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발 침체의 먹구름이 금융권으로 몰려가고 있다. 건설 공사에 차질이 생기자 당장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공사 자금을 지원한 금융권이 떨고 있다. 저축은행과 증권 등 비은행권의 PF의 연체율이 높아지며 시장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전체 금융권(은행·보험·여전·저축은행·증권 등)의 PF 잔액은 112조2000억원이다. 이 중 여전사나 저축은행, 증권 등 비은행권의 PF(83조9000억원)가 전체 75% 정도를 차지한다.
문제는 비은행권 PF의 높아지는 연체율이다. 7일 금융감독원의 ‘올 상반기 부동산 업종별 신용공여 한도 준수 및 자산 건전성 분류 현황’에 따르면 이미 79개 저축은행 중 일부의 PF(부동산·건설업) 연체율이 10~20%대로 올라섰다.
부산 일대의 한 저축은행 연체율(대출 잔액 중 1개월 이상 미상환된 잔여원금 비중)은 29% 수준이다. 287억원 중 연체액은 85억원이다. 증권사의 PF대출 연체율도 2019년 1.9%에서 올해 3월 말 4.7%로 올랐다.
PF는 근본적으로 위험성이 큰 구조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선분양 후시공’ 방식이 일반적이다. 부동산을 짓기 전에 먼저 팔지만, 부동산을 지을 땅을 살 자금과 사업 진행비가 필요하다.
▲ 수도권의 한 공사 현장. 중앙포토
사업자인 디벨로퍼(시행사)는 자기 자본이 충분하지 않아도 PF를 활용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PF 여부에 따라 사업 진행 여부가 결정된다. PF가 부동산 사업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다.
금융권 입장에서 PF는 매력적이다. 위험성이 큰 만큼 수입이 짭짤해서다. 우선 대출금이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데다 이자도 연 10%를 웃돈다. 해당 부동산이 잘 팔려서 ‘대박’이 나면 대출 조건에 따라 30%가 넘는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부동산 호황기 기준이다. 개인 여신이 쉽지 않은 비은행권의 경우 사업 다각화 방안이 마땅찮다 보니 PF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금은 쌓여 가는데 굴릴 곳이 마땅찮은 데다 고객 돈인 만큼 주식 등에 투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그나마 우량 PF가 투자하기도 쉽고 수익도 높아서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요즘 같은 부동산 불황기다. PF의 매력이 위험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PF를 낀 부동산 사업은 '프로젝트 끝'으로 불리는 완공까지 대개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린다. 이 기간에 PF를 내준 금융권도 위험성을 안고 가야 한다.
완공 후에도 불황이 이어져 해당 부동산이 주인을 찾지 못하면 이자는커녕 원금 회수도 어려울 수 있다.
최근의 상황은 좋지 않다. 급작스러운 금리 인상 여파로 공사가 중단된 건설 현장이 속속 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가 늘어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건설사(시행?시공사)가 흔들리고 있어서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충북 충주에서 진행 중인 아파트 공사가 최근 중단됐다. 이 아파트를 짓고 있는 우석건설이 지난달 말 납부기한 내 어음 결제를 하지 못해 1차 부도가 나서다. 이 아파트의 시행사인 하나자산신탁이 다른 시공사를 찾고 있지만, 한동안 공사 중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 고양시 지축지구에서 들어서는 공공분양 아파트의 공사도 최근 중단됐다.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사 대금을 지급했지만, 이 아파트를 공사를 맡은 대우조선해양?우암?대흥종합건설 컨소시엄 중 대우조선해양건설(지분 70%)이 유동성 위기를 맞아서다.
지난 3월 완공했어야 할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100여 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도 공사가 중단됐다. 마무리 공사만 진행하면 되지만, 공사비를 마련하지 못해 방치된 상황이다.
이들 건설 현장의 공사가 멈춘 이유는 건설사의 자금 마련이 어려워져서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건설사의 자금조달지수는 40.2로 전달(52.7)보다 12.5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1월(77.6)의 절반 수준이다.
주요 자금 마련 수단인 채권시장이 얼어붙은 영향도 크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각각 연 4.45%, 5.528%였던 CP(91일), 회사채 AA-(무보증 3년) 금리는 이달 1일 기준 연 4.67%, 5.486%로 더 올랐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진행 중인 아파트 공사 현장 중에 부실이 있다고 판단된 사업장(관찰ㆍ주의ㆍ관리ㆍ경고 사업장)은 1년 만에 두 배 넘게 늘면서 80곳에 이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부도가 난 건설사는 지난해 12곳에서 올 상반기에만 8곳으로 늘었다.
PF를 받은 건설사가 쓰러지면 돈을 빌려준 금융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의 PF 위험 부담은 더 커졌다.
당시 시공사가 줄줄이 워크아웃을 겪으며 신용도가 하락하자 증권사?저축은행 등이 함께 신용 공여하는 관행이 생겼다. 2013년 10조 원대에 불과했던 증권사의 PF 채무보증액은 올해 3월 말 24조6675억원으로 늘었다.
정부도 PF 부실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50조원+α’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5대 금융 지주와 실무 협의를 통해 95조원을 투입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지가 채권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임채우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PF는 만기까지 기간이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이기 때문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어도 ‘시한폭탄’을 떠안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금줄이 막힌 건설사가 늘수록 PF 부실 위험이 커지고 금융권의 타격도 커지는 만큼 부동산 사업 진행을 위한 정책 지원이나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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