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아파트에 사는 박모(44)씨는 최근 같은 단지에서 더 넓은 집으로 옮기려다 포기했다.
현재 사는 84㎡(이하 전용면적) 시세는 14억원인데, 46평인 113㎡는 20억~21억원으로 가격 차가 6억원 이상 나기 때문이다.
1년 전에는 84㎡가 19억원, 113㎡는 23억원 선으로 가격 차이가 4억원이었다. 박씨는 “40평형대 집값이 별로 안 내려가서 대출을 최대한 많이 받아도 이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도 서울의 중대형(85㎡ 초과) 아파트는 ‘선방’하고 있다. 중소형 평형에 비해 가격 하락세가 상대적으로 덜하고, 일부 단지에선 오히려 신고가로 팔린 아파트가 등장한다.
이에 따라 중소형에서 중대형으로 옮기는 ‘아파트 갈아타기’가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잠실동 엘스, 리센츠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8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서울의 135㎡ 초과 아파트값은 1년 전보다 3.1% 하락했다. 102~135㎡는 5.5%, 85~102㎡는 5.4% 내렸다. 같은 기간 60~85㎡는 7.8%, 40~60㎡는 9.9% 떨어졌다.
집이 클수록 하락 폭이 작았던 셈이다.
KB국민은행 통계도 비슷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60~85㎡와 60㎡ 이하 아파트값은 각각 5.3%, 7.4% 떨어졌지만 102~135㎡는 2.7% 내렸다. 135㎡ 초과는 오히려 1.3% 올랐다.
그 결과, 중소형과 중대형 가격 차가 커졌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의 중소형(60~85㎡)과 중대형(85㎡ 초과) 평균 아파트값 차이는 2020년 말 5억7595만원에서 지난 3일 기준 7억390만원으로 벌어졌다.
실제 송파구 잠실동 트리지움의 경우 2년 전엔 84㎡가 21억~22억원, 149㎡는 27억원대로 5억~6억원 차이가 났다.
그러나 최근 격차는 11억원까지 벌어졌다. 84㎡ 가격은 19억원으로 떨어진 반면 149㎡가 30억원대로 올라서다. 149㎡ 로열층은 지난달 34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성동구 행당동 서울숲리버뷰자이 84㎡와 108㎡도 1년 반 전 집값 차이가 3억~4억원이었지만, 최근엔 7억원으로 커졌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집값 거품이 잔뜩 낀 중소형보다 중대형이 가격이 덜 빠졌다”며 “같은 동네에서도 중소형 아파트를 팔아 중대형으로 갈아타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최근 중대형 집값 하락세가 크지 않은 건 일단 금리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서울 중대형 아파트는 대부분 15억원이 넘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던 상품”이라며 “금리 인상기에 타격을 받은 건 대출을 많이 낀 중소형 아파트”라고 설명했다.
공급 부족도 한 원인이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건설사들이 중대형 공급을 크게 줄인 탓에 희소가치가 커진 것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15년 서울 입주 아파트의 23%였던 중대형 비중은 지난해 10%에 그쳤다. 기존 아파트 사정도 비슷하다.
이른바 ‘엘리트’라 불리는 잠실동 엘스·리센츠·트리지움 1만4937가구 중 85㎡ 초과 중대형은 12.7%(1900가구)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중대형은 가격 부담이 크지만, 최근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허용되는 등 자금조달 여건이 좋아진 데다 ‘똘똘한 한 채’ 수요가 꾸준하다”며 “중소형과 중대형 간 집값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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