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세는 일단 진정되는 분위기입니다. 매물 정보를 매수 대기자들에게 문자로 보내주고 있는데, 문자를 받겠다는 분들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일대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들은 잠실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최근 거래가 늘고 하락이 사실상 멈춘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잠실은 재건축 사업을 끝낸 대단지 아파트가 몰려 있고, 대기 수요도 많은 곳이라 주택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2호선 잠실새내역과 단지가 연결된 잠실엘스와 리센츠의 경우 그동안 비슷한 가격 흐름을 보여왔다. 잠실엘스 전용 84㎡는 2021년 10월 27억원(14층)까지 거래됐던 것이 지난해 9월 처음 심리적 지지 가격인 20억원 밑으로 떨어졌고, 지난해 10월 19억원(11층)까지 하락했다.
현재 네이버 부동산 거래코너에 올려져 있는 최저 호가는 18억7000만원(3층). 리센츠도 지난해 4월 26억5000만원(17층)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뒤 지난해 10월 처음 20억원이 깨졌고, 한 달 뒤 19억7500만원(20층)까지 내려갔다. 리센츠 전용 84㎡의 최저 호가 역시 18억2000만원(1층)으로 확인된다.
리센츠 상가에서 영업 중인 A공인중개사는 “역에서 떨어져 있는 비선호동 저층 급매물이 18억원대에 나와 있다”며 “중간층이 19억원 후반대에서 20억원 초반대에, 고층은 21억원 이상으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C공인중개사는 “두 단지가 워낙 대단지이다 보니 평소 같은 면적이라도 층, 동, 조망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최대 2억원까지 벌어진다”며 “역과 가까운 이른바 로열 동의 중간층 이상의 경우 20억원 대에 매물이 나오면 매수 대기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대체로 거래로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잠실엘스 상가(파인애플 상가)에서 영업 중인 B공인중개사는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3개 단지에서만 1월 12건 이상 거래됐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엘·리·트의 최근 거래는 지난달 중순으로 멈춰있다.
그는 “잠실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인 탓에 실거래로 등록되는데 한 달여 시간이 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규제 해제 기대감...“인기 지역 가격 지지선 형성”
잠실엘스 상가의 C공인중개사는 “15억원 이상 주택의 대출 규제가 풀린 데 이어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소폭 하락한 것이 매수세 회복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B중개사는 “이달 초 정부가 '1·3대책'을 발표해 부동산 규제를 대거 풀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도 해제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며 “잠실은 여전히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있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돼 실거주 의무에서 벗어날 경우 투자 수요 유입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A중개사는 “일단 주변 중개사들 사이에선 잠실동 아파트값이 ‘바닥 다지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전용 84㎡의 경우 부동산 시장 전반에 큰 충격이 나오지 않는 이상 18억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실거주 의무가 있는 잠실에서 거래가 늘고 있다는 것은 실수요층에게 현재 가격이 매력적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라며 “입지 여건 좋은 서울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형태의 가격 지지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 서울 다른 단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중앙일보가 이날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지난 18일까지 등록된 지난해 하반기(7~12월) 실거래 최저 가격과 이번 달 거래 가격을 비교한 결과 최저가보다 이달 가격이 오르거나 같은 사례가 37건(38.5%)으로 나타났다.
이달 신고된 서울 아파트 거래는 205건인데, 지난해 하반기 내에 한 건 이상 거래가 이뤄져 가격 비교가 가능한 사례는 96건으로 이중 3분의1 이상의 거래에서 가격 지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전용 82.51㎡의 경우 지난 14일 24억4600만원(11층)에 거래됐는데, 이는 지난해 12월 최저가 22억6600만원(5층)보다 1억8000만원 높은 가격이다.
또 이 아파트 전용 76.5㎡는 지난해 최저가(19억850만원)보다 7500만원 오른 19억8350만원(2층)에 지난 5일 거래됐다. B중개사는 “최근에 잠실주공5단지에서만 10건 이상이 거래된 것으로 안다”며 “2021년 최고가(32억7880만원)와 비교해 8억원 이상 싼 가격이라 수요가 유입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59.96㎡도 이달 14억1000만원(15층), 14억4000만원(18층)에 잇따라 거래되며 지난해 하반기 최저가(12억6500만원)는 물론 최고가(13억9000만원)보다 높은 가격에 계약됐다. 지난해 아파트값 하락 폭이 컸던 노원구의 월계동 삼호3단지 전용 59.22㎡도 지난해 최저가 5억1000만원보다 1억3750만원 오른 6억4750만원(1층)에 지난 11일 거래됐다.
가격 조정 컸던 곳 거래 회복...반등은 아직 무리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송파, 강동, 노원 등 2021년 가격이 크게 올랐다가 조정이 일찍 시작돼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지역 중심으로 거래량이 늘고 있다”며 “수요자가 수용 가능한 가격 선까지 가격이 내려가면서 매수 심리가 회복되고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 연구원은 “지난해 가격 조정을 덜 받은 지역은 여전히 매도자와 매수자 간 희망 가격의 간극이 커 급매물이 쌓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정부의 부동산 연착륙 대책 발표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 전반에 하락세가 둔화하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가격 하락이 멈추는 지역이 더 나올 수 있겠지만 여전히 금리가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반등 국면으로 이어지긴 힘들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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