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정모(38)씨는 다음 달 예정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포레온) 청약을 놓고 고민 중이다. 요즘 집값 하락세를 고려할 때 아파트 분양가가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씨는 “인근 고덕동이나 송파구의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아파트 시세와 비교해도 분양가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모처럼 새 아파트 분양 물량이 쏟아지지만, 분양가는 청약 대기자의 기대에 못 미친다. 가파른 집값 하락세로 주변 시세와 차이가 적은 분양 단지가 잇따르면서다. 전문가들은 “분양가가 높다는 인식이 청약 성적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일 건설·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연내 분양 예정인 서울 아파트 가운데 4개 단지, 7016가구(일반분양분)가 분양가를 확정했다. 최대 관심 단지는 다음 달 분양 예정인 둔촌주공아파트다.
일반분양가는 3.3㎡당 평균 3829만원으로 책정됐다. 2019년 재건축 조합이 요구했다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분양보증’을 거부당한 분양가인 3550만원보다 높고, 시장에서 예상한 3700만원 안팎보다도 비싸다.
▲ 일반분양가가 3.3㎡당 3829만원으로 책정된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뉴스1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12억~13억원 선이고, 발코니 확장 등이 추가되면 14억원을 넘길 수 있다. 인근 고덕동의 ‘강동구 대장주 아파트’인 고덕그라시움 84㎡ 실거래가(13억9000만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의 같은 면적 시세(17억~18억원)와는 불과 3억~4억원 차이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둔촌주공에 당첨됐을 경우 헬리오시티나 올림픽훼밀리타운과 비교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북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용 84㎡ 분양가가 9억원을 넘는 경우가 흔해졌다. 성북구 장위동 장위자이레디언트(장위4구역 재개발)는 분양가가 3.3㎡당 2834만원이다. 전용 84㎡로 환산하면 9억원대로, 주변 시세와 비슷하다. 지난해 5월 입주한 인근의 래미안장위포레카운티의 같은 면적은 지난달 9억1400만원에 팔렸다.
서대문구 홍은동 서대문센트럴아이파크(홍은13구역 재개발)는 3.3㎡당 2910만원으로, 전용 84㎡ 기준 9억원 후반대다. 옆 단지인 북한산두산위브1차(2020년 7월 입주) 84㎡ 호가는 9억5000만원 정도다. 이 때문에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선 “청약 포기한다” “분양받으면 호구 된다” 같은 불만 섞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분양가가 높은 이유는 올해 시멘트·철근 등 원자잿값과 인건비 등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조합 입장에선 부담금을 줄이려는 계산도 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일반분양가를 올려 조합 수익이 늘어나야 조합원이 내는 부담금이 줄게 된다.
분양 대행사인 내외주건의 김세원 상무는 “정비사업은 대개 금융사와 시공사가 사업약정을 맺어 진행하는데, 금융사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비용이 늘고 시공사 입장에선 공사비가 증가하는 상황이라 분양가를 낮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집값 하락세다. 이남수 신한은행 행당동지점장은 “일부 청약자는 당첨 후 시장 상황이 나빠져 새 아파트의 시세차익이 기대만큼 크지 않으면 계약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서울에서 무순위 청약으로 나온 아파트 미계약 물량은 1573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371가구)의 4배에 달했다.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는 5차 무순위 청약까지 진행했다. 집값이 계속 빠지면 일부 단지 분양가는 입주 시점 무렵 주변 시세보다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고금리에 따른 조달원가 상승에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안전 비용도 증가해 분양가는 당분간 오를 것”이라며 “분양가와 입지 등 경쟁력에 따라 서울에서도 청약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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