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침체 지역의 청약 규제를 풀어주는 ‘위축지역’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도입 5년이 넘도록 실적이 전무하다. 지정 요건을 충족해도 실제 적용된 사례는 없다. 전문가 사이에선 “제도를 뜯어고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택법에 따르면 위축지역은 주택의 분양·매매 등 거래가 위축돼 있거나 그런 우려가 있는 지역을 뜻한다. ‘과열지역’과 함께 조정대상지역의 일부로, 시장 상황에 따라 부양책으로 활용하려는 취지로 2017년 11월 만들어졌다.
최근 6개월간 월평균 주택가격 하락률이 1% 이상인 곳이 전제 요건이다. 이들 지역 중 주택 매매거래량이 3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줄었거나 3개월간 평균 미분양 주택 수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시·도별 주택보급률 또는 자가주택비율이 전국 평균 초과 등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면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지정할 수 있다.
지방에선 최근 위축지역 지정 요건에 부합하는 곳이 많아졌다. 지난해부터 금리 인상 여파로 주택시장이 얼어붙은 결과다.
▲ 대구 수성구, 광주 광산구 등 일부 지역은 금리 인상 여파로 주택시장이 얼어붙었다. 사진은 대구 서구의 아파트 밀집 지역. [연합뉴스]
대구 수성구와 부산 수영·부산진구, 광주 광산구, 대전 유성구, 경남 양산시, 전북 군산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 기준 대구 수성구의 직전 6개월 집값은 12.69% 급락했다. 월평균 하락률은 2.1%대다. 지난해 1분기(1~3월) 427가구인 월평균 미분양 주택도 올해 1분기엔 7배인 2997가구로 불어났다.
지난 6개월간 월평균 집값 하락률이 1.1%인 군산시의 올 1분기 미분양은 월평균 2502가구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3가구)의 834배다. 그런데도 위축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시장이 좋을 때 규제를 강화했듯 요즘처럼 지방 주택시장이 어려울 땐 위축지역으로 지정해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위축지역 지정이 큰 의미 없다는 입장이다. 성호철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이미 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청약 규제를 대부분 정상화했기 때문에 위축지역을 지정한다고 해도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위축지역 지정 효과는 새 아파트 청약 자격 기준이 완화되는 것 정도다.
청약통장 가입 후 한 달만 지나면 1순위 자격이 주어지고, 청약 거주지 우선 요건도 없어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1순위 청약을 할 수 있다.
오히려 위축지역 지정이 ‘집값 폭락 지역’ 등의 낙인 효과를 불러 해당 지역의 주택시장 침체를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성 과장은 “위축지역 지정을 요구하는 지자체도 거의 없다”고 했다.
건설업계나 전문가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중소·중견 건설사의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위축지역 지정뿐 아니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비적용, 무주택자 취득세 100% 감면 등 세제·금융 인센티브를 추가로 줘서 지역경제와 부동산 시장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시장이 침체한 곳은 일단 위축지역으로 지정한 뒤 효과나 부작용을 따지는 게 낫다”며 “그래야 정부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를 대폭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낙인 효과나 미분양 증가 같은 부작용을 이유로 정부가 위축지역 지정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제도를 바꾸거나 없애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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