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래가 억대 하락이 잇따르는 가운데 서울 강남 '로또' 아파트에서 9개월 새 15억원가량 떨어지며 반 토막 나 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업계는 시세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거래로 보지만 거래 배경을 둘러싸고 의문에 휩싸였다.
‘개도 포기한’ 동네에서 ‘개도 포르쉐를 타는’ 동네로 상전벽해의 탈바꿈을 한 강남구 개포지구 내 디에이치자이개포에서다. 개포·일원동 일대 낡은 저층 아파트를 재건축한 단지 중 ‘최신상’으로 지난해 7월 준공했다.
2018년 3월 분양 때 '로또'로 불리며 청약경쟁이 치열했다. 일반분양 1순위 신청자가 3만1000여명으로 당시까지 2015년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3만4000여명) 이후 가장 많았다. 물량이 1200여 가구로 강남 재건축 단지 중 역대 가장 많아 경쟁률은 25대 1이었다.
지난해 8월 계약 취소분을 최초 분양가대로 분양한 무순위 청약 때는 5가구 모집에 25만명이 몰려 최고 12만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작년 7월 준공 후 실거래가 신고 6건
14억원선에 분양한 84㎡(이하 전용면적) 몸값이 입주 후 30억 정도로 치솟았다. 입주 후 지금까지 총 6건의 실거래가가 신고됐다. 첫 실거래가가 지난해 11월 29억~31억원이었다. 당시 인근에서 가장 비싼 거래가가 32억원(래미안블레스티지, 10월)이다.
12월 24억원으로 뚝 떨어지더니 1월엔 21억원 정도로 더 내려갔다. 그러다 지난달 말 신고된 가격이 15억원이다. 15억원은 분양가 수준으로 시세의 70~80%로 산정된 올해 공시가격(22억원 정도)보다 훨씬 낮고 전셋값(최고 17억원)보다 싼 금액이다.
▲ 고가 새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한 서울 강남 개포지구에서 최근인 지난해 7월 준공한 디에이치자이개포. 몸값이 2018년 분양가의 2배 정도로 치솟았다.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지난해 말을 지나면서 시세가 좀 내려갔다고 보더라도 매물 호가가 29억원 이상이다”고 말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15억원 거래가 실화냐는 문의 전화가 많은데 이 거래뿐 아니라 앞선 24억원 이하 거래 모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며 “어떤 사정이 있는 특별한 거래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개업소들은 가족·친척 간의 거래나 일부만 매도한 지분 거래 가능성을 제기하고 채무 대신 아파트를 싸게 넘긴 것으로 보기도 한다.
디에이치자이개포 당첨자 명단과 법원 등기부등본을 조회한 결과 24억원 이하 거래 3건 매도인은 모두 이 아파트를 직접 분양받아 입주한 사람들로 확인됐다. 85㎡ 이하가 100%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분양했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집을 갖고 있지 않은 1주택자다. 적어도 양도세 중과 한시적 배제를 이용해 매도한 다주택자가 아니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과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4억원 거래가 일반적인 매매거래가 아니다. 매매예약이다. 매도인·매수인 간 직접 거래한 직거래가 아니고 중개업소를 통한 중개거래인 점으로 미뤄 가족 등 특수관계인은 아닌 것 같다.
매매예약 매수인 주소가 이 아파트인 것으로 볼 때 매매예약하고 들어왔거나 세입자가 매매예약했을 수 있다.
31억 계약했다가 21억에 매도
21억원 거래에는 분양권 전매와 법적 다툼이 얽혀 있다. 분양받은 주인 A씨가 입주한 뒤 지난해 11월 B씨와 31억원에 팔기로 매매예약했다. 그런데 C씨가 나타나 A씨와의 2020년 1월 분양권 거래를 내세우며 소송을 거쳐 A씨와 B씨 간 매매예약을 무효로 하고 본인이 A씨와 21억원에 매매를 진행했다. 31억원 실거래가 신고는 계약 해제로 취소됐다.
21억원은 2020년 1월 분양권 거래 때 정한 금액으로 추정된다. 당시 실제 분양권 거래가격이 2019년 9월 22억원대, 2020년 3월 23억원대였다.
그런데 A씨와 C씨간 분양권 전매가 적법한 것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디에이치자이개포가 입주 때까지 분양권 전매 금지 적용을 받았기 때문이다. 생업 등 일부 불가피한 사정의 경우 전매가 허용되지만 실거래가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2020년 1월 분양권 거래 신고가 없다. 적법한 분양권 전매라면 분양권 매수자가 잔금을 치르고 사업자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는데 등기부등본을 보면 사업자에게서 소유권을 넘겨받은 사람은 A씨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권 전매 제한 예외 사유가 안 되는데 편법으로 입주 후 매매 거래를 하기로 뒷거래하고 분양권 전매 계약을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이는 불법 전매에 해당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매제한 기간 내 개인 간 공증이나 가계약 혹은 매매예약 모두 전매제한 제도를 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불법 전매 여부가 쟁점이 아니어서 법원이 A씨와 C씨 간 분양권 계약 사실만 확인하고 C씨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31억원에 팔 수 있었던 집을 10억원이나 싸게 넘긴 셈이다. 중개업소를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당사자 간 직거래했다.
A씨는 양도세 폭탄도 맞는다. 양도차익이 6억원이지만 1년 이내 단기양도여서 세율 70%를 적용받아 양도세가 4억5000만원 정도다. 입주할 때 낸 취득세 5000만원을 합치면 5억원이 세금으로 나간다. 손에 쥐는 돈이 1억원 정도다.
실거래가 15억원은 매도인이 본전에 넘긴 금액이다. 들어간 돈이 분양가 14억4000여만원에 취득세 5000만원을 합쳐 거의 15억원이다. 중개업소들이 많이 추정하는 이유가 지분 거래다. 아파트 지분 절반만 판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거래도 직거래여서 중개업소들에 알려진 거래 내용이 없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분 거래가 아니다. 분양가가 매도인이 70대 여성이고 매수인이 40대 여성이다. 성과 주소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어머니가 딸에게 증여세와 양도세를 모두 피하기 위해 증여하지 않고 분양가 수준에서 판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특수관계인 간 저가 거래에 양도세·증여세
이 아파트를 증여한다면 시세를 기준으로 증여세가 오는데, 시세를 30억원으로 보면 세금이 10억원 정도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가족 등 특수관계인 간에 시세보다 3억원 이상 싸게 거래하면 양도세와 증여세가 추가된다. 매매가격이 아닌 시세를 기준으로 양도세를 부과하고 시세보다 낮춘 15억원에서 3억원을 뺀 12억원을 증여금액으로 보고 증여세를 매긴다. 양도세와 증여세를 합친 금액이 13억원 정도다.
결국 반값 매도로 아낄 수 있는 세금이 3억원가량이다.
김종필 세무사는 “특수관계인에게 시세보다 싸게 저가 양도를 하더라도 2년 거주 요건을 채우면 비과세 혜택을 받아 양도세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에이치자이개포 실거래가는 직거래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저가 거래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실거래가 29억원이 직거래 가격인데 정상적인 시세로 볼 수 있는 금액이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채권최고액 28억원에 근저당을 설정한 채권자가 매매예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매예약되면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지난해 7월 준공 이후 1900여가구에서 신고된 실거래가 5건(계약 해제 제외) 중 정상적인 거래는 지난해 11월 29억5000만원 한 건인 셈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실거래가가 시세에 선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거래가 아닌 경우는 시세를 왜곡하기도 한다”며 “사연이 많은 실거래가의 착시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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