 것은 자동차다. 2000년부터 주차장 설치 기준이 가구당 0.7대에서 1대 이상으로 강화되면서 다가구ㆍ다세대 건물에 비상이 걸렸다. 집 지을 면적을 줄여 주차장을 더 확보해야 하니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 지난 8월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왼쪽)의 모습. 한은화 기자
이에 정부는 건축법을 개정해 1층에 주차장을 두면 연면적에서 빼주고 한 층을 더 올려 지을 수 있게 했다. 이른바 필로티 구조다.
이 필로티 공법으로 건물을 지어 1층에 주차장을 두면 1층의 바닥면적은 건축면적에 포함되지 않았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1층에 주차장을 만들면 층수를 더 높일 수 있으니, 굳이 비싼 돈 들여 지하를 팔 이유가 사라졌다.
층수 관련 건축법 시행령 개정도 동시에 이뤄졌다. 『동네에 답이 있다』의 저자 박기범 국토부 건축문화경관과장은 “다가구ㆍ다세대 주택과 같은 중간주택에 대한 층수 규제가 ‘층수’에서 ‘개층’으로 변경된 것도 지하주거가 사라지는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즉 다세대 주택이라면 이전에는 ‘4층 이하’로 지을 수 있던 것을 ‘4개 층 이하’로 짓도록 바뀌었다. 이전에만 해도 지하층은 층수 산정에서 제외됐지만, 바뀐 법에 따라 포함되게 된 것이다.
박 과장은 “지하가 층수로 산정되는데 지상층 대신 지하를 굳이 만들 이유가 없다”며 “2000년 이후부터 평지에서 주택을 지을 때 사실상 반지하가 불허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경사지에 있어 반지하를 지상층처럼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서야 반지하를 건축하지 않는 추세다. 지금 남아 있는 반지하가 있는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은 주로 1980~90년대에 지어졌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지난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숨진 신림동 주택도 1997년 착공해 1999년 6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주차장법이 강화되기 직전에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총 17세대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다.
그런데 맞은편에 있는 다세대 주택은 필로티 구조로 지어졌다. 총 5층 규모로 1층이 주차장이다. 반지하는 당연히 없다. 건축물대장을 살펴보니 2003년 6월에 착공해 그해 12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한 동네에서 마주하고 지어진 두 건물은 주차장을 둘러싼 건축법이 바뀌면서 시장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2000년을 기점으로 다세대주택이 주차장 확보를 위해 필로티 구조를 택하면서 반지하 집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에 거주하는 가구 수는 2005년 58만7000가구에서 2010년 51만8000가구, 2015년 36만4000가구, 2020년 32만7000가구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제대로 실태조사도 안 한 서울시
주차장 문제를 제외하고도 반지하·지하 주택을 건축하기 어렵게 관련 법은 계속 강화됐다. 30세대 이상 규모로 주택법상 사업승인을 받아야 하는 주택은 지하에 주거를 넣지 못한다. 경사지에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띄우거나 자연석을 쌓는 경우도 있는데 장식용이 아니라, 지하에 주거공간을 넣지 못한 결과물이다.
또 2018년부터 시행된 지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하 10m 이상 굴토 시에는 지하 안전영향평가를 받아야 해서 지하 공사 난도가 대폭 상승했다.
이광환 해안건축사사무소 소장(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은 “단지형으로 짓는 다세대의 경우 지하를 10m 이상 파는 경우도 있는데 지하 안전영향평가를 받게 한 이후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면서 최근 들어 지하 계획을 하지 않는 추세”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침수 사태도 영향을 줬다. 2010년 추석 명절 때 서울에 쏟아진 폭우로 1만2518동이 침수됐다. 상당수가 반지하 주택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정부와 협의해 침수지역의 반지하 주택 건축허가제한을 추진했고, 2012년 상습침수구역 내 지하층은 심의를 거쳐 건축을 못하도록 건축법이 개정됐다.
그리고 올해 일어난 침수 사태로 서울시는 “앞으로 상승 침수 또는 침수 우려 구역을 불문하고 지하층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0년 전 침수 때와 비슷한 제한 조치를 반복해 발표하는 이유로 그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이 계속 지어진 점을 꼽았다.
서울시는 “2012년 건축법 개정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이 약 4만호 건설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4만호 중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이 얼마인지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이 4만호는 국토부가 운영하는 건축행정시스템(세움터) 상의 지하 주거용 공간의 통계로, 창고나 보일러실도 포함된 수치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법 개정 이후 지어진 4만호의 지하 주거용 공간에 실제로 사람이 사는지 아닌지는 조사가 필요하다”며 “자치구가 인허가를 냈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지하, 왜 만들었나
반지하 주택은 사실상 정부가 장려한 집이다. 1962년 건축법이 처음 제정됐을 때만 해도 지하에 거실을 설치하지 못하게 명시했다. 72년에 200㎡ 이상 규모의 집을 지을 때 지하 대피소를 만들게 강제했다. 대피소가 사람 사는 집으로 바뀐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도시로 사람이 몰렸는데 집이 부족했다.
양질의 주택을 공급할 여력이 없었던 정부는 1982년에 반지하 주택을 양성화시켰다. 이어 85년에 다세대 주택이 도입됐고, ‘주택 쪼개기’라며 당초 금지됐던 다가구 주택도 1990년부터 양성화됐다.
이윽고 반지하를 가진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이 2000년 주차장법이 강화되기 전까지 마구 지어졌다. 반지하 주택의 96%가 수도권에 집중된 것을 보면 도시화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지하·반지하 주택 전면 금지에 앞서, 기존에 있던 주택의 실태조사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유경 건축공간연구원 건축정책본부 연구위원은 “같은 지자체라도 동네마다 지형이 다르고 침수 위험도도 다른 만큼 건축법을 개정해 전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침수 위험도 관련 객관적인 데이터를 구축해 이를 토대로 위험 지역의 반지하는 불허하고, 안전한 지역은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현재 문제가 되는 대다수의 반지하 주택이 지은 지 30~40년 된 노후 주택으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반지하 주택에 취약계층이 거주하는 만큼 정부가 그동안 등한시했던 양질의 공공임대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반지하 주택 인허가 금지라는 ‘책상머리 정책’이 아니라, 정부가 주택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앞으로의 반지하 참사를 막는 가장 유효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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