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84㎡(이하 전용면적)가 지난달 초 19억5000만원(12층)에 거래됐다. 지난해 10월 27억원에 팔렸던 이 아파트는 1년 만에 7억원 넘게 떨어져 공시가격 최고가(19억8500만원)보다 3000만원 이상 낮아졌다.
공시가격은 같은 단지의 아파트라도 층이나 동의 위치, 향에 따라 다른데, 해당 면적의 올해 공시가격은 17억~19억원대다.
인근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20억원 밑으로 급매물이 나오지만, 사람들이 집값이 더 빠질 것으로 보고 있어 거래를 성사시키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 여파로 집값이 하락하면서 공시가격 아래로 가격이 내려간 아파트가 잇따른다. 공시가격은 정부가 과세 등을 위해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감정 평가를 거쳐 정하는 평가가격이다. 부동산 보유세 등 60여개 행정제도의 기준 지표로 활용된다.
통상 시세의 70~80% 선에서 책정됐는데,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대폭 오르기 시작했다.
▲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잠실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결국 집값 하락기를 맞아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집값 하락 폭이 컸던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화성·수원, 인천 송도 등에서 두드러진다.
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84㎡는 지난달 말 17억9500만원에 팔렸다. 지난해 11월 최고가(24억8000만원)에서 7억원 가까이 내리며 공시가격 최고가(18억2600만원) 밑에서 손바뀜됐다.
경기·인천에서도 공시가격을 밑도는 아파트가 속출했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더샵센트럴시티 84㎡는 지난달 6억4000만원에 팔렸다. 공시가격 최고가(7억1200만원)보다 7000만원 넘게 싸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8월 11억5000만원으로 최고가를 썼지만, 1년여 만에 44%가량 급락했다.
수원시 영통구 힐스테이트영통 62㎡는 지난달 4억5700만원에 거래돼 공시가격(최고 5억2800만원) 아래로 하락했고, 화성 동탄역시범더샵센트럴시티 84㎡도 공시가격(최고 10억100만원)보다 싼 10억원에 팔렸다.
전문가 사이에선 ‘예고된 현상’이란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 공시가는 매년 말 시세를 기준으로 산출한다. 문재인 정부에선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시세의 9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특히 15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는 공시가 현실화율을 올해 81.2%까지 높였고, 2025년 90%가 되는 시나리오였다.
문제는 올해처럼 집값이 꺾일 때다. 집값이 고점을 찍은 지난해 말 시세를 기준으로 공시가를 매기다 보니 올해 공시가는 지난해보다 뛰지만, 금리 인상 여파에 시세는 오히려 그보다 내려가게 된 것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90%로 높아져선 안 되는 이유”라며 “주택 소유자들은 재산세 등 세금 부담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역전 사례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이자 부담에 집을 사려는 수요가 줄고, 거래가 끊긴 시장에 급매물이 쌓이면서 집값 하락세를 부채질하는 상황이다.
다만 내년엔 공시가격도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교통부가 내년에 적용하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 공동주택의 경우 올해처럼 시세의 평균 71.5%로 책정한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4일 제안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1년 유예’ 안을 국토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내년 공시가격이 올해보다는 내려가겠지만, 집값 하락분보단 덜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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